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리모트워크를 하고 있다

이번 리모트워크 프로젝트의 주목적은 리모트워크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직접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어려움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리모트워크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자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리모트워크에 대한 인식이 낮고, 비대면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만나서 일을 하려는 관성이 크다. 그렇기에 리모트워크의
효율성을 맛볼 기회 자체가 적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한 달 동안은 달랐다. 한국에 있는 직원이나 파트너들과 직접 만나서 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도 리모트로 일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제한된 환경 속에서 업무 효율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리모트워크로 일해야만 하는 환경'에 몰아넣은 결과,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다양한 면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이미 우리가 한국에서도 상당한 업무를 리모트워크 방식으로 해왔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한국에 있는 직원들과 미팅 중인 모습 ©최두옥

한 사무실에 있지만 컴퓨터로만 협업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이 둘은 굳이 한 사무실 혹은 한 건물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 일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회사에서 일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상사가 너무 바빠서 주로 전화나 메일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빠서 대면할 기회가 없든, 해외에 있어서 대면할 기회가 없든 직접 만나지 않고 일하는 것은 똑같다. 이미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나 연결된 상태이고, 또 언제든 일할 수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리모트워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리모트워크가 더딘 진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함께 일한다'는 인식이 아직 물리적인 공간에만 한정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세계 최고로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매우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이 만나야만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간단한 장비와 인프라만 갖춰지면, 우리는 어디에서나 연결되어 있다. ©최두옥

하지만 한 달간의 리모트워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답을 보여주었다. 일은 비대면을 기본값으로 했을 때도 충분히 진행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전보다 다른 차원의 효율이 높아진다. 우리가 그동안 만나야만 일이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일의 진행과는 별개로 그래야만 마음이 놓여서였을지도 모른다.

미리 계획해야 리모트워크를 할 수 있다

리모트워크를 제대로 하려면, 하려는 일의 결과를 명확히 그릴 줄 알아야 하고 그 과정을 미리 계획해야만 한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의 최종 결과물이 무엇이며 그 산출물이 어떤 형태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의미 없고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버리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리모트워크를 하려면 리더는 물론이고 팀원 모두가 자신이 관여하는 업무의 비전과 로드맵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리모트워크는 매일 아침에 세우는 계획으로 시작한다. ©최두옥

우리에게 있어 계획의 중요성이 단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원격 미팅이었다. 네덜란드에 있는 우리가 한국에 있는 직원들과 원격 미팅을 하려면 시차를 고려해서 업무를 미리 조율해야만 한다. 또 미팅 후에는 각자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미팅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모든 사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미팅의 목적, 참석자, 안건, 참고자료 등을 적어도 하루 전에 미리 공유해야만 한다. 준비하지 않은 미팅은 시간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리모트워크의 효율성과 가능성은 상상 이상이다

대면 업무만큼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할 방법은 없다. 다만 문제는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앞뒤로 엄청난 이동 시간과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워라밸이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이나 건강 등 중요한 개인적인 가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대면 업무 자체의 효율은 높지만, 그를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계산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만큼 비효율적인 방식도 없다. 기술 수준이 낮던 20년 전이라면 만나지 않고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모여야 했지만, 이제는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나도 이전에는 사무실에서 8시간을 일하려면 앞뒤로 서너 시간을 출근 준비와 이동에 소비해야 했다. 업무 도중 외부 파트너와 미팅이 있으면 두 시간의 이동 시간이 추가로 버려졌다. 같은 날 두 개의 미팅이 잡힌다면 온종일 몸은 매우 바빴지만 업무 진행은 더뎠다.

 

게다가 사무실 안에서는 팀장인 나의 존재가 팀원들에게 늘 노출된 상태이다 보니, 업무 시간에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3~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서 업무량이 많을 때는 '직원들이 퇴근한 6시부터가 내 업무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습관적인 야근을 했다. 거의 매일 대중교통이 끊기기 직전에 퇴근하니 가족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리모트워크를 하는 동안에는 길거리에서 시간을 버리거나 나를 방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못 끝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침을 조금만 일찍 시작하면 오후 2시까지는 그날 해야 할 일이 충분히 마무리되었다.

