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해 보이는 부장님도 밖에서 보면 다 아저씨고 아줌마야"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20년 7월에 발간된 <일꾼의 말>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일꾼 E
영화 배급사에서 제작 투자, 마케팅 업무를 배우며 5년 정도 일했다. 현재는 영화 배급 마케팅 프리랜서로 4년째 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상하게 어른들이 어려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담임선생님한테 화장실 가고 싶다는 소리를 못 해서 교실 바닥에 선 채로 실수를 한 적도 있다. 단순히 낯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라고 단정 짓기엔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도맡아 했던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반장을 하면 학급 회의를 진행해야 했는데, 이때도 담임선생님이 지켜볼 때와 지켜보지 않을 때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다른 사람이 됐다.
사회인이 되니 이런 나의 증상은 '부장님 울렁증'으로 발현됐다. 리더급 상사 앞에 서면 등에 땀이 흘렀다. 평소에는 센스 있게 잘만 받아치던 농담도 부장님 앞에선 어색한 웃음으로 뭉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러 팀원들 앞에서 하는 프레젠테이션보다 상사를 코앞에 두고 던지는 농담이 더 진땀 나는 기분을 알까. 한 부장님은 커피 한 모금 마시기 어려워하는 나를 보면서 이런 드립을 날렸다.
👨부장: 어머, 일꾼씨는 커피 한 잔 사면 한 달은 두고두고 마시겠어. 촤하하.
어쩌자고 나는 상사 앞에서 커피 한 모금도 마시기 어려웠던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 발견한 원효대사 해골 물도 아닌데.
언젠가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일꾼 E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일꾼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하는 말.
🐜일꾼 E: 아니, 그런 걸 뭘 고민해. 야! 대단해 보이는 부장님도 밖에서 보면 다 아저씨고 아줌마야. 너 시장에서 만나는 아저씨 어려워? 아줌마 어려워? 안 어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