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가 아니라, 오피스 디자인

무슨 일 하세요?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며, 그중에서도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면 보통 이런 대화가 오고갑니다.

 

Q: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건가요?

인테리어라기보다 공간 컨설팅에 가까워요. 예를 들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직원들이 서로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거죠.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의뢰한 회사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이 과정을 '일맛TF'라고 불러요. '일할 맛 나는 사무공간 만들기'를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배경음악을 고민하고, 오프라인 칸반·스크럼 보드* 제작 방법과 위치를 결정하기도 해요.

* 전체적인 업무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온라인으로도 가능하지만, 오프라인 칸반·스크럼보드를 제작해 다른 팀원의 업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돕는 경우도 있다.

Q: 그럼 공사는 안 하시나요?

필요에 따라 공사도 해요. 하지만 그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회사 구성원과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 될 때 시작하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랩톱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저에게도 전국 곳곳에 살림을 펼쳐둘 수 있는 일터이자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성수동의 한 회사에서 내어주신 책상이기도, 불광에 있는 서울혁신파크의 테이블이기도 했죠. 지금 쓰고 있는 리포트의 목차는 제주도의 코리빙·코워킹스페이스에서 '셀프 감금'을 해두고 작성했습니다.

©Shutterstock업무의 특성이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부터 카페에서 일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제 경쟁자는 스타벅스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일관성 있게 브랜드를 보여주는 인테리어, 적당히 개방감 있는 널찍한 장소 안에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해서 일할 수 있는 공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덜 거슬리게 해 주는 배경음악까지. 여기에 커피와 설탕까지 섭취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죠.

어디에서 일이
제일 잘 되나요?
저는 이 질문의 답이 '오피스'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합니다. 일이 가장 잘 되는 장소는 가장 편안한 장소와 같은 말이 아닐까요? 저도 리포트의 마무리는 제게 가장 편안한 장소인 성북동 작업실에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피스 디자인은 늘 흥미진진합니다. 그 자체도 재미있지만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이사할 시기를 고려해서 장소를 알아보고, 앞으로 충원할 팀원의 숫자를 파악합니다. 동시에 그 회사만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때로는 의뢰한 회사에서 직접 일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익히기도 합니다. '일하기 좋은 환경'은 개인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회사의 성격과 직군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집니다. 정답도 없고,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재밌는 일이지요.

 

오피스 디자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직원들이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리고 싶게 만드는 것? 생산성과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 제가 오피스 디자인을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적절한 비용으로 공간의 효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슬로워크(slowalk)의 경우, 몇 달간의 회의를 통해 간단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낭비되는 공간을 점검한 후 전체적인 테이블 레이아웃을 변경하고, 수납공간을 추가로 마련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코워킹스페이스 임대면적과 비용을 30% 줄이면서도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종종 "사무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돼요!"라고 상담을 요청하는 회사에 갈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방음·흡음 공사업체와 견적을 알려주기보다, 두꺼운 커튼이나 카펫을 구매해보라고 권합니다. 

 

당장 공사를 시작하는 것보다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하는지, 기계식 키보드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 리포트는 거창한 인테리어 공사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이 잘되는 장소를 만드는 작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잘러의 오피스 vs 일못러의 오피스

미국 드라마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챙겨봅니다. 프로그래머인 리처드가 창업한 벤처기업 피리부는 사나이(Pied Piper)의 모험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피스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시즌5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그는 개발자를 최소 15명 이상 고용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새 오피스가 필요하겠죠?

©Shutterstock그러나 리처드가 앞장서서 데려간 사무실은 새하얀 밀실입니다. 창문이 하나도 없어 햇빛을 대신할 형광등을 가득 켜둔 덕분에 더 하얗게 보입니다. 여기에서 일하면 지금이 몇 시인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전혀 모를 것 같을 정도입니다.

 

상황을 파악한 팀원이 한쪽 구석으로 리처드를 데려가서 이곳에서 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게 말해도 소리가 반사되어, 비밀 대화를 하기는커녕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당연히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정말 너무하다 싶은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사실 제가 일했던 회사들도 꽤 굉장했습니다.

