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소비로 자리 잡은 레트로

지난 연말에 갑자기 소니의 PS-HX500 턴테이블을 샀습니다. 그동안 사용하던 브라운의 SK 4가 고장 나서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주문했습니다. 지난해 말, 한 매체에서 올해의 디자인을 선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가 고른 것이 바로 이 제품이었으니까요.

 

옆에 두고 보니 소니는 보면 볼수록 제가 떠올리는 턴테이블의 전형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담아낸 디자인처럼 느껴졌고, 디터 람스의 1950년대 작품은 가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소니의 것이 제가 느끼기엔 지금 가장 멋진 디자인(레트로 아이템)이었습니다.

소니의 PS-HX500 턴테이블 @SONY

레코드플레이어를 더 많이 즐기려면 콘텐츠가 필요한 법이죠. 소니는 29년 만에 LP를 재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LP의 인기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레코드 붐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밀레니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LP에 이어 카세트테이프가 다음 주자로 인기를 끌 준비를 하는 상황입니다. 카세트가 없는데 어찌 음악을 들을지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코드가 들어있으니까요.

 

어떤 미래학자는 음악산업이 가장 전위적이기 때문에 음악을 보면 미래 트렌드를 예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레트로 마니아>를 쓴 사이먼 레이놀즈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합니다. 그는 현재가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에 열광하는 시대라면서, 21세기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노스탤지어 산업을 분석하고 우리 시대 독창성과 독자성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합니다.

사실 복고, 레트로는 트렌드를 말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지난 몇 년간 레트로가 지향했던 핵심 시기는 1990년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3040이었고, 이들이 이 시기를 문화 코드와 트렌드의 중심에 올려둔 까닭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겪은 특정 시점을 복기하게 만드는 향수 산업은 늘 성황을 이루는 법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은 재탕 혹은 박제된 과거에 가까웠습니다.

 

취향의 소비로 자리 잡은 레트로

지난 연말에 갑자기 소니의 PS-HX500 턴테이블을 샀습니다. 그동안 사용하던 브라운의 SK 4가 고장 나서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주문했습니다. 지난해 말, 한 매체에서 올해의 디자인을 선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가 고른 것이 바로 이 제품이었으니까요.

 

옆에 두고 보니 소니는 보면 볼수록 제가 떠올리는 턴테이블의 전형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담아낸 디자인처럼 느껴졌고, 디터 람스의 1950년대 작품은 가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소니의 것이 제가 느끼기엔 지금 가장 멋진 디자인(레트로 아이템)이었습니다.

소니의 PS-HX500 턴테이블 @SONY

레코드플레이어를 더 많이 즐기려면 콘텐츠가 필요한 법이죠. 소니는 29년 만에 LP를 재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LP의 인기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레코드 붐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밀레니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LP에 이어 카세트테이프가 다음 주자로 인기를 끌 준비를 하는 상황입니다. 카세트가 없는데 어찌 음악을 들을지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코드가 들어있으니까요.

 

어떤 미래학자는 음악산업이 가장 전위적이기 때문에 음악을 보면 미래 트렌드를 예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레트로 마니아>를 쓴 사이먼 레이놀즈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합니다. 그는 현재가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에 열광하는 시대라면서, 21세기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노스탤지어 산업을 분석하고 우리 시대 독창성과 독자성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합니다.

사실 복고, 레트로는 트렌드를 말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입니다

지난 몇 년간 레트로가 지향했던 핵심 시기는 1990년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대중문화를 가장 왕성하게 소비하는 3040이었고, 이들이 이 시기를 문화 코드와 트렌드의 중심에 올려둔 까닭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겪은 특정 시점을 복기하게 만드는 향수 산업은 늘 성황을 이루는 법이지만, 지금까지 그것은 재탕 혹은 박제된 과거에 가까웠습니다.

 

이에 반해 특히 지금 대세를 이루는 레트로 현상은 밀레니얼들에게 과거의 향수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점에서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복고의 귀환과는 좀 다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연필이나 종이 같은 아날로그는 일종의 유기농적 경험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흔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대척점에 놓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의 양상은 조금 다릅니다. 외형은 레트로의 감성이지만 기능은 편리한 최첨단이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 경우도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레트로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필름 카메라의 불편함 마저 그대로 옮겨 성공을 거둔 구닥 앱이 좋은 예입니다. 작은 뷰 파인더로 24컷을 다 찍고 3일 뒤에야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사진 품질 역시 좋지 않지만, 이 의도된 불편함에 밀레니얼들이 반응했습니다.

촬영하고 3일이 지나야 사진을 볼 수 있는 구닥 앱 @Screw-bar

월간 <디자인>이 준비한 리포트 '크리에이터가 알아야 할 젊은 레트로 7'은 이처럼 대중문화부터 전 산업에 파고드는 새로운 경험으로서의 레트로를 주목했습니다. 최근에는 곳곳에서 레트로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일본에서 1천만 사용자를 거느리며 국민 모바일 게임으로 자리 잡은 모바일 아바타 서비스 라인 플레이도 좋은 예고요.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와 소비문화에 지쳐 나타나는 반발 현상이라는 뻔한 분석이 있지만, 레트로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과거에서 가져온 문화적 양상에 더해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덕분에 누구나 과거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레트로는 이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특정 계층에서 소구하는 추억의 산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소비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친숙하고, 새로움의 얼굴을 한 레트로는 현재 가장 매력적인 콘텐츠입니다.

 

- 월간 <디자인>, 전은경 편집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