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일
에디터의 일을 묻기 위해 TV 드라마 <타이탄(Titans)>, <에일리어니스트(The Alienist)>,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편집실에 찾아갔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자면, 한창 제작 중인 <타이탄>은 배트맨의 전 파트너인 로빈이 주인공으로, 로빈이 젊은 영웅을 이끄는 내용입니다. <에일리어니스트>는 거리의 소년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나선 의학자의 이야기로 칼렙 카(Caleb Carr)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역시 범죄 드라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소재로 합니다.
* 국내에는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로 번역 출간되었다.
먼저 <타이탄>의 에디터 브라이언 웨셀(Brian Wessel)의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브라이언 웨셀, <타이탄> 에디터
브라이언 웨셀은 <뱀파이어 다이어리>, <킬링(The Killing)>, <트루 디텍티브(True Detective)> 등의 작품에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참여했습니다. 인터뷰 시점에는 <헤더스(Heathers)>를 끝내고 <타이탄>이라는 새 시리즈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출신인 브라이언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주말 AFI(American Film Institute)* 근처 스타벅스였습니다. 브라이언은 <뱀파이어 다이어리>에서 함께 일할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구하고 있던 차에 저를 소개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함께 일하진 못했으나, 우리는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 미국 영화 연구소
브라이언은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역할과 그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디터의 역할과 더불어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관계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습니다.
Brian Wessel, Editor at <Titans>
누구보다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에디터의 일
에디터의 일을 묻기 위해 TV 드라마 <타이탄(Titans)>, <에일리어니스트(The Alienist)>,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편집실에 찾아갔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자면, 한창 제작 중인 <타이탄>은 배트맨의 전 파트너인 로빈이 주인공으로, 로빈이 젊은 영웅을 이끄는 내용입니다. <에일리어니스트>는 거리의 소년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나선 의학자의 이야기로 칼렙 카(Caleb Carr)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역시 범죄 드라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소재로 합니다.
* 국내에는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로 번역 출간되었다.
먼저 <타이탄>의 에디터 브라이언 웨셀(Brian Wessel)의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브라이언 웨셀, <타이탄> 에디터
브라이언 웨셀은 <뱀파이어 다이어리>, <킬링(The Killing)>, <트루 디텍티브(True Detective)> 등의 작품에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참여했습니다. 인터뷰 시점에는 <헤더스(Heathers)>를 끝내고 <타이탄>이라는 새 시리즈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출신인 브라이언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주말 AFI(American Film Institute)* 근처 스타벅스였습니다. 브라이언은 <뱀파이어 다이어리>에서 함께 일할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구하고 있던 차에 저를 소개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함께 일하진 못했으나, 우리는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 미국 영화 연구소
브라이언은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역할과 그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디터의 역할과 더불어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관계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습니다.
Brian Wessel, Editor at <Titans>
누구보다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듯하다.
<뱀파이어 다이어리>에서 2년 반 동안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일한 후 에디터가 되었다. 막상 에디터가 되자 걱정도 되고 심지어 겁도 났다. 운이 좋게도 <뱀파이어 다이어리> 팀은 매우 친절했다. 문제가 생기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겸손히 하는 자리인데… 그 일이 좀 많긴 하다. 아비드 내 파일 정리, 데일리스에 액션과 리액션 표시,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노트와 데일리스 리포트를 정리한다. 각 씬의 편집이 어느 정도 끝나면 음향효과와 음악 작업, VFX와 ADR 리스트도 정리해야 한다. 콘티뉴이티를 작성하고, 미디어 스토리지를 관리하고, 에피소드를 출력*할 때 오류가 있는지 QC(quality control**)도 해야지. 이 정도가 채용 인터뷰에서 말해주는 정도이고, 실제로는 더 많은 일을 한다.
* 편집을 완성해 다음 단계로 보내는 일
** 품질 관리
말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힌다. (웃음) 내가 하고 있는 일인데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새삼 참 많은 일을 한다고 느껴진다.
