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프레소: '충분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10분 안에 이런 걸 알려드려요!
-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가 자신 있게 'What else?'라고 말하는 이유
- 젠틀몬스터가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 힙한 모습 뒤에 숨겨진 비밀
- 쉽게 찌그러지고, 긁히고, 스티커 자국이 남는 리모와 캐리어를 파는 법
Editor's Comment
본 콘텐츠는 2023년 1월 발간된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를 퍼블리의 시선으로 발췌해 구성한 것입니다.
철학적인 메시지나 엄청난 담론을 이야기하는 브랜드와는 다르게 늘 자기 자리에서 적당함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매 시즌마다 신제품을 선보이지 않아도, 또 화려한 광고나 캠페인 없이도 편한 친구처럼 우리 주위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인 거죠.
저는 커피 브랜드들 중 '네스프레소Nespresso'를 참 좋아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커피야말로 브랜딩 싸움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야인데요. 커피 본연의 맛도 맛이지만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공간, 서비스로 이어지는 일체의 경험들이 총체적으로 전달되는 대표적인 산업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커피는 소규모 카페를 중심으로 브랜딩하기에도 유리할뿐더러 오너십을 가진 운영자나 바리스타의 철학이 깊게 관여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브랜드가 존재하는 카테고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대중적이고도 친근한 네스프레소를 꼽은 것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겁니다. 왠지 블루보틀이나 인텔리젠시아처럼 묵직한 가치관이 담긴 브랜드를 다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스텀프타운이나 커피 슈프림 혹은 최근 각광을 받는 메종키츠네 카페 같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커피를 소개해야 조금 더 힙해 보일 거란 고민 역시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그 자체로 충분한 네스프레소가 좋습니다. 캡슐 커피 한 개의 가격이 편의점 커피 반값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 안에 압축되어 있는 내공은 결코 가볍지가 않기 때문이죠. 게다가 하나하나 이야기를 파고 내려가다 보면 왜 이런 건 널리 자랑하지 않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외의 겸손함을 지닌 브랜드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네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만인을 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브랜딩 방식에 더 끌리기 때문입니다. 이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네스프레소의 슬로건 'What else?'는 단순히 고객들을 자극하는 문구라기보다 자신들 스스로에 대한 사명처럼 작용하고 있거든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네스프레소 커피의 품질입니다. 하이엔드 커피 브랜드들이 셀 수도 없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환경에선 너도나도 스페셜티 커피임을 자랑하지만, 실제 네스프레소가 사용하는 원두는 전 세계 상위 10퍼센트라는 고메 커피 중에서도 다시 1~2퍼센트의 최우수 품종만을 고른 것들이거든요.
그렇게 엄선하고 또 엄선한 커피를 활용해 사람들의 기호와 소비 성향에 맞는 수백 가지 조합의 캡슐 커피를 선보이는 거죠. 그런데도 자신들이 최고급 커피라는 사실을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네스프레소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새로 구입한 커피머신 브로슈어를 읽어봐도 품질에 대한 이야기는 몇 단계를 거치고 내려가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대신 커피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안내하고 고객에게 가장 잘 맞는 커피를 찾아주려 애쓰죠.
이미 충분히 훌륭한 커피를 갖추고 있으니 당신은 그저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본인들이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네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내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내리고 남은 이 캡슐들은 다 어디로 가나…? 이것도 결국 쓰레기일 텐데…. 호기심에 그 과정을 추적해보니 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와 알루미늄 캡슐을 재활용하는 데도 네스프레소가 꽤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여과된 커피 분말은 농장 거름으로 다시 사용되고, 캡슐은 100퍼센트 재활용되어 음료 캔이나 자전거 그리고 네스프레소의 커피 머신을 만드는 데 쓰이더라고요.
심지어 2020년부터는 포르투갈의 패션 스타트업 브랜드 '제타Zèta'와 협업해오며 커피 분쇄물을 재활용한 운동화를 론칭하기도 했는데요. 네스프레소 캡슐 12개 분량에서 나온 커피 찌꺼기를 재가공해 신발 한 켤레에 해당하는 밑창과 비건 가죽의 주요 원료로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고로 다 쓴 네 스프레소 캡슐은 직접 매장을 방문하거나 간단한 온라인 요청을 통해 너무도 쉽게 반납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들이 왜 '네스프레소 말고 굳이 다른 걸? What else?'라고 말을 걸어오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됩니다.
흔히들 '엣지'라고 부르는 그 뾰족함을 들이밀지 않아도, 브랜드를 둘러싼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건네지 않아도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세상에 없던 새로운'이라든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이라는 워딩 대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이라는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