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을 위한 도시 찾기

리모트워크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디지털 노마드를 떠올린다. 한적한 해변에서 노트북을 들고 일하는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리모트워크' 하면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 ⓒShutterstock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사무실 밖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안다. 전원도 없는 바닷가 한복판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나 혼자 일하는 기분이 어떤지. 게다가 해변 모래알이 자판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그날 업무는 말 그대로 끝이다.

 

우리가 한 달간 리모트워크를 하기로 했을 때 가장 신중하게 선택한 것 중 하나는 장소였다. 만약 단 며칠만 머물 일정이라면 고민할 게 없다. 그저 인터넷 속도만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직항 노선이 있는 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이제 한국만큼 인터넷이 빠르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머물면서 일할 때는 고려할 사항이 많아진다.

단순히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장에서는 리모트워크에 적합한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 몇 가지를 소개한다.

나에게 편한 언어가 통용되는 곳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끼리 가서, 한국 파트너들과 일하는 데 언어가 중요한가요?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서바이벌 영어 몇 마디면 충분하지 않나 싶은데요.

만약 관광을 간다거나, 하루 이틀짜리 컨퍼런스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 달간 일하면서 그 지역에 살기 위해서는 서바이벌 영어가 아닌 그 지역에서 통용되는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구글 번역기나 사전 없이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언어는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사고하는 방식과 인간관계의 범위를 결정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한국에 살게 되면 한국인 특유의 사고를 이해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인 친구도 사귀기가 어렵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활동 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언어는 우리가 일하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폭과 깊이를 결정한다
혼자 조용히 글만 쓰러 간다고 해도, 글 쓰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그 사회와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표면적인 관찰 수준을 넘기 어렵다.

 

가장 좋은 선택지는 리모트워크를 하는 도시의 로컬 언어를 아는 것이다. 파리를 간다면 프랑스어를, 암스테르담을 간다면 네덜란드어를, 슈투트가르트를 간다면 독일어를 아는 것이 최고의 조건이다. 하지만 한 달의 리모트워크를 위해서 몇 개월을 들여 외국어를 공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행히도 유럽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처럼 영어가 통용되는 나라가 많다.

 

우리가 네덜란드를 리모트워크 목적지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역시 언어였다. 알파벳 'G'를 가래 뱉는 소리로 끌어내는 거친 네덜란드어가 분명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영어가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길 가는 할머니에게 영어로 길을 물어도 안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한다. 영어로 물었을 때 답을 못하는 사람은 관광객이거나 이민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콧대 높은 몇몇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네덜란드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관대해서 그들끼리 네덜란드어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외국인이 대화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바꿔준다.

 

우리의 리모트워크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수반되는 프로젝트였기에 언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가 편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통용되는 곳이라면 리모트워크를 하는 동안에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언어는 앞으로도 우리가 리모트워크 도시를 선정할 때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될 것이다.

스마트워크 정신이 녹아있는 곳인가?

스마트워크의 기본 철학은 자율, 책임, 신뢰, 투명성이다. 자율은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과 수단에 있어서 유연함을 갖는 것이고, 책임은 유연함에 대한 결과를 주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뢰는 자율과 책임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투명성이다.

 

스마트워크의 일종인 리모트워크는 스마트워크의 기본 철학에서 생겨났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숙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리모트워크를 하는 도시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스마트워크 철학과 맥을 같이 하면, 리모트워크를 하는데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게 된다.

 

특히 자율과 책임이 사회 전반에 깔린 도시에서는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효율적으로 일정을 짜기가 쉽다. 일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도 홈페이지에 적절하게 공개되어 있으며, 그 정보는 대부분 믿을만하다.

우리에게는 네덜란드가 그런 나라였다네덜란드는 자율과 책임에 대한 국민 수준이 높고, 사회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투명하고 믿을만하다. 역사적으로도 국토의 삼 분의 일이 해수면보다 낮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 온 나라여서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다.

 

정부도 규제보다는 허용을 기본으로 하되, 자율과 책임을 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많다. 마약 단속에 엄청난 돈을 쓰는 미국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마리화나 같은 약한 마약류가 합법임에도 불구하고 마약류로 인한 범죄율과 중독률은 미국보다 훨씬 낮다.