거기다 다른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바쁠 때 도와주고, 에디터가 기술적인 문제로 곤란할 때 해결해야 한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일이 많으면 실수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노트를 활용한다. 매일 노트에 해야 할 일을 적고, 일이 끝나면 하나씩 지운다. 1,000개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도 실수가 하나 있으면 결국 그 실수만 기억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음 날 아침에 와서 해야 할 일을 적어 책상 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퇴근하면 일은 싹 잊는다. 물론 이메일이나 휴대폰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다음 날 아침 편집실 문을 열고 할 일이 적힌 노트를 볼 때 비로소 다시 '일 모드'로 돌아가는 거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라는 자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일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편집실을 나서는 순간, 공식적으로 일이 끝난다.
에디터가 되니 퇴근 후에도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편집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렇다고 에디터가 고생스러운 건 아니다. 에디터의 일이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일보다 훨씬 창조적이다.
에디터는 단 하나의 프레임(frame)*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줄 안다.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 또한 크기에 즐겁게 일할 수 있다.
* 영상의 최소 단위로 1초당 24프레임이 지나간다.
어떤 순간에
어떤 음악과
어떤 클로즈업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지
에디터가 결정한다
어시스턴트 에디터에서 에디터가 되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에디터가 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가 있나?
나는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거친 게 도움이 되었다. 에디터가 되었을 때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일한 2년 반을 뒤돌아보면서 그동안 내가 에디터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에디터와 함께 일하며 프로듀서, 감독, 작가, 쇼러너 그리고 다른 프로덕션 사람과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배웠다. 특히 에디터가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가진 이기심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참을성에 대해서도 배웠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로서 씬을 편집할 기회도 있었다. 또 처음엔 몇몇 씬 정도에만 음악을 넣는 작업을 하다, 머지않아 에피소드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했다. 에디터의 일을 한다고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하는 일을 등한시할 수는 없다.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일을 끝내야 씬 편집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중요한 게 시간 관리다. 에디터가 될 때쯤 난 제법 효율적으로 일을 했고, 무엇보다도 내 편집에 자신이 있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아무리 자기 일을 빨리 끝내더라도 에디터가 크리에이티브한 일, 즉 씬을 편집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도 운이 좋아서인지 함께 일해 온 에디터 모두가 편집할 기회를 주었고, 편집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다. 또 쇼러너에게 내가 편집한 씬을 알려주기도 했고. 그때 무척이나 고마움을 느꼈다.
에디터로서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어떻게 대하나?
에디터인 나와 동등하게 대한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일한 경험 덕분인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자리에 어떤 스킬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대부분 어시스턴트 에디터는 곧 에디터가 될 사람이다.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나도 내 어시스턴트 에디터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어시스턴트 에디터에게 편집 기회를 주는 건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씬을 편집하며 구성을 익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내는 스킬이 늘수록 내 편집을 더 날카롭게 분석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믿음이 쌓인다면, 에디터로서는 작업을 두고 직언해줄 수 있는 친구를 얻는 것과 같다.
어시스턴트 에디터는 에디터의 최후의 보루다.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편집본을 보여주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어떤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그럴 때 객관적으로 그 문제를 지적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훌륭한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훌륭한 에디터를 만든다
아주 바람직한 에디터의 자세이다. (웃음) 에디터의 일과에 대해 묻고 싶다.
작품이 어떤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일은 촬영본을 편집하는 첫날이기 때문에 혼자 편집을 하면서 이전 에피소드의 디렉터스 컷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동시에 여러 일이 겹친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야 한다. 이제 막 편집하고 있는데 감독이 '보충 촬영을 해야 한다'고 연락하고, 프로듀서가 'VFX 예산이 10만 달러(약 1억 원)를 초과해 편집을 좀 수정해야 한다'고 전화한다. 이 두 가지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참에 갑자기 쇼러너가 편집실로 들어온다. 쇼러너가 '일하자'고 하면 다른 일은 모두 멈춰야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아비드가 에러로 꺼진다. (웃음)
예기치 못한 일이 얼마나 벌어지던, 작업은 데드라인에 가까스로 맞추게 되어 있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서 편집이 재미있다. 언제나 긴장감 넘치고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거든.
ⓒJakob Owens/Unsplash
TV 스케줄은 무척 빠르게 돌아간다. 영화에서는 TV 편집에 비해 시간이 약간 있는 편이다.
영화를 해보진 않았지만, 영화가 훨씬 여유 있다고 생각한다. TV 편집은 모든 게 빠르다. 픽처 락, 그러니까 편집이 방송사의 컨펌을 마침과 동시에 다음 에피소드 편집을 하는 게 아주 평범한 일이다. 영화에서는 수개월 동안 같은 장면을 가지고 일해야 하지만, TV는 매일 새로운 장면을 가지고 일한다.
