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전공자가 5년 연속 CHI '프로출석러'가 된 사연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HCI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전 두 학문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고, 사회 현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하지만 좀 더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학문으로 확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 교차하는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꽤 이목을 끌었다. 그의 말은 인문학도가 새로운 역할을 찾아 컴퓨터 공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기에 충분했다.

 

HCI로 첫 발을 내딛으며 느낀 점은 이전 학문과 달리 '정석'처럼 여기는 교과서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영문학도가 항상 무거운 벽돌처럼 들고 다니는 「노튼 영문학 개관(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경제학 입문자가 읽는 「맨큐의 경제학(Mankiw’s Principles of Economics)」 같은 것이 없었다. 제법 알려진 책이 있더라도 영향력을 독점하지 않았다.

 

이 분야는 이미 다양한 학문을 체험한 사람이 각자의 배경을 기본으로 하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롭고 다양하게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다. 몇 가지 원칙과 목표가 있지만 새로운 주제보다 우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점차 HCI의 커다란 몸통에 CHI라는 학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CHI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랩 미팅(lab meeting)에서였다. 랩 미팅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연구실 구성원이 번갈아 가며 논문 발제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적어도 둘에 하나는 CHI 논문일 정도로 가장 많이 다뤘다. 이처럼 HCI 연구가 CHI라는 학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CHI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곧 HCI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