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쓰기가 막막할 때

💡 10분 안에 이런 걸 알려드려요!

  • '초안의 초안', 제로 드래프트를 초기에 작성해야 하는 이유
  • 회의 중, 보고서 작성 전 등 제로 드래프트 200% 활용 팁
  • 에너지와 시간도 아끼면서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되는 방법

저자 김획자

소비재 대기업 9년 차 전략기획 전문가 > 프로필 더 보기

혹시 〈나 혼자 산다〉 박정민 배우 편 보셨나요? 한 에피소드에서 박정민 배우는 원고 한 편을 청탁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얘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빈 화면을 띄워 놓고 한참을 가만히 턱만 괴고 앉아있는데요. 이내 몇 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컴퓨터 앞을 떠나고 맙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적 있지 않나요?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던 경험 말이죠.

 

주니어 시절, 상사로부터 모레까지 회사소개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의견을 담아야 하는 문서도 아닐뿐더러 회사의 히스토리, 주요 사업 영역, 매출액 등 관련 자료가 많으니 쉽게 술술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네!"라고 씩씩하게 답하고 자리로 돌아왔죠. 그런데 막상 문서를 작성하려 하니 어디부터 어디까지 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회사에 혼자 남아 야근을 했죠.

 

더 당황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겨우 방향을 정해 혼자 밤낮으로 끙끙 앓으며 보고서를 작성했음에도, "내가 원하는 건 이 방향이 아닌데"라는 상사의 피드백을 들었던 거죠. 그동안의 야근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보고서를 빨리 쓰지 못하는 이유, 보고서가 한번에 통과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 첫 번째는 보고서를 쓰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서입니다. 이 보고서를 왜 쓰는지를 모르면 어떻게 써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 두 번째는 보고서를 지시한 상사와의 컨센서스*가 부족해서입니다. 상사가 생각한 방향은 A인데 나는 B라고 생각해 보고서를 완성한다면, 결국 내가 쓴 보고서는 시작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 consensus, 어떤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일치된 의견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그래서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처음부터 제대로 보고서를 쓰기 위해 상사에게 제로 드래프트를 보여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보고서를 구성하면 될까요?"라고 큰 마음 먹고 물어봤는데요. 상사는 오히려 제로 드래프트를 반기는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A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김획자님은 B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까요?"라며 제 의견을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먼저 피드백을 받고 나니, 마치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보고서가 술술 써지는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9년 동안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하면서, 수천 개의 보고서를 쓰면서 깨달은 '보고서 빨리 쓰기 노하우' 그리고 '통과하는 보고서를 쓰는 노하우'를 여러분께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

 

핵심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초안의 초안, '제로 드래프트'를 그려보는 것입니다. 즉, 글의 뼈대를 만들기 전에 그 뼈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간단히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 제로 드래프트를 가지고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상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거예요.

일 잘하는 선배의 비밀, ‘제로 드래프트’

제로 드래프트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주창한 개념입니다. '후속 계획의 기초가 되는 기본 계획'을 의미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제로 드래프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그러나 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 코드를 빼놓은 채 방해받지 않고 연속으로 5시간 내지 6시간 동안 보고서 작성에 전력투구한다면, 내가 이름 지은 소위 '제로 드래프트Zero Draft(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때 과거의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립한 계획으로서 후속 계획의 기초가 되는 기본 계획을 의미함)'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시간의 소비자다. 게다가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의 낭비자들이다.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193p

저는 이 제로 드래프트를 회사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일하는 방식이 궁금했던 팀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항상 책상 위에 A4 용지를 펼쳐놓고는 연필로 뭔가를 계속 썼다가 지우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태블릿 PC에 뭔가를 부지런히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워낙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기로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던 분이라 손으로 뭘 쓰는 건지 물어봤습니다.

"선배님, 혹시 손으로 매일 뭘 쓰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 선배가 제게 묻더라고요.

"김획자 님은 보고서 쓸 때, 가장 먼저 뭘 하세요?"

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PPT를 열어요."

그랬더니 그 선배는 보고서를 쓸 때, 가장 먼저 손으로 보고서의 목적은 무엇인지, 언제까지 보고해야 하는 것인지, 보고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적어보고, 보고서를 어떻게 구성할지도 손으로 그려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PPT를 작성하는 시간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