또 영화는 개인적이고 조용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혼자인 거다. 어떤 사람은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나는 아니다. TV 편집은 어시스턴트 에디터, VFX팀, 프로듀서, 작가, 포스트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포스트 프로덕션 슈퍼바이저 등과 언제나 함께 일한다.
한 에피소드 편집을 끝내는 데 어느 정도 걸리나?
작품마다 다른데, 일반적으로는 한 달 정도다. 각 에피소드 촬영에는 보통 8일이 걸리고, 촬영이 끝나면 4일 동안 에디터스 컷을 작업해 감독에게 보낸다. 그러면 감독은 다시 4일 동안 디렉터스 컷을 만든다. 그 후 프로듀서가 1주에서 2주 정도 작업하고 스튜디오에 보낸다. 스튜디오에서는 작업 후 피드백을 받아 방송사로 보내 컨펌을 기다린다.
픽처 락 이후에도 수정사항이 있을 수 있다. 픽처 락 후에는 스포팅을 통해 사운드, VFX, ADR 등에 대해 각 담당자와 의견을 나누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나서 2주 정도 후에(이 기간에도 다음 에피소드 편집은 계속된다.) 사운드 스테이지(sound stage)*의 최종 믹싱에 참여한다.
* 대사를 녹음하는 스튜디오
픽처 락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된다. 픽처 락 이후에 수정하는 걸 쉽게 생각한다.
되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때론 수천 달러의 돈이 들지 않는가.
에디터스 컷에 대한 질문이다. 작품마다 다르다고 했지만, 보통 4일이 걸린다고 했다. 이 기간이 충분한가? 내가 일하는 작품은 에디터스 컷에 이틀을 준다.
4일이면 대체로 충분하다. 물론 시간을 더 준다면 사양하지 않겠다. 나와 내 어시스턴트 에디터는 이틀에 걸쳐 에디터스 컷을 완성하고, 남은 이틀은 그걸 좀 더 다듬는 데 쓴다.
에디터스 컷에서 시나리오를 어느 정도 따르나? 대사를 바꾸거나 씬을 줄이기도 하는가?
에디터의 임무는 '시나리오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나리오에 100% 따른다. 글로 쓰인 스토리가 실제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봐야 한다. 이야기에 문제가 있더라도 감독과 작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다.
시나리오대로 따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에디터스 컷이 최종 방송에 나간다고 생각하며 일한다. 씬은 완벽해야 한다.
에디터스 컷은
당장 방송에 나가도 될
수준으로 완성한다물론 에디터스 컷이 방송에 나가는 일은 없겠지만 그런 마음과 목표로 편집하는 거다.
에피소드마다 톤 미팅을 한다. 이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 이런 미팅이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나?
촬영 전 모든 스태프가 각 씬에 대해 회의한다. 그 씬의 의도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한다. 촬영팀은 촬영할 때 무엇을 더 챙겨야 하는지, 배우는 각 씬에서 맡은 배역의 상태가 어떤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에디터는 편집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각 씬에서 구현해야 할 감정은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랫동안 TV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해왔다. 작업 환경 중에 바꾸고 싶은 게 있나?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에디터로서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증명할 수 있는 환경 혹은 장치가 있었으면 한다. 현재는 에디터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능력을 확인하고 프로듀서에게 에디터로 추천하면, 프로듀서가 쇼러너에게 의사를 묻는 식이다.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 시스템으로 구축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이것뿐이고,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더 많은 부분이 생각날 것 같다.
어시스턴트 에디터에 대해 생각해줘서 고맙다.
