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와 마윈의 협상이 남긴 두 가지

전직 영어 강사였던 마윈(Ma Yun)은 중국에서도 전자상거래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상하고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차례 실패했다. 그러던 1999년, 심기일전한 마윈은 직원 17명과 알리바바 온라인(Alibaba Online)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유럽계 투자회사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하던 차이충신(Joseph Tsai)이라는 글로벌 인재도 합류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마윈은 베이징을 방문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만났다. 중국의 수많은 기업가가 세계적인 투자자인 손정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마윈에게도 1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손정의와 독대를 한 마윈이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의 가능성과 알리바바의 비전에 대해 6분여 정도를 설명했을 때, 손정의는 마윈의 프레젠테이션을 중단시켰다.

난 반드시 알리바바에 투자해야겠소.

당시 손정의는 30여 명 남짓한 팀으로 이루어진, 설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중국의 신생 IT 기업에 3000만 달러(한화 약 340억 원)라는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손정의가 알리바바에 투자를 결정한 2000년도는 전 세계적으로 닷컴 버블(dot-com bubble)*이 붕괴되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검증되지 않은 중국의 신생 IT 기업에 300억 원 규모의 투자 제안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부담하는 결정이었다.

* 인터넷 사용률과 보급률이 급속히 확장되던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발생한 거품 경제 현상. 이 시기 인터넷 기반 기업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관련 기업들의 주식이 폭등했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주식 시장은 다시 폭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윈이
손정의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알리바바가 필요로 하는 금액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2000만 달러(한화 약 225억 원)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마윈은 손정의와의 관계를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첫 번째 계약에서 상대방에게 투자금을 조금 더 얻어 내려고 욕심부리지 않아도, 서로 신뢰가 쌓이면 향후에 더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윈과 손정의의 역사적인 투자 계약이 체결되었고, 이를 계기로 둘 사이에는 돈독한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프트뱅크의 투자로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

 

마윈을 신뢰하게 된 손정의는 알리바바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며 알리바바가 절실히 자금이 필요했던 2004년에 다시 한번 6000만 달러(한화 약 680억 원)의 투자를 결정한다. 마윈 역시 손정의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손정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추후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2014년 9월, 손정의가 알리바바에 투자한 지 15년 만에 알리바바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당시 알리바바의 기업 가치는 1667억 달러(한화 약 188조 2400억 원)에 이르렀고,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알리바바의 지분 가치는 578억 달러(한화 약 65조 2900억 원)로 불어났다. 알리바바의 상장을 통한 최대 수혜자 중 1명은 단연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손정의였다.

 

돌이켜보면 마윈과 손정의는 단 6분간의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끈끈한 인간관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신뢰도 쌓을 수 있었다. 그들의 협상을 통해 우리는 성공한 협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협상은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협상 결과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한 협상이다.

 

협상에서 많은 사람이 숫자로 나타나는 협상 결과물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리고 상대를 쥐어짜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냈을 때, 마치 협상에서 승리한 것처럼 의기양양 해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협상은 필연적으로 관계에 상처를 남긴다.

 

좁디좁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한 번의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와 신뢰를 잃으면, 상처를 입은 상대방은 다음 협상 테이블에 이를 갈고 나올 것이다. 설령 상대방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더라도 당신에 대한 부정적 평판이 업계에 퍼져 나가 직간접적으로 다른 협상에까지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상이 남기는 두 가지인 협상 결과물과 인간관계 중에서 우리는 관계의 측면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감성적이거나 도의적인 차원을 넘어, 추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마윈은 어떻게 6분 만에 손정의를 설득시켜 수백억 원의 투자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2017년 손정의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 Why Masayoshi Son Invested $20 Million in a Young Jack Ma ©Bloomberg Markets and Finance

마윈의 사업 계획은 변변치 않았고 영업이익도 전혀 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직원 수도 불과 30~40명에 불과했지요. 하지만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태도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는 그가 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과 상대방을 흡입하는 강한 매력에 나는 설득을 당했던 것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때로는 이성과 논리보다 직감과 감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적지 않다. 협상에서 감정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원칙 8: 상대의 감정을 뒤흔들어라'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룬다.

생애 가장 찜찜한 거래

차가 필요한 당신은 주말을 맞아 양재동 중고차 매매시장으로 향했다. 당신이 목표로 삼은 자동차는 싼타페. 사고 경력 없고 외관이 깔끔하며 2년 미만 된 검은색 싼타페를 2500만 원 이하로 구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매물을 살펴보던 중, 외관이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면서 시험 운전을 해보니 엔진 소리도 좋은 싼타페가 눈에 들어왔다.

 

차량 가격표를 보니 2650만 원. 현실적으로 100만 원 정도만이라도 할인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첫 제안에는 150만 원 할인을 요구해보기로 했다.

색깔도 제가 좋아하는 검은색이고, 외관도 깨끗하고, 엔진 상태도 좋은 것 같은데 가격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비싸 보이네요. 혹시 2500만 원까지 가능한가요? 그 가격이면 바로 구매할 의향이 있습니다.

A 딜러의 반응

그러자 당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A 딜러가 빙그레 웃더니 이렇게 이야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원래는 그렇게까지는 안 되는데 사장님 인상이 정말 좋아 보이셔서 2500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계약서 작성하시지요.

마음에 드는 차를 발견했고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예상보다 더 큰 금액의 할인을 받아냈고 애초에 목표했던 2500만 원으로 가격을 조정한 상황.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만족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기분은 아주 찜찜할 것이다. '아… 뭐야 이거. 이차 침수된 차야? 도대체 얼마를 이야기했어야 하는 거야. 2300만 원을 불렀어야 했나….'

