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선택으로서 리모트워크가 갖는 의미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Z세대*의 인식에 관한 리서치를 보면, 확실히 젊은 세대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뀌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은 한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 IT기술과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된 2000년대 전후로 태어난 세대

 

내가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하루 절반 이상이 사무실에서 무의미하게 버리는 시간이었다. 대부분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대기 시간이었고, 성과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회사와 팀을 위해 해야 한다고 믿었던 (지금 생각하면 참 비생산적인) 일들이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한 시간 반을 길거리에 버려야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비인간적인 지하철 안에서 한 시간을 버티고 나오면 한껏 짜증이 날 정도였다.

오래전, 페이스북에 공유한 비인간적인 출근길 경험 포스팅 (이미지 제공: 최두옥)

전 세계 어디든 연결할 수 있는 컴퓨터를 한 사무실에 모아놓고, 그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수년 전 나의 아침은 늘 그렇게 시작했고, 저녁도 늘 그렇게 마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는 타인의 시간표에 따라 살지 않는다. 사무실에 나가는 날은 러시아워가 끝난 후에 집을 나서서 길거리에 버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온라인으로 해결이 힘들거나 비효율적인 경우에만 오프라인 미팅을 잡는다. 그마저도 가능하면 화요일과 목요일에 몰아 잡아서 업무 전환에 드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웬만한 미팅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최두옥

반면 혼자서 일하는 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로 최대한 앞당긴다. 이때가 컨디션이 가장 좋고 외부의 방해도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할 때와 비교했을 때, 5일 기준으로 평균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의 시간이 남는다.

 

이 시간은 평소 하고 싶던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고, 가족을 위해 쓸 수도 있다. 함께 사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직업 특성상 자기 시간의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가족 여행이나 외식을 주말이 아닌 평일에 한다. 이럴 때는 똑같은 평일 하루지만 훨씬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없다. 리모트워크 덕분이다.

 

리모트워크로 일하면서 그 효용성을 제대로 경험한 나는 2018년 하반기부터 개인 생활에도 리모트워크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하는 캐주얼한 티타임을 화상 티타임으로 대신하면서 효율이 늘었다. 주로 특별한 목적 없이 일상을 공유할 때 화상 티타임을 가진다.

 

이를 통해 이동 시간을 줄인 대신 페이스북 메신저나 스카이프를 통해 지인들과의 교류 회수를 늘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제안하면서도 너무 비인간적인 건 아닐까 불안했는데, 모니터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차를 마시는 일이 생각보다 편안하고 따뜻해서 놀랄 정도였다. 적어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으면서 출석률도 높아졌다. 유튜브를 통한 라이브 중계를 통해 강의실이 아닌 집에서 편안하게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한 번은 수업이 있는 날 저녁에 전라도 광주에서 스마트워크 특강이 있었다. 평소라면 수업에 결석했겠지만, 이날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5주간의 수업이 끝난 후 개근한 학생에게 주는 상도 받을 수 있었다.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에서 개근상을 받다. ©최두옥

정보의 양과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사회에 적응하면서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돈도 승진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소확행*'이나 '워라밸'이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제한된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다.

* '소소하지만 확실한 지금의 행복'의 줄임말로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의미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하루 24시간을
최대한 주도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는 시간의 주도권을 개인이 갖는 '리모트워크'는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기업의 선택으로서 리모트워크가 갖는 의미

언젠가 스마트 오피스와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하고 싶다고 하여 만났던 대기업 담당자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꽤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이 회사가 어떤 계기로 스마트워크 도입을 고려하게 되었는지가 내 첫 번째 질문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5년간 우리 회사에 지원하는 신입 지원자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요. 연봉이나 복지 조건은 확실히 이전보다 나아졌는데 왜인지 모르겠어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입사 후 1년 안에 퇴사하는 직원의 수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가 바라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직원들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서 퇴사하고, 매뉴얼대로 시키는 일만 잘하는 직원들은 계속 남는다고 했다.

 

한두 명만 그렇다면 직원 당사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몇 해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현상인 것을 보니 이제는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도 덧붙였다.

생존을 위해서
조직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Z세대가 이전 세대와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에게는 데스크탑이 업무 도구고, 데스크탑과 직장 동료가 있는 사무실이 일터였지만, Z세대에게는 손안에 쏙 들어가는 스마트폰이 곧 업무 도구이고,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무실이 된다.

