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일, 일! 24시간이 모자라

토즈에서 공간 비즈니스 기획팀장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한 번에 지점 두 개를 오픈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리서치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직원이었다. 출근은 보통 9시였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침 운동을 생략하고 새벽 6시에 나와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공기를 즐겼다.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았지만, 6시가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상사의 눈치를 봐서 그런 게 아니라, 일 자체가 많았다. 적어도 9시는 돼야 다음날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일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욕심을 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당시 나에게 6시로 정해진 퇴근 시간은 별 의미가 없었다. 정해진 업무 시간은 단지 다른 사람들의 방해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정도였달까.밤낮없이 일하며 기획했던 토즈 스터디센터 1호점©토즈스터디센터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 회사와 나의 성장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역량 있는 인재가 되려면 회사로부터 내려온 팀의 목표를 기대 수준 이상으로 달성하고, 팀원들이 일을 잘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때로는 가르치고 때로는 수습해야 한다고 여겼다.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공부와 자기계발도 지속하고자 했다.

 

이 모든 걸 해내기에 24시간은 항상 부족했지만,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면 점차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팀장님은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두옥 팀장의 열정은 사장님 다음으로 최고인 것 같아.

직장 동료와 상사들은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나? 물론 가끔, 아주 가끔은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퇴근은 계속 늦어지며, 부모님과의 식사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동시에 진행하던 네 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두 개가 끝나, 2주짜리 휴가계를 내고 네덜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휴가 관련해서 의논할 사항이 있다며 티타임을 요청하셨다. 휴가까지 미뤄가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줘서 고맙다고 격려금이라도 주시려나 싶었는데, 김칫국이었다.

 

사장님은 2주로 계획한 휴가를 일주일씩 나눠서 갈 수 없겠냐고 하셨다. 일주일만 휴가를 다녀온 직원들과의 '형평성'이 이유였다. 휴가를 가더라도 남은 두 개의 프로젝트 때문에 메일과 메신저로는 계속 일할 예정이라 우리 팀원이 아니면 휴가 중인지도 잘 모를 거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회사는 내가 내 '자리'에 앉아있길 원했다.

 

추가로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은 회사가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유럽 두 개국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시차 7시간에 왕복 비행 거리만 이틀이 걸리는 유럽을 일주일 만에 다녀오는 건 의미가 없겠다 싶어서 거절했다. 무엇보다 일 년 내내 딴생각도 하지 않고 일만 한 나 자신에게 단 2주의 자유 시간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플 것 같았다.

 

결국 나는 2주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긴 휴가는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자기 자리에 앉아있기를 바라는 회사의 경고를 받고, 거기에 맞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그 회사의 팀장 타이틀을 달고서는.

 

주로 노트북으로 일하는 나로서는 서울 사무실에 있든, 부산 사무실에 있든, 심지어 네덜란드의 카페에 있든 달라지는 게 없는데, 회사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휴가를 다녀온 후 인사팀장과 단독 면담을 했고, 직원마다 복지나 일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해주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거라고 제안했다.

 

당시 싱글이라 여행을 좋아하고 IT 업무 경력이 있던 나로서는 몇백만 원의 보너스보다는 무급이라도 일주일 정도 더 많은 휴가를 원했다. 만약 한 달 정도를 유럽에서 살면서 일할 수 있다면 연봉을 좀 낮춰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반면 이제 막 아이가 생긴 다른 팀장은 휴가를 반납하더라도 더 많은 보너스를 원했다. 어떤 팀원은 외근하러 다닐 때 휴대하기 좋은 애플 맥북을 지원받고 싶어 했고, 어떤 직원은 무료 저녁 식사와 스타벅스 커피를 원했다.

