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호흡하는 잡지의 길

잡지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정보에도 간편하게 접속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곧 잡지에게 매우 힘든 시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고, 종이 미디어는 점점 소멸하고 있습니다. 잡지의 자리가 위축됩니다. 사람들은 굳이 잡지를 넘겨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화면을 터치해서 페이지를 위아래로 훑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읽고 즐깁니다. 쉽고 간편합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단편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터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정보는 쌓여가기만 할 뿐 하나로 묶이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다양한 정보가 섬처럼 떠돌아 콘텐츠와 콘텐츠 사이에 리듬이 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지는 다릅니다. 잡지에는 잡지 고유의 흐름이 있습니다. 넓은 사진 두 페이지로 시작하는 '도비라(とびら)'*가 콘텐츠의 문을 열고, 일러스트나 사진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곱게 다듬어 정제된 문장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두 눈이 움직이며 생각의 흐름을 갖춥니다. 이것이 잡지의 리듬입니다.

* 일본어로 문짝 또는 책의 속 표지, 잡지의 첫 페이지

도비라 예시 / BRUTUS No.842 ©손현

 

BRUTUS와 POPEYE의 선명한 DNA

잡지는 많습니다. 국내에서만 300여 개의 잡지가 발행되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잡지를 한번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어딘가 구석에 처박아놓습니다. 일회용 미디어로 소비합니다. 이중에는 단편적인 정보를 나열하거나 틀에 박힌 이야기만 양산하는, 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잡지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잡지 BRUTUS와 POPEYE는 다릅니다. 각각 1980년과 1976년에 창간돼 40여 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잡지는 우리와 삶을 함께 해왔습니다.

 

독자와 호흡하는 잡지의 길

잡지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정보에도 간편하게 접속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곧 잡지에게 매우 힘든 시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고, 종이 미디어는 점점 소멸하고 있습니다. 잡지의 자리가 위축됩니다. 사람들은 굳이 잡지를 넘겨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화면을 터치해서 페이지를 위아래로 훑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읽고 즐깁니다. 쉽고 간편합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단편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터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정보는 쌓여가기만 할 뿐 하나로 묶이지 않습니다. 여러 개의 다양한 정보가 섬처럼 떠돌아 콘텐츠와 콘텐츠 사이에 리듬이 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지는 다릅니다. 잡지에는 잡지 고유의 흐름이 있습니다. 넓은 사진 두 페이지로 시작하는 '도비라(とびら)'*가 콘텐츠의 문을 열고, 일러스트나 사진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곱게 다듬어 정제된 문장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두 눈이 움직이며 생각의 흐름을 갖춥니다. 이것이 잡지의 리듬입니다.

* 일본어로 문짝 또는 책의 속 표지, 잡지의 첫 페이지

도비라 예시 / BRUTUS No.842 ©손현

 

BRUTUS와 POPEYE의 선명한 DNA

잡지는 많습니다. 국내에서만 300여 개의 잡지가 발행되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잡지를 한번 보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어딘가 구석에 처박아놓습니다. 일회용 미디어로 소비합니다. 이중에는 단편적인 정보를 나열하거나 틀에 박힌 이야기만 양산하는, 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잡지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잡지 BRUTUS와 POPEYE는 다릅니다. 각각 1980년과 1976년에 창간돼 40여 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잡지는 우리와 삶을 함께 해왔습니다.

 

세상을 독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콘텐츠의 문을 열어젖힙니다. 정보의 이면을 보고 무한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휴대폰과 웹은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정보의 질이 갖춰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잡지에는 웹과는 차별화된 분위기가 있습니다. 사진과 일러스트의 톤 그리고 문장의 스타일이 잡지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여성지나 패션지, 전문지 등 카테고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잡지 특유의 DNA입니다. 이는 웹이 따라할 수 없습니다.

 

소파를 소개하는 기사의 제목을 '우선은, 소파에 앉아 생각하다'로 정하는 POPEYE의 센스가 그 예입니다. 그리고 BRUTUS와 POPEYE는 그 DNA가 여느 잡지보다 선명합니다.