나 자신도 어시스턴트 에디터였던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이고 평등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타이탄>이란 작품이다. 곧 런칭할 DC 코믹스의 플랫폼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보안 때문에 더 말해주는 건 어렵다.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작품을 맡게 되어 행운이라는 점이다. 시리즈 크리에이터(Series Creator)*인 제프 존즈(Geoff Johns)와 아키바 골드맨(Akiva Goldsman) 그리고 그렉 벌란티(Greg Berlanti)가 어둠과 서스펜스, 거기에 뼈를 부수는 액션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이렇게 재능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
*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사람을 말한다. 대개 쇼러너가 시리즈 크리에이터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틴 니콜슨, <에일리어니스트> 에디터
마틴 니콜슨(Martin Nicholson)은 AFI에서 제가 학생일 때 선생과 제자 관계로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작품을 가지고 많은 토론을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깊은 성찰을 보여주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틴 니콜슨은 <데드우드(Deadwood)>,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마르코 폴로(Marco Polo)> 등에 참여했고, 최근 <에일리어니스트(The Alienist)>를 끝내고 유럽에서 돌아왔습니다. <데드우드>는 데드우드란 마을을 배경으로 미국 서부시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왕좌의 게임>은 다들 알다시피,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드라마로 만든 작품으로 거대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줍니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13세기 중국에서 펼치는 모험을 그린 시대극입니다.
어느 토요일 아침, 그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틴 니콜슨, <에일리어니스트> 에디터
Martin Nicholson, Editor at <The Alienist>
에디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데 늘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시는가?
물론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감독이 다 촬영하는데, 에디터인 네가 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에디터는 재료를 모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좀 더 설명한다면 감독이 연출한 촬영본을 가지고 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며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한 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 촬영감독과 촬영 방법을 결정한다. 그 결과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쇼트, 씬 혹은 테이크이다.
에디터는 이 쇼트를 받아 작업한다.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감독, 프로듀서 등과 토론한다. 에디터가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촬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또 시나리오를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편집이 달라진다.
에디터는 언제나 이야기의 숨은 뜻,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야구에서 포수와 같다. 전체 구장을 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에디터마다 씬을 편집하는 방식이 다르다.
내 방식 역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편집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데일리스를 보는 일이다. 디지털 촬영으로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필름 시대에는 비용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이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데일리스를 챙겨 본다. 데일리스를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떤 식으로 편집할지 고민하는 게 에디터의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는 스크립트 슈퍼바이저가 일을 잘 해서 데일리스를 분석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즘 들어 스크립트 슈퍼바이저 노트를 보면 예전만큼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출자가 어떤 의도로 각 테이크와 씬을 연출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데일리스를 보는 게 중요해진다. 한 장면에 여러 테이크가 있는데, 이 모든 테이크를 봐야 배우의 연기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볼 수 있고, 이 변화를 통해 감독의 연출 의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스를 다 보지 않고 편집에 들어가는 에디터를 보면 참 놀랍다. 그러면 자칫 큰 그림,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데일리스를 볼 때 어떤 부분에 주목하나?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일리스의 진실성, 정통성 혹은 그 데일리스가 가진 고유함이다.
스케줄이 무척 빡빡한데, 데일리스를 모두 다 보는 게 가능한가?
물론 늘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감독이 선호한다고 표시한 테이크 위주로 먼저 편집하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다시 다른 테이크를 확인하곤 한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데일리스를 모두 보지 않고 편집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프로듀서는 에디터가 데일리스를 모두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테이크는 없나?", "다른 테이크는?"이라고 물어본다. 그들은 데일리스를 모두 보지 않는다. 작업하면서 다 보게 될지 모르지만, 시작 전에 다 보는 경우는 없다.
맞다. "좀 더 나은 테이크는 없나?"하고 물어본다.
때로는 꼭 '좀 더 나은' 테이크가 아니라, 씬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물어볼 때도 있다.
데일리스 이야기를 마저 해보겠다. 1988년 방영한 <30대 이야기(Thirtysomething)>를 편집할 때는 좀처럼 TV에서 하지 않는 특별한 방식으로 데일리스를 봤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였는데, 매일 점심마다 쇼러너와 프로듀서, 작가, 촬영감독 그리고 에디터가 모여 전날 찍은 데일리스를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함께 토론한다는 건 무척 멋진 일이었다. 같이 일한 동료와 만나면 늘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그때 이후로 그런 쇼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게 <데드우드> 정도? 이 쇼에서는 모두가 함께 점심을 먹고 촬영장에 가곤 했다. 에디터가 촬영장에 가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쇼러너인 데이빗 밀치(David Milch)는 에디터에게 촬영장에서 리허설을 보라고 권장했다. 리허설을 통해 감독이 씬을 구상하거나 배우를 지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것으로 이야기와 씬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2004년 시즌1을 시작해 2006년 시즌3까지 방송된 <데드우드> ⓒHBO
흥미로운 얘기다. 그런데 그건 편집실과 촬영장이 같은 곳에 있거나 아주 가까워야 가능한 일이지 않나?
