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면 빨리, 같이 가면 멀리

한참 집중해서 일하는데 컴퓨터 화면에 카톡 알람이 깜빡거렸다. 백진주였다.

👩🏼‍🦰 팀장님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으세요?

뒷골이 당겼다.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모른 척할 수 없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요 며칠 동안 사무실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갈 때면 뒤통수가 서늘했다. 내가 던진 농담에 짧게나마 웃던 녀석들이 거짓말처럼 표정을 싹 바꿨다.

 

하루는 밖에서 통화를 하고 돌아오는데 백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제 말 안 들려요?!

순간 나는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 한영수와 백진주는 싸우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 제 말 안 들리냐구요?!

한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의 그라면, 내가 알고 있는 한영수라면, 군에 갓 입대한 이병처럼 "네!" 하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나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들어갔다. 내가 등장하자 백진주는 당황한 듯 표정을 바꾸고 제자리에 앉았다. 한영수는 파티션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누구라도 나에게 와 무엇이든 먼저 얘기해 주길 바랐지만, 그들은 미동도 없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물을 수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아니, 사실 물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을 만큼 바빴다. 외부 협력 업체의 전화, 사내의 업무 협조 요청 메신저, 실장님의 호출 외에도 보고서 작성까지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문득 백진주와 한영수의 문제가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사소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살짝 귀찮기도 했다.

 

백진주가 나에게 카톡을 보낸 건 다음 날이었다. 나는 여전히 보고서 작성에 머리를 쥐어짜느라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해있었다. 나는 손에 쥔 펜을 내려놓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텅 빈 방구석에 백진주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무슨 일이에요?

👩🏼‍🦰 팀장님… 제가 몇 번을 고민했는데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