 

매호에 하나의 테마를 다루는 원 테마 잡지 BRUTUS와 패션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이야기하는 POPEYE. 둘만의 분위기 안에서 고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반영하고,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틈과 틈 사이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독자와 함께 삶을 공유하는 잡지

일본에는 다치요미(立ち読み)란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서서 읽는다는 뜻으로,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책이나 잡지를 사기 전에(혹은 사지 않고) 서서 읽는 걸 의미합니다. 소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제한된 독서입니다. 꼭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BRUTUS와 POPEYE의 인터넷 서평 중에는 '다치요미로는 모자라다'라는 의견이 많은 편입니다. 한 번 읽기에는 아쉬우니 사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쓸모가 있습니다.

 

실제로 POPEYE와 BRUTUS는 최근 침체된 업계의 분위기*와는 달리 판매 부수에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외부 상황이 어떻든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BRUTUS라는, POPEYE라는 브랜드의 입지가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 1960~197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잡지 판매율도 순조롭게 늘어났다. 단, 1981년에는 2차 오일 쇼크로 성장률이 1.6%밖에 되지 않았다. 1997년 이후에는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 2004년에만 1.4%까지 올랐다. 반품률은 버블 경제가 붕괴된 후 1993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2006년에는 35%를 기록했다.

 

예전에 잡지는 독자를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새로운 정보, 새로운 유행으로 독자의 눈과 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잡지는 독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며 독자의 오늘과 내일에 함께 합니다.

 

BRUTUS와 POPEYE가 4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건 독자들에게 바로 이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BRUTUS의 한 장을 넘기며, 또 POPEYE의 한 장을 넘기며 삶과 호흡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잡지의 역할입니다.

©손현

내 삶을 채우는 잡지, BRUTUS

BRUTUS는 늙지 않습니다. 1980년 5월에 창간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나이가 마흔에 가깝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새롭습니다. 20~30대 남성을 타깃으로 시작된 이 잡지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설명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일단은 남성지로 분류하지만 남성 못지 않게 여성 독자도 많고, 다루는 분야도 영화, 여행, 음식, 예술, 패션, 책, 종교 등 끝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에 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맛있는 케이크 교과서(748, おいしいケーキの教科書)'처럼 여성지의 느낌이 나는 호가 있는 반면 '좀 더! 맛있는 술집(780, もっと!おいしい酒場)'처럼 아저씨 냄새가 풍기는 호도 있습니다. 흑백 사진에 고즈넉한 분위기로 표지를 장식한 '오즈의 입구(767, 小津の入り口)' 반대편에는 "맘대로 입어버려(勝手に着やがれ)"라고 소리치는 젊은 흑인 남자 표지의 'MY RULE(774)'이 있습니다.

 

테마에 한계가 없습니다. 그 어느 것에도 손을 대고, 그 어떤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BRUTUS의 세계는 무한 우주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고, 지치지 않는 비결입니다.

 

40년 가까운 BRUTUS의 역사에는 두 번의 변곡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버블 붕괴로 침체를 겪던 시장을 기조 변화로 타개한 사이토 카즈히로 편집장 시절이고, 둘째는 편집 방침을 대폭 수정해 새로운 지향점을 찾은 니시다 젠타 편집장 시절입니다.

 

1980년대 창간 당시 BRUTUS는 거칠고 억센, 지금 말로 소위 육식파 남자들의 잡지였습니다. 그때 기사의 제목들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면면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남자가 바다에 나가는 데에 이유는 필요 없다', '남자 화장품에 향기 따윈 필요 없다', '일요일 아침은 여유 있게 일어나 샴페인에 브런치를 즐기자' 등. 지금의 BRUTUS 남성 독자들을 떠올려 보면 바라보는 대상이 천지 차이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버블 경제가 시들어가자 함께 풀이 죽었고, 사이토 카즈히로 편집장은 잡지의 시선을 고수입 남성, 브랜드 물건에 돌렸습니다. 스노비즘을 노린 전략이었습니다. 마이너스 5억 엔을 기록하던 적자가 1998년에 플러스 5억 엔의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손현

시대가 바뀌면 잡지도 바뀝니다. 세월이 흐르면 잡지는 새로운 역할을 찾습니다. 니시다 편집장은 잡지의 새로운 문을 열었습니다.

