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됐다

팀장이 공석이란다. 그러니 나보고 팀장을 하란다. 그야말로 '어쩌다 팀장'이 되었다. 모든 게 서툴고 어려웠다. 몸을 둥글게 말아 자신을 보호하는 공벌레처럼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끙끙댔다. 어느 날은 아팠고, 다른 날은 이불을 찼고, 또 어떤 날은 목놓아 울기도 했다.

 

1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알을 깨고 나온 데미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장(長)'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권력'은 부려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소심한 새가슴 움켜쥐고 건방진 후배 하나 못 잡는 팀장이여,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화 한 번 안 내 본 겉만 멀쩡한 팀장이여,

처음이 어렵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우린 모두 우렁차게 울며 엄마 배를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다. 

 

이 글은 '어쩌다 팀장'이 된  '초보 팀장'의 이야기다. 후배에게 치이고, 동기에게 쪼이고, 상사에게 까이는, 세상의 마음 약한 팀장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

저자 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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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느라 20대 전부를 다 쏟아붓고,  해외봉사활동 중에 덜컥 '이곳'에 취직했다.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부이자 수백의 리더십이 충돌하고 활약하는 플레이 그라운드, 여기는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이다. 취미는 팬픽, 특기는 칼퇴. 오늘도 나는 수많은 리더들을 보고 겪으며 기록 중이다.

조용한 사무실, 키보드 소리만 울리던 사무실에 후배 하나가 육성으로 "헉" 하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울리는 내 카톡.

🙁 후배: 차장님. 인사 나셨어요. ㅠ 알고 계셨어요?

👩🏻‍💼 나: 뭔 소리야.

동시에 깜빡깜빡 뜨기 시작하는 카톡들. 이윽고 나만큼이나 놀란 동기들의 카톡들이 쏟아졌다. 설마. 진짜야? 황급히 사내 통신을 접속해 파일을 열었다.

내 이름이다. 여러 번 눈을 씻어 봐도 할아버지가 일주일 걸려 지으셨다는 내 이름 석 자가 맞다. 어떤 통보도 예고도 없었다. 배신감과 서운함, 억울함에 직속 팀장인 고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 선배. 저 인사 났는데. 들으신 바 없어요?

고 팀장은 카톡을 보자마자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 김 팀장님, 예예.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그...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사무실을 나가는 고 팀장. 그녀가 간 길을 따라 나도 귀를 길게 뺐다. 김 팀장이라 함은 인사팀장이리라. 제발 사실이 아니라고 해줘. 

👩‍🚀 잠깐 나와봐.

고 팀장의 카톡을 받자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민지야, 어쩌냐. 지금 소분(소비자분석팀의 줄임말)팀에서 사람이 급하게 필요한가봐. 거기 경험자가 너밖에 없다며...

👩🏻‍💼 하아.. 경험이래 봤자 고작 1년인데, 그 경험으로 거기서 어떻게 일해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님' 대신 '야'나 '선배'를 쓰는 나와 고 팀장은 회사 내 찐친인 선배다. 음식 취향부터 가족사, 연애사 등 모르는 게 없는 절친 중의 절친이다. 그러니까 팀장이지만, 이렇게 불만을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

👩‍🚀 거기 이 팀장 있잖아. 이 팀장 사람은 좀 그지 같아도 일 하나는 잘하니까 그냥 닥치고 1년만 나 죽었네 하고 일이나 배워. 그리고 다시 와. 내가 너 책임지고 끌어당길게. 너 없으면 안 된다고 인사팀 앞에서 드러눕지 뭐.

고 팀장은 미안한 듯 어깨를 두드렸다. 허세라도 선배의 말은 괜히 위로가 됐다. 그래, 일 배우면서 조금만 버티면 되겠지. 뭐 죽으라고 하겠어.

 

하지만 나는 다음 날 알았다. 회사가 정말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을.

👨‍🏫 김 차장님, 못 들었어요? 나 육아휴직 써요. 와이프가 회사에 급하게 복귀해야 해서 1년간 자릴 비우는데. 인사팀에서 말 없었어요?

👩🏻‍💼 헉, 그러면 전 누구한테 일을 배우죠..?

👨‍🏫 아, 인사해요. 저기 우리 백진주씨랑 한영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