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음악 시장에서 '물성'이 증발하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1931년 등장한 이후 20세기 전반에 음반 시장을 장악했던 바이닐과 1979년 소니의 휴대용 워크맨 개발 이후 붐을 이룬 카세트테이프는 CD*가 등장하며 디지털에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했고, 아이팟 등 MP3 기기의 등장으로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2006년, 전 세계적으로 새 레코드판의 판매량은 불과 300만 장에 불과했다.

* CD는 물성을 지니고 있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하기 때문에 통상 디지털 음원으로 넘어가는 가교였다고 보인다.

 

소수의 컬렉터들 덕분에 근근이 명맥은 이어갔지만 바이닐의 박물관행은 정해진 수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 아날로그 음반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것도 가장 먼저 씨가 마를 것 같던 바이닐로부터 말이다.

미국에서 열린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가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소규모 레코드점들이 연합해 매년 4월 셋째 주에 여는 이 이벤트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LP 레코드의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음반산업협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LP 앨범의 연간 판매 성장률은 20%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수치는 소비자 분포에서 나타난다. 음반업계 리서치 전문 업체인 뮤직워치(MusicWatch)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영국 LP 레코드 시장의 주 소비층은 18~24세였고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이었다. 이는 바이닐의 소비층이 과거의 향수를 품은 기성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모 세대가 아이팟, 페이스북 등 디지털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자 자녀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사용하는 것은 결국 '힙'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바이닐은 반문화(counterculture)로서의 명성을 회복했고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를 파고들었다.

레코드의 부활을 견인한 디자인, 서울레코드페어

북미나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바이닐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2011년에 시작한 서울레코드페어가 그 증거다.

서울레코드페어의 역대 포스터. 스튜디오 fnt 이재민 실장은 2011년 첫 행사부터 지금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디자인계에서 소문난 바이닐 애호가이기에 주최 측은 행사 관련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는 편이라고. ⓒ서울레코드페어당시 소니레코드에 근무하던 김영혁(현 김밥레코즈 대표)과 비트볼레코드, 일렉트릭 뮤즈, 카바레 사운드의 연합체인 라운드앤라운드가 공동 기획한 이 행사는 2017년 관람객 1만 명을 돌파했다. 20여 개에 불과했던 참가업체도 3배 가까이 늘었다. 폭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척박한 국내 레코드 시장을 감안하면 실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