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CMO, 페르난도 마차도

올해 칸의 슈퍼스타는 단연 버거킹이었습니다. 2019년 칸 광고제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버거킹이 올해의 브랜드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버거킹의 '와퍼 디투어(The Whopper Detour)' 캠페인은 티타늄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가져갔습니다.

* 칸 광고제 티타늄 부문: 집행 매체에 상관없이 통합적 평가로 시상하는 부문

2019 칸 광고제의 슈퍼스타 버거킹 ⓒCannes Lions

버거킹 CMO(Chief of Marketing Officer) 페르난도 마차도(Fernando Machado)를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그가 가장 사랑받는 CMO 중 한 명이라는 평가에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고루하고 진부했던 버거킹에서 '놀이(playful)'와 '목적의식(purposeful)'의 경계를 유연하게 오가며 효과적인 브랜딩을 이끌어냈죠. 그는 재밌고 유쾌하면서도,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정돈해 버거킹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명성이 버거킹에서 처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2013년 유니레버(Unilever)에 재직할 당시 기획한 도브(Dove)의 'Real Beauty Sketch'는 칸에서 티타늄 그랑프리를 수상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도브의 브랜드 철학을 공고히 한 캠페인으로 아직까지 회자됩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캠페인이 기억나실 겁니다.

 

* Real Beauty Sketch ⓒDove

 

와퍼의 재료를 연상시키는 레드, 옐로, 브라운, 그린 스트라이프가 카라에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온 페르난도는 버거킹의 글로벌 마케팅팀장(Head of Global Marketing) 마르셀로 패스코아(Marcelo Pascoa)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버거킹의 세계 종말 서바이벌 가이드

버거킹은 발표 컨셉부터 남달랐습니다. 좀비와 몬스터가 넘실대는 종말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Burger King's guide to apocalypse)을 알려주겠다는 발상이었죠. 버거킹이 발표 컨셉을 이렇게 준비한 이유는, '파멸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버거킹 세션 ⓒ최다혜페르난도는 창의성이야말로 버거킹이 경쟁우위를 차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단언합니다. 버거킹은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은 쓸 수 있는 업체도 아니고 1등 사업자도 아닌 만큼, 고객의 눈에 띄려면 가장 기발하고 신선한 '크리에이티브'를 제시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곧 종말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그에 따르면, 제한된 예산으로 좋은 광고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데요. 바로 디자인(design), 기술(technology), 그리고 제품(product)입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디자인, '기깔나게' 하면 성공한다

'디자인은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명제에는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디자인은 형태(form)와 기능(function)의 융합이니까요. 실제로 나이키, 애플, 코카콜라 등의 디자인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반면, '훌륭한 디자인'이라는 키워드에서 패스트푸드 업체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버거킹에게 디자인은 너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신규 시장에 진입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광고비를 쓰지 않더라도 고객들은 햄버거의 포장지나 매장의 인테리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전의 버거킹 레스토랑은 '항상 좋은 경험을 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Burger King매장 디자인이 올드할 뿐만 아니라, 버거킹의 매장인지 알아차리기도 어렵습니다. 패키지는 어떨까요? 불과 5~6년 전의 버거킹 패키지는 무미건조한 흰색 봉투였고, 버거킹 로고가 없다면 버거킹의 패키지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Burger King심지어, 병원 음식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렇게 뻔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비슷한 포맷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경쟁자가 많은 업계에서는 더욱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페르난도는 성공적인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디자인은 즉각적으로 매출과 연계되지 않고, 효과를 정량화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디자인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버거킹은 대대적인 비주얼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 혁신에 나섭니다. 기본 모토는 모든 제품이 '손으로 만든 것처럼 보여야 한다(made by hand look)'라는 것이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들고, 손으로 직접 구웠다는 프리미엄과 함께 친근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지요.

 

2015년에는 와퍼를 위한 별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완성했습니다. 와퍼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별화해 버거킹의 대표 메뉴인 와퍼를 특별히 부각시킨 거죠.

 

새로운 와퍼 디자인은 로고나 패키지뿐 아니라 직원들의 유니폼, 심지어 배달 오토바이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와퍼의 재료(패티, 양상추, 토마토, 번)를 나타내는 4가지 색상은 직관적으로 햄버거를 떠올리게 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와퍼를 중심으로 통일한 디자인을 매장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 스며들게 하자, 버거킹은 하나의 브랜드로서 통일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Burger King

ⓒBurger King변경한 디자인은 매장 인테리어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덕분에 버거킹은 레스토랑으로서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고, 자체적으로 10~20%가량의 매출 상승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페르난도는 리모델링과 리노베이션 효과를 프랜차이즈 점주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비즈니스 케이스를 구축하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리디자인을 통해 경쟁사와 대비되는 버거킹 제품의 특징을 잘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버거킹이 다른 경쟁사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패티를 그릴에 굽는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그동안 모든 버거킹 광고에서 수없이 언급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1/3은 버거킹이 패티를 그릴에서 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18~24세 고객의 경우, 심지어 절반 정도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광고에서 계속 '그릴'을 언급하면서도, '불'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거킹의 솔루션은 단순했습니다. 불을 제대로 보여주자!

