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다

수년간 워커홀릭이었던 나는 긴 직장생활에 쉼표를 찍고 스마트워크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갔다.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 출장에서 얻은 배경지식과 확신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스마트워크 리서치를 시작했고,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정부에 스마트워크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드물긴 했지만 스마트워크에 관심 있는 교수님들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네덜란드 파트너 두 명과 2개월간 네덜란드의 스마트워크 정부개혁 가이드를 한국어로 번역한 적이 있었다. 한 친구는 암스테르담에, 한 친구는 미국에 살고 있어서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능숙하지도 않았고 시차도 꽤 났던지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않고도 협업이 가능하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퇴사 후, 야근과 주말 업무 때문에 읽기 힘들었던 책도 맘껏 읽을 수 있었다. 주로 해외의 새로운 업무 방식에 관한 책이었다. 다음 날 출근 걱정 없이 책을 밤늦게까지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평일 낮에 오롯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회사에 다닐 때와 일하는 시간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길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자정이 다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에 대한 무게감은 확실히 달랐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에 대한 결정권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마트워크 디렉터로 독립한 초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스마트워크 업무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기획자로서의 경력이 스마트워크 분야의 경력보다 훨씬 길었으니까. 그래서 주 수입은 예전부터 하던 서비스 기획과 PM 업무에서 주로 충당했다. 그에 비하면 스마트워크 디렉터로 번 돈은 용돈 수준이었다.

 

* 스마트워크 디렉터를 하면서 병행한 업무 중 하나였던, 피플웨어 PM 업무 ⓒ최두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상업적인 그림을 팔아야 하는 화가처럼,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시장이 원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상황이 원망스럽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점유율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일하는 시간과 수입은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둘의 점유율은 언젠가 역전될 거라고 믿었다.

닐스 플래깅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반가운 메시지를 하나 받게 된다. <언리더십>을 읽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인상 깊은 구절을 SNS에 포스팅했는데, 저자 닐스 플래깅이 내 포스팅을 발견하고 연락해온 것이었다. 우리는 SNS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나는 그의 책이 내 커리어를 어떻게 바꿨는지 고백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부탁했다.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직접 당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마침 나의 지인을 통해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는 '스마트워크 국제 컨퍼런스'에 닐스 플래깅을 기조연설자로 추천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를 한국으로 초대할 기회가 생겼다. 코엑스에서 열린 이 컨퍼런스에는 스마트워크를 이끄는 국내외 리더들의 참석이 예정된 터라, 닐스 플래깅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며칠 후 닐스 플래깅이 살고 있는 독일의 비스바덴으로 날아가 이 소식을 전했고, 그가 한국에서 <언리더십> 이야기를 직접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설명했다. 닐스 플래깅이 기조연설을 하고 받을 강연료는 항공권과 체류비를 겨우 충당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는 행여라도 그가 초대를 거절할까 싶어 최선을 다해 행사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닐스 플래깅은 특유의 꼼꼼함과 컨설턴트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만나러 독일까지 날아온 사람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냐며 한국에서의 기조연설을 수락했다.독일에서 만난 닐스 플래깅(제일 오른쪽) ⓒ최두옥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그를 돕고자 했다. 닐스 플래깅의 홈페이지를 번역해서 홍보자료도 만들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고의 능력과 열정을 발휘한다

닐스 프래깅이 방문하는 일주일을 함께 준비할 사람들도 수소문했다. 그 결과 <언리더십>을 인상 깊게 읽었던 친한 친구 두 명이 뜻을 모아 주었다. 한 명은 금융권에서 오래 일했던 친구고, 또 한 명은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친구였다.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라 더 많은 사람에게 닐스 플래깅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외부 기관이 주최하는 행사에 덧붙여 자체 행사도 하나 기획하기로 했다. 행사명은 '잃어버린 심장을 찾아서'였다. 직장인들의 잃어버린 설렘과 열정을 찾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행복화실>의 정진호 작가와 <스파크>의 송인혁 작가도 연사로 함께해준다고 해서 더 힘이 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역 보좌역으로 활동한 변주경 통역사도 내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자리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그 역할을 맡으려고 했다. 하지만 심적 부담이 커서 내가 행사를 망치는 악몽을 종종 꾸기도 했는데, 마침 변주경 통역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다.

극도의 궁함에서 변화가,
변화에서 연결을 경험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이 구절을 믿기로 했다.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그걸 실현시키기려고 돕는단다.