하지만 모든 직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억울함과 좌절감이 들었지만, 이게 뭐 하루 이틀 일이던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프로젝트와 일상 업무에 치이다 보니 그 감정들도 시나브로 잊혔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그러던 중 나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정부의 '스마트워크(Smart Work)' 정책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무실 모델을 만드는 일이었다. 2010년 당시 정부는 유럽과 미국에서 성숙한 '새로운 방식의 일하기(New Way of Working)' 개념을 공공기관과 공공기업을 대상으로 적용하고자 했는데, 이런 흐름을 읽은 당시 회사가 미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갓 조직에 들어온 신입사원들도 스마트워크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스마트워크가 새로 나온 업무용 스마트폰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다. '스마트'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사무실에 최첨단 ICT 설비가 들어오고 직원들이 태블릿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게 스마트워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스마트워크를 주제로 열리는 컨퍼런스에 가보면, 죄다 화상회의를 비롯해 기술과 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렇게 접근해서는 우리만의 독특한 오피스 모델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 나는, 이미 스마트워크가 정착된 미국과 유럽, 그중에서도 스마트워크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1~2개월간 그곳의 스마트 오피스에서 직접 일해보고, 스마트워크 방식으로 일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우리가 만들어야 할 스마트 오피스의 방향과 구체적인 형태가 그려질 것 같았다.

 

새로운 업무 공간이 빠르게 생겨나는 미국 뉴욕, 리모트워커(Remote Worker)*나 프리랜서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가 가장 먼저 나온 영국 런던, 그리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스마트워크를 향해 혁신 중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이렇게 3개국으로 향하는 티켓을 먼저 끊었다. 처음에는 서비스 모델을 같이 만드는 팀원과 함께 갈 생각이었는데, 목적에 맞춰 스케줄을 짜다 보니 일정이 한 달 이상 길어져서 결국 혼자 떠나게 되었다.

* 원격으로 근무하는 근로자,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근로자

**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협업 공간 또는 커뮤니티

ⓒRoss Parmly/Unsplash처음 도착한 곳은 런던의 코워킹 스페이스 '허브(The HUB)'였다.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위워크(WeWork)를 비롯해 글로벌 규모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2010년만 해도 코워킹 스페이스는 낯선 단어였다.

내 사무실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일한다고? 그것도 다른 회사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솔직히 당시에는 왜 그래야 하는지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첫 코워킹 스페이스를 경험했다.

 

런던에서 시작한 허브는 이미 유럽의 다른 도시에도 지점이 많았기 때문에 네덜란드 도착 후 현지 친구와 함께 네덜란드 지점에 등록했다. 한국의 칸막이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개방된 구조의 공간이었다. 일반 책상뿐만 아니라 소파와 스탠딩 테이블에서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사무실에서 일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코워킹 스페이스에서의 첫날은 공간과 사람 구경만 하면서 보냈다.코워킹 스페이스 허브(The HUB) 네덜란드 지점 내부 ⓒ최두옥둘째 날, 허브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내가 유럽에 온 목적에 대해 나눴다. 그러자 매니저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를 소개해 줬다. 대기업 직원이 왜 허브에서 일하는지 물어보니, 네덜란드에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를 집이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할 수 있게 허용하는 회사가 꽤 있다고 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은 구글과 아마존으로 인재가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해 훌륭한 인재를 붙잡고자, 몇 년 전부터 시간을 기준으로 근태관리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기 전 새롭게 바뀐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을 둘러보라며 유관 부서 직원의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이전 사무실에 비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사무실은 말 그대로 '일하고 싶어지는 곳'이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나는 네덜란드 허브를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네덜란드의 공공기관과 기업이 만든 스마트 오피스를 방문했다. 출장 목적이 '새로운 형태의 오피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보니 처음에는 사무실의 구조나 가구, 인테리어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먼저 공간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찍었고, 각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했다.네덜란드 코워킹 스페이스 이글루(Igluu)의 공용 휴게실 ⓒ최두옥

공간에 집중하면서 스마트 오피스를 방문하던 중, 암스테르담에 큰 규모로 오픈했다는 '브라이트 시티(Bright City)'를 방문했다. 이름만큼이나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다. 회의실은 인원별로 최적화되어 있었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화상회의실은 첨단을 달렸다. 개방형 사무실의 단점을 보완하여 독립성과 개방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점도 돋보였다.