  • 실내에서 수시로 끊임없이 담배를 피운다.
  • 건축 모형을 만들기 위해 독성 있는 유기용제를 포함한 각종 스프레이를 뿌린다.
  •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직원들이 직접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한다.
  • 의자가 부족해 만 원짜리 이케아 스툴에 앉아 철야 업무를 한다.
  • 화장실 벽이 얇아 바지 지퍼 내리는 소리와 물 내리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모든 회사가 햇볕이 들고, 환기가 잘 되면서 바깥 풍경까지 좋은 오피스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독한 페인트 냄새 때문에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픈 환경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탁한 공기 속에서 업무에 집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팀원이 더 효율적으로,
더 즐겁게 일하기 원한다면
업무 환경부터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요?

오피스 디자인이 필요 없는 회사는 없다

오피스 디자인을 하다 보면, 다양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 카페에서 일하기 힘들어서 아무래도 작업실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요?
  • 곧 이사해야 하는데, 어떤 코워킹스페이스로 가는 게 좋을까요?
  • 드디어 이사할 사무실을 정했는데, 콘센트가 부족해요! 이런 문제도 인테리어 회사에서 해결해주나요?
  • 코워킹스페이스 6인실에서 14인실로 옮기는데, 자리 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회사 의자가 너무 불편한데, 사무실 의자 좀 추천해주세요. 그런데 스탠딩데스크 쓸만한가요?

디자인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마 본인도 모르게 좋은 업무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피스 디자인의 목표는 일하는 데 있어 구성원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를 바꾸거나 해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모든 회사가 오피스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상황 안에서,
각자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 인원이 늘어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할 준비를 해야 할까요? 저는 그보다 현재 오피스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낭비하고 있는 공간은 없는지, 조직문화에 맞는 최적의 레이아웃인지, 직원 모두가 꼭 개인 책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등의 주제로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과도한 예산을 무리하게 사용해 진행하는 인테리어 공사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특히 회사 소유의 건물이 아니라면 더욱 하나하나 따져보고 꼭 필요한 공사만 최소한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항상 나중에 들고 갈 수 있는 가구, 조명, 소품 등에는 투자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또한 직원들의 만족도는 의외로 화려한 인테리어보다 다른 부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싼 소재로 만든 간판보다 수시로 꺼내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더 좋지 않으신가요?

슬로워크의 오아시스 ⓒ김란오피스 디자인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준비한 위시컴퍼니(WISHCOMPANY) 공사를 마무리하고, 집기와 전자제품까지 전부 설치한 다음이었어요. 아직 사람들이 한 번도 출근하지 않은 새로운 오피스를 같이 둘러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입주 청소까지 싹 마친 말갛고 조용한 사무실에 햇볕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그때 위시컴퍼니 이사님과 나눴던 이야기를 아직도 종종 떠올립니다.

이렇게 멋진 오피스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공간이 준비되었으니 더 좋은 분들을 저희 회사로 모셔오는 일만 남았네요.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맞지만, 멋진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인생을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이 회사는 앞으로 잘되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쩌면 그때 나눴던 대화가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오피스 디자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공사 후 1년이 지났으니 위시컴퍼니의 사무실은 그때 그 순간만큼 깨끗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서 생활감이 넘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훨씬 더 아늑하고 위시컴퍼니다운 모습으로 변화한 거죠.

위시컴퍼니 내부 ©김란사실 오피스를 유지하는 일에는 꽤나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오피스에서 낭비되는 공간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저는 오피스 디자인이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피스 디자인은 예쁜 공간을 만드는 '장식'의 영역이 아니라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생활'의 영역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100개의 회사에는 그에 맞는
100가지 오피스 디자인이
있지 않을까요?

저도 여러 오피스를 디자인해왔지만, 모든 상황에 절대적인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제가 고민하며 풀었던 문제와 답변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 리포트가 '일하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