 

이런 세대에게는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 나와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서너 단계의 결재 라인을 거치는 동안 대기 상태로 있는 상황은 너무나 답답할뿐더러, 준비도 예고도 없이 아이디어 회의를 소집하는 팀장은 이해조차 가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는 일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과 가족을 희생했고, 심지어 이를 미덕으로까지 여기는 세대였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Y세대와 Z세대는 일과 삶, 둘 중 어느 것도 희생하길 원치 않으며,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을 활용해 일과 삶의 균형 혹은 통합을 추구한다.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삶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균형과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리모트워크다.

 

리모트워크의 핵심은 회사가 일괄적으로 관리해 온 직원의 시간을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해야 할 일도 많고, 개인의 욕구와 상황도 복잡해진 사회에서는 조직이 직원의 시간을 주도하기가 어렵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하는 일에 따라 효율을 모색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는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마친 밤이 가장 일하기 좋고, 저녁마다 수영을 배우는 싱글에게는 낮이 가장 일하기 좋을 것이다. 중요한 버그를 해결해야 하는 프로그래머에게는 동료의 방해가 없는 시간이 효율성을 높일 기회다.

 

실제로 몇 년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서 조사한 리서치*에 의하면, 일반 직원보다 4배 이상 생산성이 높은 고성과자 상당수가 업무장소의 유연성(44%)과 업무 시간의 유연성(42%)을 원한다고 답했다. 일반 직원들과의 직접적인 비교가 없어 아쉽긴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고성과자들이 일하는 시간과 장소의 주도적인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관련 아티클: What High Performers Want at Work (HBR, 2014.11.18)

 

이를 좀 더 확장해보면, 리모트워크는 기업이 인재를 유인하고 확보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리모트워크를 하면 회사가 채용할 수 있는 인재의 범위가 거의 무제한으로 넓어진다.

 

또 출산이나 육아, 병든 가족 수발이나 배우자의 전근 등으로 정상적인 출퇴근이 일시적으로 힘든 인재들의 퇴사도 막을 수 있다. 한국처럼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심각한 곳에서는 유연근무만큼이나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리모트워크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리모트워크를 현실성 없는 젊은이들의 헛된 이상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외에는 이미 리모트워크로 세계의 인재를 선점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챕터3에서 언급한 '오토매틱'이다.

* 최근 한국에서도 리모트워크를 시도하는 사례(스타트업 스터디파이)가 생기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오토매틱은 온라인 블로그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워드프레스(Wordpress)'의 개발사다. 2005년에 만들어진 이 회사의 직원은 총 500명인데,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물론 인사팀 같은 본사 직원들까지 전 직원이 100% 리모트워크로 일한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몰려든 인재들 덕분에, 직원 수는 500명밖에 안 되지만 기업가치는 1조 원이 넘는다.

 

오토매틱은 업무 시간 역시 탄력적이어서 최소 근무 시간이나 휴가처럼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업무 제도가 아예 없다. 회사와 팀이 사전에 정한 목표를 최적으로 달성한다는 큰 방향성 아래 모든 직원은 언제 일하고 쉴지 스스로 결정한다.

 

모든 업무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고, 심지어 채용도 온라인 인터뷰로만 진행한다. 오토매틱의 홈페이지에는 세계 곳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 공간을 찍어서 올린 페이지가 있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인재라면 이 회사를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2017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리모트워크를 통해 같은 조건으로 훨씬 더 역량이 높은 이들을 채용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우리의 목표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정부의 스타트업 발굴 및 육성사업 프로그램을 마케팅하는 일이었는데,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면서도 SNS 마케팅 감각이 있고, 영어를 포함한 두 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했다.

 

이런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갖춘 이들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리모트워크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세 개의 언어(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담당할 사람들을 각각 구하면서 우리는 100% 리모트 워크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상당한 역량을 갖춘 현지의 인재들과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일할 수 있었다.

글로벌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리모트워크로 진행한 프로젝트 멤버들 ⓒ최두옥

이미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협업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는 제약이 거의 없어졌고, 속도 역시 실시간에 가까워졌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시대, 창의적인 서비스 하나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시대.

이 시대 경쟁력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다

직원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직원들이 마음껏 자신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회사. 이제는 그런 업무 환경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한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