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감자탕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4월에 발간된 <노포의 장사법>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좋은 직원을 고용해서 가게를 잘 운영하는 것은 장사의 성공 비결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비책이 있다. 바로 가족이 모두 화목하게 같이 일하는 거다. 가족은 직원보다 두 몫, 세 몫을 한다는 이 바닥의 오랜 금언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태조감자국. 이 집에서 그 평범하지만 꿋꿋한 비결을 다시 확인한다.
서민과 민중의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는 감자탕. 서울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지방 이주민의 애호 음식으로 시작해, 이제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음식이 되었다.
대를 잇고, 가족의 비법을 끝까지 지켜내는 신념이 태조감자국의 명성을 만들었다. 아직도 남의 건물에서 장사하는 이 독특하고도 멋진 음식의 전파자들을 만났다. 시원하고 달큰한 감자국, 아니 감자탕을 맛본다.
서울 살던 우리 같은 베이비붐 언저리의 아저씨들*이 제일 만만하게 먹은 몇 가지 안주를 들자면 삼겹살과 감자탕이었다. 특히 이들의 청춘시대는 아마 감자탕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흔했고, 싸고 푸짐했다. 돼지 등뼈가 워낙 쌌던 것 같다. 요즘은 어지간히 비싸다. 감자탕집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수요가 몰려서 그렇다고 한다.
*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까지의 세대들
보글보글 끓는 전골냄비에 구수한 돼지 뼈, 푸짐하게 들어간 감자와 얼큰한 양념장 국물. 깻잎 좀 넣고 다시다니 미원 같은 것도 넉넉히(?) 넣어서 감칠맛이 폭발하던 음식. 국자로 푹푹 퍼서 나누던 전형적인 음식. 바로 감자탕이다. 이 음식을 거래처 접대나 소개팅, 아니면 상견례 자리에 쓴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수수하고 넉넉한 서민음식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