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의 본격 창업 열차 탑승기

혼났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상사의 히스테리는 그날도 어김없었고, 팀원들은 누구 머리 위로 미사일이 떨어질지 눈치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불쌍한 당첨자는 나였다.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단두대에 오르는 미물마냥 어깨는 축 늘어뜨리고 껌이 붙은 듯 도무지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어렵게 옮기며 상사에게 불려 들어갔다.

 

상사는 틈만 나면 온갖 트집을 잡아 인신공격을 했다. 윽박과 고함에 '가을철 탈곡기인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팀원을 털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버텨온 서울살이였다. 한밤중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스트레스로 불면증, 원형탈모, 생리불순, 급성 알레르기도 앓았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고향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친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보호자의 병간호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상황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절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고향에 10여 년 만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왔다.

 

24시간 할머니 간병을 하며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지방에서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려는 회사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할 줄 아는 일은 디자인뿐인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직접 회사를 차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크몽, 숨고, 이랜서, 위시캣, 오투잡과 같은 프리랜서 중개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본격 창업 열차'에 탑승하게 됐다.

 

창업 아이템을 고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물건을 떼다 팔 자신도 없고 관심도 없어 쇼핑몰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자본금이 넉넉지 않아 가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동안 밥 벌어먹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디자인 스튜디오. 어쩔 수 없이 디자인, 브랜딩, 홍보로 내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