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반적으로 소설은 작가가 상상해 창조한 허구의 세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험과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은 사실보다 더욱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며 그 자체로 진실을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의 경험에 입각해 집필한 리처드 플래너건(Richard Miller Flanagan)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The Narrow Road to Deep North)>, 벌의 생태를 관찰해 집필한 랄린 폴(Laline Paull)의 <벌(The Bees)> 또한 그렇다. 랄린은 이후 기후 변화 문제를 심도 있게 취재해 <빙하(The Ice)>를 쓰기도 했다.
전쟁 포로였던 아버지 기억에서 시작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도서명: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세션 발표자 및 저자: 리처드 플래너건
작가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 포로로 동남아 철도 건설에 동원됐다.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모티브는 바로 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언젠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욕망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했다는 그. 그가 12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한 날, 아버지는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베트남-버마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본군의 감시 아래 부상당하거나 병에 걸린 전쟁 포로를 관리했던 호주인 군의관이다. 물론 그 역시 전쟁 포로 신분이다.
의사인 그가 전쟁 포로로서 해야 하는 업무는 질병을 치료하기보다는 죽어가는 포로들 중 그나마 철도 건설 노동에 동원할 만한 인원을 골라 그날의 노동 인력으로 보고하는 것이다. 당연히 부상자를 치료할 시설이나 의약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