 

본격적으로 공간을 둘러보려고 담당자를 찾았다. 그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농담 섞인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럼 투어는 금방 끝나겠네요. 사진만 찍고 갈 테니까요. 하하.

처음엔 무슨 농담인가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브라이트 시티가 한국에 알려지면서 한국의 공무원이나 기업 담당자가 이곳을 자주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사진만 찍고 갔단다.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공간을 바꾼 후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제도가 더 필요한지 등 중요한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고, 사진만 수십 장 찍고 가구 회사 이름만 물어본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는 스마트워크도, 스마트 오피스도 성공할 수 없는데.브라이트 시티(Bright City)의 최첨단 화상회의실 ⓒ최두옥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며칠간 들렀던 스마트 오피스에서 나 또한 사무실의 외형과 인테리어에만 신경 썼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브라이트 시티 담당자를 만난 이후, 나는 방문하는 스마트 오피스의 개수보다 깊이에 집중했다.

 

스마트 오피스를 방문하기 전에는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업의 비전과 인재상을 살펴보고 스마트 오피스가 그 비전을 달성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까 고민했다. 또 변화된 업무 환경과 함께 어떤 제도적인 변화를 시도했는지도 조사했다. 회사 전체가 기존 사무실을 스마트 오피스로 바꾼 경우에는 자율좌석제나 유연근무제 등 제도적인 변화도 수반했음을 그때 알게 되었다.

 

스마트 오피스를 방문하는 당일에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에 집중했다. 이전에 비해서 어떤 점이 좋아졌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실제로 업무 성과는 올랐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사실 필요한 공간 사진은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수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스마트 오피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이것이었다.

스마트워크는
단순히 기술이나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스마트워크는 급격하게 발전한 정보기술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스마트워크의 원래 뜻이 '새로운 방식의 일하기(New Way of Working)'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일하는 방식 전반에 변화를 주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업무 공간만 달라져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일을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변화를 지지하는 각종 제도도 변해야 하고, 구성원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 전반의 체질이 변할 수 있다.

 

그제야 단순히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것인 줄 알았던 '리모트워크'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보통 리모트워크라고 하면, 휴양지에서 노트북을 펴 놓고 일하는 모습이나 첨단시설이 갖추어진 사무실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리모트워크의 핵심은
대면 중심의 업무 방식을
비대면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그 자체로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게 맞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과 장소에 모이기 위해서 각자가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의 합을 생각한다면,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인 업무 방식은 가장 값비싼 방법일 수도 있다.

 

그래서 리모트워크를 할 때는 비대면 업무를 기본으로 하되,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리모트워크를 내세우는 기업들이 따로 출퇴근 시간을 두지 않으면서도 언제든지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전사 직원들이 함께하는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관련 글: 챕터 9의 '기업의 선택으로서 리모트워크가 갖는 의미'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이 리모트워크를 허용한 이유

긴 출장의 마지막은 허브에서 소개받은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이었다. 이 혁신적인 사무실은 효율적인 업무 공간에 일가견이 있는 네덜란드 에이전시와 영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2005년이었고, 이후 목적에 맞게 공간을 기획하고 구현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이후 새로운 공간에 정착하는 데 또 2년 정도가 걸렸다.

 

이 스마트 오피스는 기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무실과 다르게 자기 자리가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6층짜리 건물의 모든 곳이 내 사무실이다(Every space is for everybody). 층마다 구역마다 집중도가 조금씩 다른 공간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직원 개개인이 하는 일의 특성과 컨디션에 맞게 최적의 공간을 선택하면 된다.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서 코드 리뷰를 해야 할 때는 칸막이가 낮은 오픈 공간에서 일할 수 있고, 장시간 집중해서 보고서를 써야 할 때는 소음과 시선이 차단된 포커스 룸으로 가면 된다.네덜란드 마이크로소프트 지점의 업무 공간 ©최두옥

오래 일하는 것보다 제대로 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점은, 업무 공간의 변화와 더불어 조직 전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제약이 거의 없는 리모트워크를 허용했다.