 

의식주, 음악, 영화, 책, 예술 등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다루되 독특한 관점으로, BRUTUS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깊고, 곧게 다루는 잡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시야는 넓되 관점은 좁고
명확하게 하는 것,
'원 테마 잡지'의 탄생입니다
이렇게 BRUTUS의 많은 특집호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추, 후추, 산초, 생강 등 매운 맛의 재료부터 지역별 매운 요리까지, 매운 맛의 끝과 끝을 파헤친 '매우니까, 맛있으니까(782, 辛いから、旨いから)'와 사진가 한 명으로 100여 페이지를 채운 '안녕하세요, 호시노 미치오(830, こんにちは、星野道夫)'. 

 

그리고 인생을 바꿔줄 낙원이란 주제로 타히티, 베트남, 모로코, 고토 군도 등을 여행해 완성한 '여행하고 싶어지는, 인생을 바꿔줄 낙원으로(845, 旅に行きたくなる。人生を変える楽園へ)'까지.

©손현

잡지 한 호 한 호가 단행본 못지 않는 결과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BRUTUS는 '백넘버도 팔리는 잡지'라는 말을 듣습니다.

 

일본에는 '잡지 대상'이라는 상이 있습니다. 매해 일본 내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대상으로 잡지의 매력과 파워, 정보 발신력, 그리고 콘텐츠 창조력 등을 고려해 우수한 잡지에게 수여합니다.

 

BRUTUS는 이 상을 2회와 5회, 두 차례에 걸쳐 수상했습니다. 5회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당시 심사 평을 보면 BRUTUS가 어떻게 오랜 시간 건재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한 권은 꼭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뛰어난 기획, 임팩트 있는 커버. 부록 싸움이 뜨거운 서점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기획력이 탁월하다.

일상의 별거 아닌 것 같은 작은 장면. 여기에 BRUTUS의 핵심이 있습니다. BRUTUS는 같은 소재를 얘기하더라도 의외의 구석에서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기존의 가치관, 사고 방식을 무너뜨려줄 책을 읽자고 제안하는 '위험한 독서(838, 危険な読書)', 수많은 여행 방식 중 굳이 문득 떠올라 갑자기 떠나는 여행을 특집으로 꾸린 '일본의 여행, 생각나는 여행(822, 日本の旅、思い立つ旅)' 등이 그 예입니다.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자처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외의 길이 우리의 삶을 채워줍니다. 의식주, 음악, 영화, 책, 예술 등 그 어떤 것에서도 의외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플러스가 되는 잡지, BRUTUS입니다.

패션을 살다, POPEYE

잡지도 나이를 먹습니다. 한 호 한 호, 회를 거듭하며 세월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때로는 좋은 날도, 때로는 어렵고 힘든 날도 있지만 어찌 됐든 또 한 호를 내놓습니다.

 

40여 년간, POPEYE는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포맷도, 콘텐츠도 부침이 많았습니다. 판매 부수도 오르락 내리락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POPEYE의 시작은 미국 서부 지역입니다. 인기 만화 POPEYE의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온 이 잡지는 1970년대 말 미국 서부 지역의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미국에서 2개월간 체재하며 창간호를 만들었고, '서프보이' 특집, '테니스보이' 특집 등을 발행했습니다.

 

기존에 없던 양식, 알려지지 않은 정보로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일본이 버블 경제로 소란스러웠던 때입니다. 무엇보다 POPEYE는 패션지임에도 패션 이외의 것도 다뤄 주목을 받았습니다. 패션, 음식, 술, 여행, 스포츠, 가구, 토지 등 거의 모든 게 콘텐츠의 소재로 올라왔고, 패션 이상의 것을 논의했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패션지, 새로운 잡지였습니다.

 

POPEYE의 전략은 새로움이었습니다. 아직 일본인이 모르고 있는 것을 주요 테마로 삼았습니다. 1984년 7월 '아이비' 특집, 1988년 '가끔은 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특집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선은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POPEYE 창간 당시 매니페스토*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 구체적인 목표와 이행 가능성, 그 근거

호기심 덩어리 같은 POPEYE는
어디로든 날아가고,
어떤 소재도 다룬다

독자를 기존에 없던 정보로, 새로움으로 이끌겠다는 포부입니다. 이는 높은 판매 부수로 이어졌습니다.