적어도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데 있어서
'시간 부족'이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기도 했다. ©최두옥

평일 저녁과 주말은 편한 마음으로 동료들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시내 관광도 했다. 일반 사무실이라면 반나절에서 하루가 걸렸을 한국 잡지사와의 인터뷰도 원격으로 단 두 시간 만에 끝냈다. 동료 중에는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여유를 만들 수 있을 만큼 평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사람도 있었다.

로테르담에서 열린 마라톤 경기 ©최두옥

이렇게 리모트워크의 효율성을 제대로 경험하면, 리모트워크는 하루라도 빨리 조직 안에서 제도화해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마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던 사람이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경험한 후의 기분이랄까.

리모트워크를 하면 오프라인 만남이 더 소중해진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리모트워크를 하면 일터가 삭막해지고 인간관계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온라인이나 전화를 기반으로 한 리모트워크에 익숙해지면 오프라인에서 동료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이 훨씬 소중해진다. 사람들이 함께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프라인 미팅을 위한 준비는 한층 더 치밀해지고, 모임의 목적과 결과물에 더 집중하게 된다. 한마디로 영양가 높은 오프라인 업무가 가능해진다.

오랜만에 만난 네덜란드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는 설레기까지 했다. ©최두옥

그뿐만이 아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워크숍이나 회식이 이제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었다. 습관적으로 하는 회식이나 일방적으로 열리는 주말 야유회에 끌려가던 이전과 달리,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만나는 기회에 집중하게 되었고, 심지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까지 한다.

리모트워크는 능력이 아니라 연습이다

어떤 사람들은 리모트워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소수의 인재에게만 리모크워크가 허용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리모트워크는
재능보다 연습에 가깝다

리모트워크는 타고난 능력보다 리모트 환경에 맞춰서 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최적화된 업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건 상사의 허락이 필요 없는 성인의 능력이자 권리다. 같은 사무실에 있지 않은 부하 직원이 일을 제대로 안 할까 봐 걱정된다면, 진짜 문제는 리모트 워크가 아니라 동기 부여에 있다.

 

능력이 아닌 연습으로서 리모트워크를 인정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일상의 업무 구석구석에서 리모트워크를 연습하는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도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 ©최두옥

먼저, 특정 과업의 마감 기한을 명확하게 정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끝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정해진 기한 안에 일을 끝내지 않으면 그다음 절차에서 모두 '대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완성도를 높여 기한을 넘기기보다는 기한 안에 최소한의 수준으로 마무리하고 상황에 따라 개선하는 편이 낫다.

 

또한, 온라인에서 함께 일할 때 그 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리모트워크에서는 일하는 장소보다 일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몇 시간을 일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로 정한 시간에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는 종종 리모트워크를 하면서 화상회의 도중 다른 프로젝트 자료를 보거나, 통화 버튼만 눌러놓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글로벌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은 본사와의 화상회의에 참가해 놓고 소리 차단 버튼을 누른 적도 있다. 리모트워크에서는 최악의 행동이다.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은 미팅이라면, 차라리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낫다.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의 문제다. 리모트워크에서는 같이 일하기로 한 시간이 30분이라면, 그 시간에는 완벽히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이는 자유로운 업무 공간을 사용하는 데 대한 최소한의 룰이다.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란 모든 이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다 말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가 안 되거나 모호한 부분을 꼭 확인하는 것, 업무 관련된 이슈를 왜곡하거나 숨기지 말고 공유하는 것, 업무와 얽힌 자신의 감정을 너무 늦기 전에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등이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에 포함된다.

 

특히 일과 관련된 감정 공유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대부분의 오해는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둘러싼 정보의 부족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업무에 관련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었다. 학교나 직장에서 중요한 건 언제나 감정보다는 정답이었고,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시비 관념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이 뿌리를 뽑는 방법은 부단한 연습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