언제 어디에서 일하는지 관리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안내해준 폴(Paul)의 경우 15명의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지만,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이 효율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회사가 이를 일률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 직원들 스스로가 가장 효율적일 때 일하여 더 나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다. 결과가 비슷하더라도 개인의 만족도와 주인의식은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관리자로서는 반길 일이라고 덧붙였다.네덜란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를 가이드해준 마케팅팀장 폴 ©최두옥

코워킹 스페이스 허브부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긴 스마트워크 리서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꽤 혼란스러웠다. 효율적이고 스마트하게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니,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나의 업무 환경과 회사의 업무 방식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관성적으로 참가하는 월요일 전체 회의, 외부 미팅이 끝났지만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졌던 이동시간, 예산을 조금 추가하려면 팀장부터 사장까지 2~3일을 기다려야 하는 결재라인. 심지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인투식스 업무에 맞춰진 출퇴근 시간조차 엄청난 비효율이 숨어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2주일의 휴가를 1주일씩 두 번으로 나누어 가는 것까지도! 공간 기획자로서 하는 일은 좋았지만, 문득문득 일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 생활의 정답을 벗어나다

그러던 어느 날, 미팅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들른 서점에서 닐스 플래깅(Niels Pflaeging)이라는 독일 컨설턴트가 쓴 책, <언리더십(Unleadership)>을 읽게 되었다. 직원을 더 이상 어린애처럼 취급하지 말고 최대한의 자유와 책임을 주라는 것이 주 내용인데, 목차에 소개된 타이틀 하나하나가 실무자인 나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조직의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내용, 특히 일하는 방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부분에서 특히 크게 공감했다.

 

문득 나에게 일하는 시간, 공간, 방법에 대한 자율성이 더 주어지면 매일같이 야근하지 않고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미팅까지 줄어든다면, 시간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가거나 가족과 식사를 건너뛰는 일도 줄어들 것 같았다.독일 컨설턴트 닐스 플래깅의 <언리더십> ©정진호

몇 달 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가 싫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싫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스마트하게 일하면서 더 성장하고 싶었다.

 

7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팀장 타이틀까지 단 직원이 퇴사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다. 본부장님과 사장님은 개인 면담을 요청하셨고, 나와 같은 직급에 있는 팀장들은 퇴사하는 진짜 이유를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던 한 팀장은 내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직은 원래 규율과 관리에 의해 유지되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건 조직원이 지켜야 하는 기본이라고. 역사적으로 긴 검증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위계가 만들어졌는데, 개인에게 불필요한 자유를 주면 조직은 무너질 거라고. 그분의 이야기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분과 내가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보편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한 성인이라면 규율과 관리가 아니라 비전 때문에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는 건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커서 오히려 회사에 손해라고 보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있기에 기존의 업무 방식을 답습해 왔지만, 그래서 이제는 변해야 하며 또 변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 변화를 유럽에서 목격하고 왔노라고.

 

한때는 조직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일 잘하는 팀장이었던 내가, 지금은 그 조직의 혁신을 외치며 스마트워크 디렉터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연히 다녀온 한 달간의 유럽 출장과 때마침 읽은 독일 컨설턴트의 책 한 권으로 나의 커리어와 삶의 방식이 바뀐 것처럼, 스마트워크 디렉터이자 리모트워커인 내 생각과 경험이 효율적인 조직에 목마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정답을 모르고,
정답이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내가 경험한 구체적인 리모트워크 사례와 준비 과정은 정답에 가까운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를 감지하고 기꺼이 변화할 각오가 있다면, 이 글은 당신이 더욱 전략적으로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