 

1984년에 75만 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1990년대 초반까지 65만 부를 유지했습니다. 한국은 잘나가는 잡지라 하더라도 10만 부를 넘기기가 힘듭니다. POPEYE는 고단샤의 Hot-Dog PRESS, 슈에이샤의 MEN’S NONNO와 함께 인기 남성지로 자리잡았고 정기 구독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당시 일본에선 이를 '카탈로그 문화'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75만 부까지 치솟았던 판매 부수는 버블 경제가 붕괴되자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에 36만 부로 추락하더니 1998년에 25만 부, 2001년도엔 16만 부까지 곤두박질했습니다.

 

편집도 헤매기 시작합니다. 격주간지에서 월간으로 바뀌어 발행되던 페이스가 1992년에 주간지가 되었고, 고작 한 해 뒤인 1993년엔 격주간지가 되었습니다. 판형은 점점 커졌고, 종이 질도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1990년대 중반엔 아이돌 그라비아* 노선으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암흑의 시기입니다. 2010년에 경쟁지인 MEN'S NONNO가 20만 부, FINEBOYS가 10만 부를 팔고 있을 때 POPEYE는 고작 5만 부 규모였습니다.

* 젊은 여성이 비키니나 속옷 차림으로 찍는 화보

 

이러한 좌충우돌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이어집니다. 2009년엔 여성 편집장이 부임하면서 편집 노선이 돌연 여성지로 기울기도 했습니다. '칼럼 매거진'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졌고, 글자 수가 격감했습니다.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얘기하는지 도통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2004년에 다시 월간지로 돌아오긴 했지만 1980년대 중반 황금기를 누렸던 POPEYE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창간 당시 POPEYE에는 'Magazine for City Boys'란 부제가 붙었습니다. 시티보이를 위한 잡지
잡지의 타깃을,
주체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브타이틀이 잡지의 정체성을 만들었습니다. 유행과 선택에 민감한 도시 남자를 가리키는 '뽀빠이 소년'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POPEYE는 뽀빠이 소년들의 니즈에 말과 생각으로 응답했습니다. 정보만 제공하는 잡지가 아닌, 대화와 제안으로서의 잡지였습니다.

 

이 서브타이틀은 1990년대 후반, 판매에 부진을 겪으면서 제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갈피를 못 잡는 편집과 함께, 허울만 멀쩡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름과 새로움의 대명사였던 과거의 POPEYE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POPEYE의 TOKYO EAT-UP 시리즈 ©손현

하지만 POPEYE의 저력은 남아 있었습니다. 2004년 다시 월간지로 돌아오면서 제 모습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12년 기노시타 타카히로 편집장의 취임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Magazine for City Boys', 도시 남자를 위한 잡지, 창간 당시의 기조로 원점 회귀한 것입니다.

 

기노시타 편집장은 2016년 6월, 창간 40주년 호를 만들며 창간 1호를 동일하게 복각했습니다. 미국의 서부로 돌아가 2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완성한 것입니다. 판매 부수가 V자를 그리며 회복했습니다. POPEYE의 환골탈태입니다.

POPEYE는 솔직합니다
POPEYE는
내숭을 떨지 않습니다

'시티보이를 위한 잡지'로 다시 돌아온 POPEYE는 좀 더 행복한 도시 생활을 위해 애쓰고, 좀 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리뉴얼을 하면서 POPEYE의 목표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패셔너블한 소비 앞에 욕망을 숨기지 않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앞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기조입니다. 당차고 발랄합니다.

 

글, 사진, 디자인 곳곳에 이런 잡지의 성격이 도드라집니다. '바람이 불면 코트를, 카페오레에는 스웨터를'이란 캐치 카피는 감성적이고, 'What Will You Guys Be Doing Tomorrow In My ?'란 특집 제목은 센스가 넘칩니다. 잡지 구석구석이 POPEYE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또한 POPEYE는 읽는 이와 만드는 이 사이의 거리가 짧습니다. 캐주얼한 문체의 칼럼은 술술 읽히고, 센스와 기지가 돋보이는 사진의 캡션은 유용한 팁이 됩니다. 바로 곁에서 얘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3인칭이 아닌 1인칭으로 이야기합니다. 도시 남자들의 목소리를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합니다. 오늘날 트위터와 같은 느낌입니다. 도시 남자의 삶을 사는 잡지, POPEY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