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일단 하는 거야"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20년 7월에 발간된 <일꾼의 말>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일꾼 J
대기업 산하 연구원에 20대 초반에 입사해 30년 넘게 일했다. 정년 퇴임 후 세계 곳곳에서 자원봉사 중이다.
인턴 면접장에서 일꾼 J를 처음 만났다.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어서인지 눈빛이 매서워서인지 세 명의 면접관 중에서도 압도적인 포스를 뿜고 있었다. 출력된 자기소개서를 안경 너머로 읽으며, 우리가 왜 당신을 인턴으로 뽑아야 하는지 물었다. 이후 이어진 질문도 날카로웠다. 속으로 '와, 저런 사람이 상사라면 장난 아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면접장을 나왔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인턴 출근 첫날, 사무실 가장 안쪽 자리에 그가 앉아 있었다.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이 일꾼은 열일 모드였다. 직급도 높은데 부지런하기까지 한, 어쩌면 피해야 할 상사 1순위에 등극할 법한 그런 캐릭터였다. 첫 회식 날, 이런 캐릭터가 늘 그러하듯 자신의 사회 초년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일꾼 J는 이 회사에 20대에 입사해 25년째 근무 중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올라갔다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조금 더 쉬운 업무를 맡게 된 참이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아주 만만하게 걸려든 지지리 운도 없는 인턴이 바로 나였다.
인턴 둘째 날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토씨 하나, 쉼표 하나까지 이 일꾼의 손을 거쳤다. 비문을 적어 가면 호통이 떨어졌다. "쥐도 당신보다는 낫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닭대가리는 들어봤어도 쥐는 처음이라서 신박했다. 워낙 혼이 나니 결과물을 제출할 때가 되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