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영화 한 편 덕분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본 신문의 광고 하나가 시작이 되어 영화에 빠졌습니다. 사람 사귀는 게 서툴고 친구 만들기가 젬병이었던 제게 영화는 세상과 교류하는 하나의 창구이자 한 명의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영화 주간지 씨네21을 만났고 자연스레 그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란 조직은 다수의 개인이 만나서 구성하는, 커다란 개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잡지 만드는 일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씨네21은 개인 혼자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존중하고 보장해 주는 회사였습니다. 저는 씨네21에서 일본 영화를 만났고, 스스로의 기호와 마주했습니다.

 

전주와 부천, 부산에서 영화제 데일리를 만들고, 시부야의 예술영화관, 씨어터 이미지 포럼(Theatre Image Forum)을 출퇴근하다시피 했습니다. 때로는 런웨이 취재, 지하의 자막 번역자들과의 인터뷰 등 딴짓도 많이 하며 기자로서의 제 모습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렇게 TV 웹진인 매거진 t와 10아시아와 인연을 맺었고 일본에 건너가서도 그 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게 다 영화 한 편 덕분입니다.

인연은 언제, 어느 시점에 완성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월의 어느 오후, 거실에서 신문을 보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거의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PUBLY의 김희주 PM이었습니다. 기억은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 인사동 음식점에서의 저녁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김희주 PM은 제게 일본 쪽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서로가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에 관한 대화가 오고 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연이 다시 이어져 저는 PUBLY의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습니다. 주제는 일본 잡지 브루타스와 뽀빠이,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