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싱가포르에서 기회를 잡다: 송지영(1)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Editor's comment
이 글은 소속 회사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닌 저자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경영학과에 입학한 저는 놀기 좋아하고 욕심 많은 대학생이었어요. 2년 정도는 대학 생활을 만끽했죠. 여기까지는 '플래닝'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고학년 이름표가 붙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상당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각종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했고, 어떤 친구들은 석사 혹은 박사를 계획하며 방학마다 계절학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친구들은 '취업'이라는 모호하고 막막한 과제를 시작해야 했죠. 경영학부생으로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저는 어떤 길이 최선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소위 취업을 준비한다는 친구들이 모두 인턴십에 열을 올리던 터라, 자연스레 저의 관심도 인턴십에 집중되었어요. 신입생부터 가졌던 전략적 사고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유수의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죠.

우선 제가 원하는 회사는 인턴 채용 자체가 없었습니다. 간혹 발견한 포지션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구직 활동을 시작한 대학교 3학년에겐 이력서에 쓸 내용이 한정적인 데다, 이력서 쓰는 법조차 몰랐으니까요. '인턴 경험이 있는 사람을 인턴으로 채용하면,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어쩌라는 거야?'라며 부정적인 생각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서툰 처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현실의 벽을 제대로 느낀 뒤 '다음 방학에는 꼭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인턴으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관련 서적을 읽으며 인터뷰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개강 후 꼭 들어가고 싶었던 교내 전략 컨설팅 학회에도 지원했습니다.

컨설팅 학회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였어요. 매주 밤늦게까지 비즈니스 케이스를 풀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이는 컨설팅 회사는 물론 전략적 마케팅 회사를 준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관련 글: 경영 전략 수립,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능력 (패스트컴퍼니, 2018) / 보스턴컨설팅 입사하려면 '전략적 사고 능력' 키워야 (매일경제, 2018.2.7)

4학년이 되고, 다양한 인턴십 경험에 집중하기 위해 졸업을 1년 미뤘습니다. 그때는 이미 한두 번의 인턴 경험이 있었고, 좋은 이력서를 쓰는 법도 익힌 상태였습니다. 학회 활동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교류하며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인턴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죠

저는 원하던 외국계 컨설팅 회사 두 곳에서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컨설턴트의 일과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에서의 겨울 인턴십이 기억에 남는데요. 학부 수업과 학회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늘 궁금했는데, 매일 진행되는 팀 미팅과 토론을 보며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밤낮없이 높은 강도로 진행되는 컨설팅 프로젝트였지만, 글로벌 기업 리더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큰 고민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여 기업에 큰 가치를 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크고 작은 질문을 생각하는 과정이 커리어를 시작하던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부 생활을 마무리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우연히 P&G의 인턴십 공고를 보았습니다. 논리적 사고를 통한 전략 수립을 '소비재'라는 산업 내에서 경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학회 활동 중 비즈니스 케이스에서 자주 접하며 관심이 생겼던 P&G라는 회사의 전략과 실행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날부터 마케팅 부서의 인턴 포지션을 위한 이력서 준비, 필기시험, 그리고 여러 번의 인터뷰가 시작되었어요. 그동안의 인턴십 경험과 학회 활동은 이 과정에서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마인드 셋은 지금까지 저를 지탱하는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인턴십으로 잡은 기회

인턴십을 위해 방문한 P&G 서울 사무실에는 저를 위한 서프라이즈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싱가포르행 티켓. 인턴 10명 중 2명이 싱가포르 아시아 지역 본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제가 그 두 명 중 한 명이었어요. 인턴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 행복했는데 해외 인턴십이라니! 그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서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인턴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야 정직원 제안을 받을 텐데 해외에서, 그리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내가 영어로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회는 주어졌고 '꼭 정규직 전환을 확정받아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결심과 함께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저의 인턴십 프로젝트는 한 글로벌 브랜드의 아시아 이커머스(e-commerce) 전략 및 계획을 수립하고 주요 나라에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이라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기존 오프라인 채널에 비해 규모는 상당히 작은 수준이었습니다. 브랜드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는 하되, 단기적으로 많은 자원을 집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당장 그해에 실행될 계획을 세워야 했던 저는 기존 자원과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우선 온라인 구매자들의 쇼핑 패턴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여러 리서치 자료를 읽어보고 거시적인 트렌드를 이해한 후, 실제 온라인 구매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세세하게 쪼개어 주요 시나리오의 의사 결정 과정을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검색 혹은 광고 클릭에서 시작해 쇼핑몰 내에서의 브라우징, 제품 및 가격 비교, 리뷰 검토, 쿠폰 등 각종 할인 적용, 그리고 결제 및 배송까지 단계별로 소비자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나열한 후 제조사나 브랜드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따로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주요 디테일을 이미 잘하고 있는 브랜드나 경쟁사를 찾아 벤치마킹하며, 항목별로 따라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적었습니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e-commerce shopper based design'이라는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체크리스트에 따라 아시아 주요 거래 쇼핑몰 내의 브랜드 실행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항목별 점수 그리고 모든 항목이 합쳐진 전체 점수를 수치화하여, 더 개선할 기회가 있는 쇼핑몰 그리고 요소들이 쉽게 눈에 띄도록 했습니다.*

* 관련 기사: 7 out of 10 top e-commerce players in Singapore are local, study finds (e27, 2017.9.5)

준비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쇼핑몰별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들었고, 나라별 주요 거래 쇼핑몰에서 필요한 플랜을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인턴십 프로젝트에서 발표할 아시아 퍼시픽 이커머스 제안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가 단 한 시간의 발표로 평가된다는 사실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발표도 영어로 하다 보니 전날 밤까지 슬라이드 한 장, 한 장 스크립트를 써가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프로젝트는 매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대신해주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부지런히 물어보며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프로젝트 발표로 인턴십이 종료되는데, 저는 주요 나라의 브랜드 매니저와 세일즈팀에게 제가 만든 플랜을 직접 발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단순히 프로젝트에서 끝나지 않고 한 브랜드의 이커머스 플랜이 실제로 집행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전략 수립에서 실행까지,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하는 데서 오는 뿌듯함에 '마케팅과 브랜드 매니지먼트' 분야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다짐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날의 뿌듯함을 잊지 못하고, 전략 수립과 실행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소비재 마케팅을 저의 커리어로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해외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 직장, 싱가포르행 티켓과 함께

인턴십 후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곧 정규직 제안이 올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매일 이메일을 새로 고침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메일은 싱가포르P&G 아시아 퍼시픽 본사의 정식 마케터로 합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편도 비행기 티켓도 함께 들어 있었죠. 감사하다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당시 저는 '한국 지사로 오퍼를 바꿔달라'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해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두려웠거든요. 글로벌한 싱가포르 환경에서, 전 세계에서 온 뛰어난 직원들 틈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게 겁이 났던 거죠. 한국에서 익숙한 문화와 언어로 마케팅의 기본을 배운 후, 싱가포르 본사로 옮겨 순조롭게 적응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거예요.

물론 지금은 '입사 후에는 비즈니스 상황이나 싱가포르 워킹 비자의 요건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니,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며 응원해 준 회사에 무한 감사를 보내고 있답니다.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편하고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싶지만, 자신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고 싶다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과 새로운 기회에 '예스'라고 대답해야 해요. 저 역시 부족하지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즐기려고 최대한 노력 중입니다. 지금 퍼블리에 제 이야기를 쓰는 이 순간도 저를 긴장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불편함의 순간이랍니다.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싱가포르에서 정식 마케터로 그리고 세일즈로서 일하는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더 자세히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