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공짜인 세계

벅스뮤직, 렛츠뮤직, 푸키 등 전문 사이트와 sbsi, imbc 등 방송사들이 운영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편리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 회원수가 급증하고 있다.*

* 관련 기사: MP3 지고 스트리밍 뜬다 (아이뉴스24, 2002.4.23)

지금 콘텐츠 업계의 가장 큰 이슈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부상한 현상은 아니다. 인용한 기사대로 2002년에 이미 한국에서는 정식 음악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최초로 스트리밍이 상용화되었던 것은 1995년이었다. 당시 리얼 네트워크(Real Networks)의 리얼 오디오(Real Audio)가 '전송되는 데이터가 물처럼 흐른다'는 뜻으로 스트리밍 기술을 처음 소개했고, 이후 미국과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실험되었다.

 

한국에서는 1999년 한국통신(현 KT)과 삼성물산이 공동으로 대규모 스트리밍 서버를 구축해 온라인 방송 인프라를 마련했고,* 미국에서는 2000년 애플이 자사의 미디어 플레이어인 퀵타임(Quick Time)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스트리밍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한통, 초대형 인터넷방송국 기반 구축 (연합뉴스, 1999.11.10)

기술이 음악 산업의 헤게모니를 바꾼다

디지털 환경이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얘기다. 하지만 그 맥락을 이해하려면 음악 산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음악이 산업화된 시점은 보통 악보의 출판 이후로 본다. 1473년경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악보가 처음으로 인쇄되어, 이전까지 특별한 수입이 없던 음악가들이 악보를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악보는 출판업자들이 제작했는데 덕분에 음악 산업은 '출판(publishing, 퍼블리싱)'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발전했다. 디지털 시대인 현재까지도 '퍼블리싱'은 음원과 음반 발매에 대한 공식적인 용어로 쓰인다.

 

한편 악보가 대량으로 유통되자 제3자가 인기곡의 악보를 무단으로 복제해 판매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이유로 저작권법이 제정되었는데, 여기서 출판업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음악가들은 출판업자에게 악보를 판매했고, 출판업자들은 악보로 인해 얻는 수익을 모두 가졌다. 그러니까 초기의 음악 산업은 음악과 출판업의 결합으로 시작되었고, 그 헤게모니는 출판업계가 갖고 있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