 

B 딜러의 반응

꽤 깐깐하게 보이는 B 딜러는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장님, 저희도 내부적으로 가격 할인 정책이 있기 때문에 제가 임의로 150만 원을 빼 드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고요. 다만 사장님 인상도 좋아 보이시고 멀리까지 나오셨으니 50만 원 정도는 제가 저희 대표님께 말씀드려서 빼드리는 방향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둘러보셔서 알겠지만, 이 정도 가격에 이런 차를 구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이후 B 딜러를 상대로 20분이 넘는 추가적인 설득 작업 끝에 결국 80만 원의 현금 할인을 이끌어냈다. 최종 구매 가격은 2570만 원. 마지막에 딜러가 생각지도 못하게 20만 원 상당의 블랙박스를 무상으로 제공해준다고 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매니저님, 정말 싹싹하고 마음에 드네요. 다음에 제 지인들한테도 소개해드릴게요. 요즘 제 주변 지인들이 차에 관심이 많아서 아마 제가 이야기하면 꽤 많이 찾아올 겁니다. 혹시 제 이름 기억해 두셨다가 친구들 찾아오면 잘 좀 해주세요. 명함 드릴게요.

사람의 감정과 인식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신은 A 딜러에게 힘들이지 않고 15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을 받았는데도 마음이 이렇게 찜찜할 수가 없다. 반면 B 딜러와는 쉽지 않은 협상을 통해 100만 원 상당(80만 원 현금+20만 원 블랙박스)의 할인을 이끌어냈지만 아주 흡족한 기분이 든다.

 

결국 B 딜러는 A 딜러보다 50만 원을 덜 할인해주고도 고객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얻은 성공적인 협상을 한 것이다.

 

협상에서 만족도는 객관적인 수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협상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협상을 통해 어떻게 서로의 주관적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출혈을 감수하면서 과도하게 양보하지 않아도 나와 상대방이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A 딜러의 협상 방식이다. A 딜러는 상대방의 첫 제안에 '예스'를 외치는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가격을 대폭 할인해주고도 고객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양보는 양보대로 해주고 욕은 욕대로 먹는 어리석은 협상 방식이다.

협상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첫 제안에
절대로 '예스'를 외치지 말라!
상대의 첫 제안에 당신이 곧바로 예스를 외치면 상대방은 이를 고마워하기보다 더 얻어내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고 후회하게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협상에서 상대방의 첫 제안은 최선의 제안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 제안에서 최선의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상대방이 반박하면 더 물러설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예상하고 첫 제안에는 최선의 카드를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의 첫 제안에 '예스'를 외치는 것은 협상 결과나 만족도 측면에서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협상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협상해본 경험이 있으신 분?

기업과 대학에서 협상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에 청중들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다. 이 질문에 90% 이상의 사람들은 조용히 눈을 피하고, 그중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두세 분 정도가 손을 든다. 그들에게 어떤 유형의 협상을 경험했는지 물어보면 "저는 기업의 노무 담당자인데 지난주에 노사 간 임금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또는 "저는 신사업 개발 담당자인데 특허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특허 사용에 대한 통상실시권 계약 조건을 논의했습니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즉 대부분 업무적으로 본인이 경험한 중요한 계약 협상을 언급한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서 '협상'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남북 정상회담, FTA 협상, 최저임금 협상, 계약 협상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협상은 주로 국가 간 협정이나 정부나 기업 차원의 계약 등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협상은 그렇게 거창한 수준의 거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시간보다 협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세계적인 협상학자인 리 톰슨(Leigh L. Thompson)이 한 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협상에 노출되어 있다. 협상을 외교나 정치, 비즈니스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 의사소통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바대로 상대가 행동하게 하는 과정은 모두 협상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주말 아침 열심히 책을 쓰고 있는 아빠에게 딸 선율이가 말을 건다.

선율: 아빠 뭐 해? 오늘도 일해? 오늘 날씨 좋은데 나랑 에버랜드 가면 안 돼요?

아빠: 선율아, 아빠가 오늘은 에버랜드 가기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대신 아빠가 책 조금만 더 쓰고 이따가 오후에 같이 키즈 카페 가면 어떨까? 가는 길에 선율이 좋아하는 피자도 사줄게.

선율: 정말? 알았어. 그럼 에버랜드는 다음에 가고 이따가 같이 키즈 카페 가자. 약속!

아빠: 응, 그래. 약속! 아빠 말 잘 들어줘서 고마워, 착한 딸.

딸 선율은 아빠를 설득시켜 에버랜드에 가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아빠는 선율의 첫 제안은 들어주지 못했지만, 절충안을 제시하여 선율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는 매일 협상을 하고 있다.

©Shutterstock"싫든 좋든 우리는 협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이 1981년에 발간된 이후, 협상학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협상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해야 상대를 이겨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Harvard Negotiation Project)'의 결과물인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은 협상 상대방이 적이나 경쟁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협상을 통해, 양측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윈윈(Win-Win)'의 해결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즉 1981년도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기술' 정도로 정의되었던 협상이, 이후에는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기 위한 의사소통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도 협상학자들과 협상 전문가들은 더 나은 협상 개념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1981년도의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 때처럼 협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도의 새로운 협상 개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협상을 통해 서로의 심리적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협상 방법론을 찾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협상도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고, 거래를 통해 이익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감정, 관계, 심리적인 측면까지 고려하여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거래를 하는 것이 중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