맞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촬영장과 편집실이 긴밀해야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는 유대감이 강하게 형성된다. 지금까지 그런 유대감을 느낀 작품으로는 <30대 이야기>, <데드우드>, <핸드 오브 갓(Hand of God)>* 그리고 <왕좌의 게임>뿐이다.
* 한 판사의 아들이 권총으로 자살 시도 후 식물인간이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왕좌의 게임> 첫 시즌 에디터로 일했다. 어땠나?
일단 짚고 넘어가자. <왕좌의 게임>에서 일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를 <왕좌의 게임> 에디터로 소개하는 것은 잘못된 거다. 첫 시즌을 끝으로 <왕좌의 게임>에서 떠난 후, 지금까지 많은 동료가 이 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보다는 이들이 <왕좌의 게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싶다.
<왕좌의 게임>은 무척 훌륭했다. 참여한 모든 이가 '뭔가 다른 것',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렇게까지 큰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쇼러너, 프로듀서, 감독, 그리고 에디터 등 구성원 모두가 재능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왕좌의 게임> 시즌1에서 세 에피소드를 편집했는데* 운 좋게도 <데드우드>에서 만난, 내가 좋아하는 감독인 다니엘 미나한(Daniel Minahan)**과 다시 일할 수 있었다. 사실 <왕좌의 게임> 에디터로 인터뷰할 때, 담당자가 감독을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다니엘은 정말 재능있는 감독이다.
* 6화 'A Golden Crown', 7화 'You Win or You Die', 8화 'The Pointy End'를 편집했다.
** <왕좌의 게임>과 <데드우드> 외에 <트루 블러드(True Blood)>를 연출했다. 마틴 니콜슨과는 <마르코 폴로>에서도 함께했다.
<왕좌의 게임>은 물론이고, <마르코 폴로>와 최근의 <에일리어니스트>까지 제작사와 방송사에서 신경 쓰는, 즉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품을 여럿 했다. 이런 작품을 할 땐 부담되지 않나?
에디터로서 어느 정도의 부담은 늘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스케줄이 여유가 없을 때 이런 부담이 문제가 된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케줄에 맞춰 일하는 게 목표가 되어버리곤 하니까.
<왕좌의 게임>은 아일랜드에서 편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에일리어니스트> 역시 유럽에서 촬영하고 편집했다. TV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먼 곳으로 가는 일이 별로 없는데.
<에일리어니스트>는 헝가리에서 9개월이나 머물렀다. <마르코 폴로>는 외국은 아니지만 뉴욕에서 했다. <왕좌의 게임> 때는 7개월 동안 아일랜드에 있었고.
<에일리어니스트>는 헝가리에서 촬영하는 게 중요했다. 극의 배경이 1896년의 뉴욕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는 높은 빌딩이 없고, 여전히 고풍스러운 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옛날의 뉴욕과 꽤 비슷해 보인다. 진짜 뉴욕에서 찍으려면 VFX를 통해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고, 높은 빌딩을 없애고….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에서 일하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LA에서 일하면서 가장 싫은 게 운전이다. 일하러 가기 위해 운전하고, 일이 끝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교통체증 속으로 또 들어가야 한다. 차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낭비다.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이 시간을 활용하려고 하지만, 시간 낭비 그 자체다.
2018년 1월 첫 방송을 시작한 <에일리어니스트> ⓒTNT
동감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한 달에 책을 두세 권에서 서너 권씩 읽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출퇴근 때문에 버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스케줄에 좀 여유가 있었다. 물론 늦게까지 일하거나 주말에 일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스케줄말고 또 다른 차이가 있나?
감독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종종 저녁을 함께 먹으러 가고, 편집실에서 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때론 촬영장에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감독과 에디터 사이에 강한 유대감이 생기는 건 미국이나 유럽이나 비슷하지만, 유럽에서는 촬영과 편집에 관한 토론이 더 자유로웠고, 그 관계가 더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작품이 먼저다. <왕좌의 게임>의 첫 시즌이 끝나고 프로듀서는 내가 두 번째 시즌에도 일하길 바랐지만, 미국인 에디터를 아일랜드까지 데리고 오는 건 다소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왕좌의 게임>은 그때까지만 해도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앞서 감독과 에디터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TV는 영화와 달리 작가의 매체로서, 감독의 영향력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디렉터스 컷 기간에 아무런 노트를 주지 않는 감독도 있다.