 

이러한 네덜란드의 분위기는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마이크로소프트 지점 중에서 가장 먼저 출퇴근 개념을 없애고 스마트 오피스를 만든 곳이 암스테르담 지점이다. 또한, 역사 깊은 네덜란드의 보험회사 A.S.R은 최첨단 시설의 본사 1, 2층을 인근 대학생들이 도서관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으며, 네덜란드 경찰은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 스마트워크 철학이 배어있는 네덜란드는 리모트워크를 하기에도 편한 나라다. 특히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Rotterdam)'이 그렇다. 관광객들의 놀이동산이 되어버린 암스테르담에 비해 로테르담은 현지인 비율이 높아서 도시 전체가 차분하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받고 폐허가 되었던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재건축되어 수도인 암스테르담보다 전반적인 시설도 좋다.

머무는 동안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곳인가?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만난 리모트워커 중에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하는 디지털 노마드보다는 좀 더 쾌적하고 인간다운 환경에서 여유롭게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예를 들면, 서울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소속되어 서비스를 개발하지만, 서울처럼 복잡한 대도시보다는 공기가 맑고 조용한 소도시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리모트워크 ⓒ최두옥

나 역시 그런 리모트워커다.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지금처럼 서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면서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이 좋고, 날씨가 좋은 날엔 가족과 함께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기를 즐긴다.

 

여력이 된다면 파리 근교에 살면서 주말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고, 피로감에 찌든 회식보다는 이웃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소한 시간을 꿈꾼다. 확실하게 쉬어야 일할 때 제대로 집중할 수 있다.

 

이번 리모트워크에 참가한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리모트워크 목적지를 정할 때 일만큼이나 '삶'의 측면에도 무게감을 뒀다. 일하는 동안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인가. 일하는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고, 우리의 인간다움을 자극하는 곳인가.

 

자연스레 우리는 리모트워크를 할 도시의 물가, 교통, 문화예술, 자연과 도시의 조화 같은 요인들을 고려하게 되었다. 물가는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데 부담이 없는 수준을 말한다. 우리에겐 주변 환경이 좋은 집과 수준 높은 공연, 신선한 식재료와 질 좋은 커피가 중요했다.

 

교통은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시간 소요가 적은지를 의미한다. 보통 일은 도시의 중심에서 하고 여가는 외곽에서 즐기기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으면 일 속에 갇히기가 쉽다.

 

문화예술은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을 접할 기회가 얼마나 많은지를, 자연과 도시의 조화는 자연의 편안함과 도시의 편리함이 균형을 갖추고 있는지를 말한다.

 

 
 
 
 
 
 
 
 
 
 
 
 
 
 
 

Christina(@een_wasbeer)님의 공유 게시물님,

* 자연과 도시가 균형을 이룬 로테르담 전경 ⓒeen_wasbeer/Instagram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우리가 고려한 엄격한 요소들을 상당 부분 갖춘 도시 중 하나였다. 물가, 교통, 예술, 자연과 도시의 조화 모든 영역에서 놀랄 만큼 만족스러웠다.

 

우선 암스테르담만큼 물가가 높지 않았다. 풍요로운 삶의 기본 조건인 좋은 집과 신선한 식재료가 체감상으로는 암스테르담의 70% 수준으로 서울보다 저렴했다. 특히 신선한 고기와 해산물이 풍부해서 우리는 외지에서도 매끼 영양 가득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고기와 싱싱한 해산물로 마련한 우리의 저녁 식사 ⓒ최두옥

또한 비즈니스의 중심인 암스테르담까지 차로 1시간, 북해를 즐길 수 있는 헤이그 해변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한 위치였다. 창의적인 건축물과 예술 공연이 넘치기로 유명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 전체가 새로 지어졌지만 니우어마스강(Nieuwe Maas River)이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여 흐르는 덕분에 자연의 편안함과 도시의 편리함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을 선택했다. 많은 한국인이 유럽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 그것도 수도가 아닌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을.

리모트워커에게 로테르담은
뉴욕이나 파리보다
더 매력적인 도시다

이번 리모트워크에서는 로테르담을 선택했지만, 위의 기준들을 적용했을 때 높은 점수를 받은 도시들이 더 있다. 포르투갈의 신트라(Sintra), 프랑스의 리옹(Lyon),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에기나 섬(Aegina Island)이다. 만약 한 달 이내로 리모트워크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우리의 엄격한 기준에 밀려 아깝게 탈락한 이 도시들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