남의 서재 들여다보기

지금껏 버리지 못한
고약한 취미가
남의 서재 엿보기입니다

엿보기라고 했지만 실은 허락받는 일이 먼저겠지요. 지금도 새로운 장소에 가면 책이 있는 곳부터 살핍니다. 이제는 책방지기니 고약한 취미가 아니라 고상한 직업병일 수도 있겠네요. 예전엔 다른 이의 서재나 책방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서가 한 칸 높이를 재는 일이었습니다.

 

자를 들고 다니는 건 아니고 엄지와 약지를 최대한 벌려 뼘으로 높이를 쟀죠. 제 오른손 한 뼘 길이는 딱 23센티미터고 책이 촘촘히 꽂힌 서가만 보면 최적의 높이를 찾기 위해 손바닥을 가져다 댔습니다. 그래서 25센티미터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얻었죠. 하지만 모든 칸의 높이를 25센티미터로 맞출 수는 없습니다. 한정된 서가 높이에서 나누다 보면 마지막 한 칸은 그보다 낮거나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서가에 꽂힌 책은 어떤 것이고 책상 위에 있는 책은 무엇인지, 서재에 있는 가구들은 어디서 만들었는지, 어떤 회사 제품인지 뭐든지 궁금했습니다. 서가에서 평소 볼 수 없는 책이나 물건을 발견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책방지기나 서재 주인을 귀찮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남의 서재를 엿보는
행복 중 으뜸은
좋아하는 작가의 읽지 못한
작품을 발견하는 것이죠

헌책방에서 찾아 헤매다 결국 실패한 책을 찾아낼 때도 기쁩니다. 서재에 하나쯤 있는 주인의 옛 모습이 든 액자를 보고 언제였는지 묻는 일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익할 때는 지금껏 모르던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겁니다. 서평을 읽는 것보다 서재에서 그 공간을 만들어 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훌륭한 공부는 없는 듯합니다.

 

서재만큼 이야기가 풍성한 공간이 있을까요. 사실 서재만 보더라도 주인이 어떤 성향인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상이나 서가의 정리 상태나 책을 다룬 흔적으로 그의 성품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