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셰어링 서클과 오픈 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리트릿의 일정이 모두 끝난 마지막날 저녁, 실버스트림 리트릿의 강당에서 파티가 열렸다.

 

사흘 동안 서로의 관심사와 생각은 물론 깊은 감정까지 나눈 참가자들은 한 손에 맥주를 들고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거나, 홀에서 정체불명의 춤을 추면서 한껏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리트릿 마지막 날 준비된 음악과 함께 여흥을 발산하는 사람들 ⓒEnspiral

이튿날 리트릿 참가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한국인 참가자들 세 사람 역시 흩어졌다. 지연은 여행을 위해 남아공으로 떠나고, 송이와 정현은 리트릿에서 만난 서로 다른 엔스파이럴 멤버들의 집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가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두 저자가 웰링턴에서 시간을 더 보내는 동안 엔스파이럴이 터한 웰링턴 혹은 뉴질랜드가 엔스파이럴의 실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웰링턴이라는 도시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뉴질랜드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분위기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엔스파이럴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은 이에 관한 내용으로 엔스파이럴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뉴질랜드와 웰링턴에 대해 소개한다. 

뉴질랜드 근현대사 5분만에 훑어보기

1860년 뉴질랜드에 이주한 영국인들과 선주민인 마오리인들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진다. 전쟁의 원인은 1840년 영국 왕실과 마오리인 사이에 맺어진 와이탕기 조약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었다.

 

주요 마오리 부족장들과 마을 지도자들이 서명한 와이탕기 조약의 영어 문서에는 '주권을 양여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마오리 어 문서로는 '지배권을 공유한다'로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해석의 차이가 무력충돌로까지 번져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840년 여러 마오리 부족들과 영국 정부간에 맺어진 와이탕기 조약을 1923년 한 전시회에서 재현한 것. ©Frank J. Denton

한때 ‘마오리 전쟁'이었다가 이제는 '뉴질랜드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1845년부터 27년 동안 이어졌다. 규모와 화력 면에서 영국군이 압도적이었으나 마오리인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오리인들은 오래 전부터 머스킷 소총을 받아들여 부족들 간의 내전이 벌어질 정도로 전투 경험이 풍부했고, 실제로 게릴라 전술을 활용해 영국군을 상대로 몇 차례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마오리 인들의 분투에도 전쟁은 화력을 앞세운 영국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전쟁이 끝나고 뉴질랜드에는 유럽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