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기도 있다

[김하나, 황선우의 '여자 둘이 일하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콘텐츠입니다 ※

- 본 콘텐츠는 '창의성도 훈련할 수 있을까? 영감을 만드는 아이디어 발상 노하우'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부쩍 생산성이 떨어진 것 같아 '나는 번아웃일까?' 고민해본 적 있는 분
  • 지금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을 때 쉬자는 생각으로 휴식을 계속 미뤄온 분
  • 쉬고 있을 때도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걸까?' 싶어 불안하고 초조한 분

저자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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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어, 프리랜서 2년 차. 여러 매거진의 에디터를 거쳐 <W Korea>에서 피처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김하나와 같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으며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 인터뷰 시리즈 <멋있으면 다 언니>를 만들었습니다.
 

저자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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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진행자, 프리랜서 14년 차. 제일기획, TBWA Korea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3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말하기>, <힘 빼기의 기술> 등의 책을 냈고 황선우와 같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

🌿김하나(이하 김): 무더위로 지치는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의적절한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오늘은 프리랜서의 심신 건강 관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황선우(이하 황): 일하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다 사용하죠. 잘 일하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좋은 상태로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일에 지나치게 나를 내줘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로로 몸의 어딘가 고장 나고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거나 일터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번아웃이 오는 등 건강을 위협받는 경우를 주변에서 정말 많이 보게 됩니다.

 

🌿김: 특히 프리랜서들은 스스로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피고 돌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내가 아니면 누구도 나의 심신 건강을 고려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실은 저도 요즘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심신이 지치고 기운이 없는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거든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것이 불면으로 연결되고, 며칠씩 잠을 못 자니 몸이 버텨내기가 어려웠어요. 몸과 마음이 따로가 아니라는 걸 깊이 느꼈죠.

 

🎈황: 옆에서 지켜보는 저 역시 무척 안타까웠는데요. 다행히 하나씨는 나아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나요?

 

🌿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싶을 때 병원을 찾아가서 영양제 수액을 맞고, 잠을 잘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아왔죠. 그때부터 바닥을 찍고 조금씩 올라온 것 같아요. 단번에 쭉 올라오는 게 아니라 계단식의 그래프를 그리면서요.

 

저에게는 스스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했던 자체가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냈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어떤 치료 과정에 있거나 상담을 받고 있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거라고요.

 

🎈황: 자신이 번아웃이라고 느끼는 상황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하나씨보다 여러모로 둔감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한창 번아웃일 때도 제 상태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못 느꼈던 것 같거든요. 겉으로는 평온했어요. 오히려 퍼포먼스가 좋아 보이는 쪽이었죠.

 

하지만 평소보다 큰 프로젝트를 맡아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다 보니 한동안은 집에 오면 꼼짝 않고 모로 누워 폰만 들여다봤어요. 머리를 비우는 단순한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그때는 닥친 일에 몰두해서 잘 해내는 것만 생각하느라 나를 혹사시키면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일적인 성취감이나 보람을 내 개인의 행복과 혼동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둘은 분명 별개인데 말이에요.

 

짧은 성취감의 시기가 지나가고 나니 비로소 무리했던 내가, 피폐해진 내 몸과 마음이 보였죠. 전문가들은 번아웃에 대해 지적인 활동을 너무 해서 소진되었다고 느끼는 '두뇌 번아웃'과 감정 노동으로 소진되는 '감정 번아웃'으로 나누기도 하더라고요. 하나 씨가 감정 번아웃의 경우였다면 저는 두뇌 번아웃에 해당되는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어요.

 

🌿김: 선우 씨는 그때 어떻게 번아웃에서 벗어나 회복했나요?

 

🎈황: 그냥 놀았어요.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며 밖에 나가 인스타에 올릴 만한 사진이라도 건지는 거 말고, 정말 가만히 노는 거 말이죠. 틈만 나면 잽싸게 눕고, 멍 때리는 것을 습관화했던 것 같아요. 언제 무리하게 될지 모르니까 무리하지 않을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죠.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게 기본이 되어 있다 보니 번아웃조차 최선을 다해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심신의 에너지가 진짜 바닥일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생산적으로 보내지 못하는 시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죠. 그러다 보니 쉴 때도 최선을 다해 효율적으로 쉬려고 하고요.

 

🎈황: 인생에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는 걸 알고 견뎌야 또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기도 찾아오는 것 같아요. 태풍이 불 때 굳이 무릅쓰고 나가서 뭔가 하면 위험하잖아요. 가만히 그 상태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딱히 뭘 다른 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 셈인데, 돌아보니 그게 저에게는 해결책이었어요.

 

🌿김: 제 경우는 SNS를 안 들여다보는 것도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에너지가 밖으로 흘러나가는 대신 내 안으로 단단하게 응축되는 게 느껴져요. 이렇게 자신을 고요하게 돌보고,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정리의 기간을 가진 뒤에는 물론 다시 SNS를 열심히 하겠지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