그렇게 한 달간 준비한 끝에, 드디어 닐스 플래깅이 한국에 도착했다. 국내 최고의 강연 프로그램인 <세바시>에서의 영어 강연을 시작으로, 스마트워크 컨퍼런스 기조연설, 교보문고 독자 특강, 마이크임팩트 변화혁신 워크숍, 그리고 잃어버린 심장을 찾아서 행사까지 약 십여 개의 행사와 인터뷰를 쉴 틈 없이 진행했다.

 

그동안 변주경 통역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닐스 플래깅의 입과 귀가 되어주었고, 나와 다른 스태프들은 닐스 플래깅을 통해 대한민국 곳곳에 스마트워크를 전했다. 열정은 결심이 아니라, 내가 내 일의 주인이 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임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 닐스 플래깅 세바시 강연 ⓒ세바시

 

그렇게 모든 행사가 끝나고 닐스 플래깅이 한국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우리는 닐스 플래깅에게 다음 날 몇 시에 그를 픽업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어디에서 공항버스를 타는지 나도 잘 알아요. 버스를 혼자 탈 줄도, 내릴 줄도 알고요. 우린 성인이니까요. 내일은 다들 푹 쉬세요.

자가용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몇 번이나 더 말했지만, 닐스 플래깅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며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놔두고, 모두가 같이 가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냐고 반문하면서. 한국에 있는 내내 자신이 <언리더십>에서 말한 내용을 실천하던 그는, 그렇게 마지막 출국일까지 팀 전체의 효율과 생산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닐스 플래깅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다 큰 성인이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우리는 다 큰 성인인데
왜 회사에서는 서로
'관리'할 누군가를 두는 걸까?

우리는 성인인데, 어째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걸까? 믿음과 자율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서로를 성인으로 대접하면서 일할 수는 없을까?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스마트워크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첫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각 분야의 스마트워크 전문가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스마트 오피스를 설계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스마트워크의 기반인 IT 기술을 다루는 개발자, 공공기관의 스마트워크 정책을 만드는 연구원,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인사 제도를 정비하는 인사 담당자, 조직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강사까지.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깊이 있고 폭넓은 스터디를 할 수 있었다.네덜란드와 한국의 스마트 워크 전문가들과 진행한 토론 ⓒ최두옥

이렇게 수년간 스터디를 하면서, 스마트워크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의 스마트워크는 역사가 짧아서 범용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상태이다. 심지어 우리보다 앞선 유럽이나 미국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최적화된 스마트워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단지
정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노력의 방법 중 하나는 현장에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사무실을 스마트 오피스로 탈바꿈한 회사가 있다면 직접 찾아가서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지켜보고, 유연근무제나 재량근무제를 시도하는 조직이 있다면 왜 그런 제도를 시도했고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물어본다.


스마트워크가 실패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우리는 주로 스마트워크의 역사가 한국보다 십 년 이상 앞선 나라들의 시행착오를 연구하는데, 이렇게 하면 기업들의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이를 위해 2013년부터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뜻이 맞는 파트너들과 함께 해외로 스마트워크 리서치를 하러 간다. 첫 리서치는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짧으면서도 생산성은 최고로 높았던 네덜란드와 독일이었고*, 다음 해에는 일에 대한 인식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프랑스와 이스라엘이었다. 뒤늦게 빠른 혁신을 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도 몇 차례 다녀왔다.

* 참고 자료: 업무 시간(Hours worked)에 대한 OECD 데이터

독일 프라운호퍼 스마트워크 연구소 방문 ⓒ최두옥2018년 초에도 스마트워크 리서치를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 이번 컨셉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리모트워크'로 정했다.
 

이번 리서치에 참여한 멤버는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었다. 대기업 출신의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 코치인 피터 한(Peter Han),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 살면서 일하고 싶은 파리지앵 애머리 리그랜드(Amaury Legrand), 새로운 업무 방식을 자신의 조직에 적용하고 싶어 하는 YH, 그리고 일과 삶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스마트워크 디렉터인 나.리모트 워크 리서치 멤버들 ⓒ최두옥

* 리모트워크 프로젝트 발표 ⓒ최두옥

 

이번 리서치에서 참가자들은 리모트워크를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리모트워크를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리모트워크를 실행하면서 경험하는 장애물과 이점을 하나하나 기록하기로 했다.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일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주도권을 지키려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2018년 4월, 한 달간의 리모트워크 준비에 돌입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리모트워크를 제대로 경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리모트워크를 도입하려는 다른 조직에도 인사이트를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일과 삶,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현 업무 환경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