쇼러너는 쇼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감독은 시나리오 속에 있는 비전과 톤을 구현하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사람이다. TV 감독 중에서도 아주 좋은 감독은 이 시나리오 속에 담긴 비전과 톤을 실현하려고 '집착할 정도'로 노력한다. 그럼 그 안에 감독의 개성이 담기기 마련이다.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는 순수히 에디터와 감독, 둘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총괄 프로듀서와 스튜디오가 이런저런 지시를 하지만, 핵심은 감독의 비전이고 에디터는 바로 그 감독과의 작업에 집중하면 된다.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영화를 볼 때 관객은 두 시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한다. 난 언제나 영화는 '꿈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올 때, 꿈을 꾸다 깨어나는 것이다.
TV는 다르다. TV엔 중간중간 광고가 들어간다. 네트워크 쇼가 아닌 HBO, 쇼타임,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영하는 쇼는 중간 광고가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관객이 꿈을 꾸는 듯한 흐름에 빠질 수 있다.
네트워크 쇼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30분짜리 쇼조차도 5분마다 광고가 들어간다. 이러면 관객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다. 심지어 광고가 더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더라.
TV 에디터가 하는 일은
광고 사이의 공간을
채워 넣는 것이다
맞다. 한국과 미국 방송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중간 광고이다. 한국 공중파 드라마엔 중간 광고가 없다.
광고주가 그 쇼를 위해 돈을 지불했다는 건 잘 알겠다. 그래도 그런 방식이 스토리텔링을 방해한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에디터로 일했다. TV 환경에서 어떤 점이 나아지길 바라나?
인원 구성에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영화에서는 세컨드 어시스턴트 에디터(Second Assistant Editor)를 고용해 일을 나눌 수 있다. TV에서도 세컨트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고용하거나 견습생(apprentice)을 쓰면 좋을 것 같다. 요새는 견습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0대 이야기>를 작업할 때 견습생이 있었는데,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일을 조금씩 덜어주었다.
뮤직 에디터와 에디터가 좀 더 가깝게 일하는 환경도 조성되었으면 한다. 뮤직 에디터는 편집이 끝나가는 단계에서야 투입되는데, 더 이른 단계에서 에디터와 긴밀하게 작업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 시즌 이후부터는 이미 첫 시즌에서 만들어놓은 음악이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첫 시즌에 뮤직 에디터가 늦게 투입되면 에디터는 사용할 음악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뮤직 슈퍼바이저도 마찬가지다.
<제인 더 버진>에서는 뮤직 에디터가 에디터스 컷에서부터 음악 편집을 시작했다. 심지어 같은 편집실에서 일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예전에 스탠 살파스(Stan Salfas)*와 일할 때였는데 스탠이 내 방에 들어오더니, 곡이 적힌 리스트를 내밀더라. 요 며칠간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번 작품과 꽤 어울리는 노래를 적었다고 좀 모아달라고 했다. 그때 에디터가 음악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혹성탈출: 종의 전쟁>, <나우 유 씨미 2>를 편집한 에디터
<제인 더 버진>은 좋은 케이스다. 음악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존하는 수많은 음악 중에서 쇼에 맞는 음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에디터가 그 많은 음악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평소 드라마를 볼 때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적어두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쇼에 쓸 음악을 찾다가 다른 사람에게 음악을 추천받기도 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적어놓고 까먹은 그 음악일 때도 있다. 예전엔 음악을 잘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다. (웃음)
매우 바쁘게 지낸다. AFI에서 강의도 하고.
일단 가르치는 게 재미있다. 친한 동료인 스탠 살파스, 하워드 스미스(Howard Smith), 패럴 레비(Farrel Levy)*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나에겐 즐겁고 중요한 일이다. 처음엔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아직 상업적 성공에 대한 고민 없이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보며 그 순수함을 배우고 유지하려 한다.