ⓒBurger King이를 위해 전문 에이전시와 협업하여 '불'을 고객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릴 기구를 개발합니다. 고객에게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아예 집기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죠. 참고로 이 오븐은 현재 미국 내 몇 개 매장에서 테스트 중입니다. 실제 테스트 결과, 오븐을 리디자인한 후 버거킹 메뉴에 관한 이미지는 11%, 버거킹 브랜드는 8% 더 좋게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테크놀로지에 창의성이 더해지면 무적의 캠페인

버거킹은 내부 기술팀과 협업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버거킹에는 기술(technology)을 적용할 때 두 가지의 조건이 있습니다. 기술은 1)고객 서비스 향상에 기여해야 하며, 2)팬과 소통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테크놀로지와 패스트푸드를 연관 짓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 두 개념은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패스트푸드가 지향하는 바는 극도의 편의성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편의성은 대부분 테크놀로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키오스크(Kiosk), 딜리버리 서비스, 디지털 메뉴판, 모바일 결제와 같은 기술은 패스트푸드 영역에 많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하기 때문에 재미가 덜한 것도 사실입니다. 버거킹은 단순히 이러한 기능을 출시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반향도 일으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마케팅을 할 때는 브랜딩을 강화할 수 있는 '엣지(edge)'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엣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바로 창의성입니다

 

올해 칸에서 티타늄 부분 그랑프리를 수상한 '와퍼 디투어' 캠페인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했습니다. 경쟁업체 맥도날드를 상대로 이색 프로모션을 진행한 캠페인인데요. 맥도날드 매장 주변에서 와퍼를 주문하면 단돈 1센트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버거킹 앱을 다운받은 후, 맥도날드 매장 반경 600피트 이내로 진입하면 알람이 옵니다. 앱 화면이 안내해 주는 가까운 버거킹 매장에서 와퍼를 받아 가면 되는 거죠.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막힌 아이디어입니까! 경쟁사 매장 근처에 가야 우리 제품을 살 수 있다니요.

 

* 버거킹 와퍼 디투어 캠페인 ⓒBurger King

ⓒBurger King버거킹 앱 다운로드 순위는 48시간 만에 686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했고, 단 9일 만에 150만 건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로모션 기간 모바일 주문금액이 3배로 급증했으며, 지난 4년 동안 가장 많은 매장 방문 수를 기록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죠.

결국은 최고의 제품으로

제품은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제품의 품질은 숨길 수 있다면 숨기고 싶은, 결코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패스트푸드 브랜드는 품질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버거킹도 북미 지역에서는 인공 색소와 인공 조미료를 배제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방부제와 인공 첨가물을 완전히 배제한 제품을 전 세계 매장에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버거킹에서 제품 혁신을 내세우며 언급한 메뉴는 임파서블 와퍼(Impossible Whopper), 즉 채식주의자를 위한 와퍼입니다.

 

* The Impossible Taste Test ⓒBurger King

 

칸에서는 <The Impossible Taste Test>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되었는데요. 소고기 대신 식물성 식재료로 만든 와퍼의 시식 행사가 열리고, 와퍼의 오랜 팬들이 이를 먹고 나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 버거를 먹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다는 고객의 말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Impossible Whopper ⓒBurger King

맛과 디자인, 그리고 제품의 품질로 승부해야 하는 치열한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버거킹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창의성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케터가 기억해야 할 5가지

객석뿐 아니라 칸의 심사위원들이 버거킹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건,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특별함'과 '신선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은 버거킹은 마지막으로 다섯 가지 팁을 남겼습니다.

1. 좋은 디자인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최상의 디자인을 찾아내세요.

2. 경험을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잊지 마세요. 말하지 말고,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세요.

3. 새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새 무기가 필요합니다. 기술은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신무기이죠.

4. 마케터가 사랑할 수 없는 제품이라면, 제품을 바꿔야 합니다. 가족에게 권하고 먹일 수 있는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5. 움직이지 않으면 잡아먹힙니다. 지금 당장 새로운 걸 시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