* 하워드 스미스는 영화 <글렌게리 글렌 로스(Glengarry Glen Ross)>, <블레이드 3>, <어비스(The Abyss)> 등을, 패럴 레비는 TV 드라마 <내쉬빌(Nashville)>, <크리미널 마인드(Criminal Minds)>, <뉴욕경찰 24시(NYPD Blue)> 등을 편집했다.
얼마 전 AFI 신임 학장이 무리하게 기존 체제를 바꾸고, 교수를 독단적으로 해임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이 일로 여러 명의 교수가 학교를 떠나면서*, AFI에서 학생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해졌다.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남아서 학교를 위해 싸우는 교수진과 함께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 관련 기사: Inside the AFI Faculty Revolt: Has the Dean "Lost Control" or Brought Needed Change? (Hollywood Reporter, 2016.1.9)
현직 에디터이자 교수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최선을 다하라. 영화, 연극, 그리고 작품성 있는 TV 쇼를 반복해 보면서 분석하고 공부하라. 작품과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생각하라.
좋은 작품을 만나면, 에디터가 누구인지 찾아봐라. 그 에디터가 편집한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이전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라. 그 에디터와 함께 작업하는 감독이 있다면 그 작품도 찾아보고 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살펴보라. 같은 의미로, 훌륭한 작품을 만나면 감독도 찾아보라. 감독의 스타일이 에디터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감독이 주로 한 명의 에디터와 일을 하는지, 그 에디터가 감독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라.
그리고 읽어라.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하고 공부하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영화음악을 공부하라.
정지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에디터
한국 출신인 정지윤 에디터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백인 남성이 대부분인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에디터입니다. 앞서 그와 나눈 내용을 잠시 적었는데요, 그와 점심을 함께하며 나눈 대화를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지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에디터
Chi Yoon Chung, Editor at <American Crime Story>
에디터스 컷 작업 방법이 궁금하다. '어셈블리'라는 표현도 있긴 한데, 보통 에디터들은 이 표현을 싫어한다.
맞다. 에디터스 컷은 절대 어셈블리가 아니다.
먼저 스케줄 이야기를 하겠다. TV 편집 스케줄에는 두 가지 케이스가 있다. 방송일이 정해져 있는 경우와 방송일이 없는 상태에서 편집하는 경우다. 첫 번째 케이스가 일반적이다. 두 케이스에 따라 에디터스 컷 작업에 얼마나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지도 달라진다.
에디터로서 참여한 내 첫 쇼는 스토킹 범죄 전담반의 활약을 그린 <스토커>였다. <스토커>는 네트워크 쇼였는데 총 20화로 이뤄졌고, 에디터스 컷에 4일이 주어졌다. 이게 일반적인 일정이다. 반면 지금 하는 쇼인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두 번째 케이스다.
두 번째 케이스에서는 모든 에피소드를 한 번에 납품하나?
그건 아니다. 언론사에 스크리너(screener*)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게 우리에게는 큰 데드라인이다. 언론사는 그걸 보고 리뷰를 쓰기 때문에 최상의 스크리너를 보내기 위해 집중한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의 경우 2017년 12월에 스크리너를 보내야 했는데, 11월 말까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 일종의 시사 영상이다.
프로듀서스 컷은 쇼러너와 함께 작업한다. 쇼러너와의 협업은 어떤가?
쇼러너는 대체로 작가 경험을 오래 한 수석 작가이다. 작가실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 쇼 전체를 이끄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작가실에서만 경험을 쌓은 이가 쇼러너로 정해지는 것이 아쉽다. 작가실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프로덕션도 마찬가지고.
작가가 작가실을 벗어나
다른 현장에서도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 <스토커>의 경우 촬영장에 해당 에피소드를 쓴 작가가 와야 했다. 촬영 중에 대사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작가가 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 작가 역시 촬영장에서 배우는 게 많았고.
작가가 편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편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나리오가 어떻게 영상으로 완성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물론 작가가 '이건 제가 생각했던 게 아닌데요'라고 간섭할 수 있다. 그럴 때 에디터는 글로 쓴 시나리오가 촬영과 편집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 스토리에 깊이 관여하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카페를 배경으로 하는 씬이 있다. 이 카페에서는 어떤 음악이 나올까? 일반적으로 쇼러너에게 묻지만, 우리는 그 프로듀서에게 묻는다. 당신이 참여한 <오리지널스>의 랜스 앤더슨(Lance Anderson)이 그런 역할을 했다.
맞다. 랜스가 프로듀서로서 촬영과 편집에 관여해 스토리를 컨트롤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에디터도 일하기가 수월하다.
어제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시상식을 보면서 느꼈지만 TV 드라마 에디터는 영화 에디터보다 대우가 낮다.
동감한다. <아이, 토냐(I, Tonya)>*로 편집상 후보에 오른 타이아나 리겔(Tatiana Riegel)과도 나눈 대화 주제였다. 모든 쇼가 각자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매일 3~6시간의 촬영본을 받아 편집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그럼에도 TV 에디터는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에디터라는 직업 자체가 대체로 하는 일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영화 에디터는 그나마 낫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데일리스의 분량을 생각해보라. TV 에디터는 영화보다 두 배의 양을 처리하면서 보수는 그 절반이다.
*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며 언론과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실존 인물 토냐 하딩의 드라마를 담은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에디터 타티아나 리겔은 2018년 치러진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편집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범죄 사건을 드라마 소재로 삼았다. 시즌1에서는 풋볼 선수인 O.J. 심슨의 사건을 다뤘다. ⓒFX
편집은 어떻게 시작하나? 에디터마다 방식이 다르다.
먼저 영상을 다 보고 편집을 시작한다. 3~6시간짜리 데일리스는 카메라 두세 대로 찍은 것이므로 한꺼번에 모든 앵글의 화면을 재생하면 좀 더 빨리 볼 수 있다. 데일리스를 보면서 어떻게 편집할지 생각하고 각 테이크마다 필요한 부분을 노트에 기록한다. 이렇게 모든 데일리스를 다 본 후에 편집을 시작한다. 한 씬의 편집이 끝나면 옆에 치워두고 다른 씬을 편집한다. 그렇게 한 씬 한 씬 편집하면 일주일 뒤에는 액트로 완성할 만큼 개별 씬이 쌓인다.
음악은 어떤가?
일찍부터 음악을 넣는 에디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3분의 2 정도의 에디터가 씬이 액트 단위로 묶일 때까지 음악을 넣지 않는다. 음악 작업을 미리 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편집에 문제가 있어도 음악에 감춰져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이 필요 없는 부분에도 음악을 넣게 된다는 점이다. 씬과 같은 작은 단위로 봤을 때 음악이 필요해 보여도, 액트로 묶어 다시 보게 되면 음악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시간 낭비를 한 거다.
나 역시 언제나 액트 단위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에디터와 일해왔다. 물론 씬을 편집할 때 뮤직 슈퍼바이저와 어떤 씬에 어떤 음악이 필요할 거라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제 음악을 삽입하는 건 액트 단위로 편집할 때부터다.
그에 반해 효과음은 시작부터 챙긴다. 음악보다 이 사운드 작업을 더 신경 쓰는 편이다. 앵글이 달라질 때마다 기술적인 문제로 대사 볼륨이 달라지는 등 사운드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을 참지 못한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를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말해도 되는지 고민되지만, 이 인터뷰가 한국에서 한국어로만 나갈 테니 말하겠다. 연기 못하는 배우를 연기 잘하는 배우로 보이게 하는 일이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시청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들려면 배우의 연기가 믿을 만해야 한다. 그런데 배우가 그날따라 대사를 자주 까먹거나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 에디터는 그런 연기도 좋아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에디터 친구 중 하나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테이크 하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하나의 테이크를 찾기 위해서 모든 테이크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또 다른 점도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콘티뉴이티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쇼트에서는 배우가 손을 올리고 있는데, 바로 다음 쇼트에서는 손을 내리고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라면 괜찮다. 손의 위치와 상관없이 최상의 테이크를 고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일하는 쇼러너는 그런 것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렇게 되면 한 쇼트에서 다음 쇼트로 갈 때, 테이크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가 연기상을 받으면 주로 감독, 프로듀서, 작가, 촬영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들이 정말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에 에디터가 빠지면 안 되겠다.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 연기를 정말 잘하니까. 그러나 배우 몇몇은 정말 그래야 한다. 실제로는 별로지만 편집의 힘으로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배우가 많다.
연기를 잘 다듬는 일. 그게 바로 에디터가 하는 일이지 않나 싶다.
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