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Curator's Comment
마케팅 석학 홍성태 교수와 카카오 공동대표이자 브랜딩 전문가인 조수용 대표는 무수한 마케팅 서적을 읽으며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많다고 합니다. 책 속의 차별화 사례들이 "도무지 천재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 일색"이라는 거죠.
이 책을 쓴 이유도 누구나 '다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실무자 입장에서 어떻게 '다름'을 만들고,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예비 창업가, 기획자, 마케터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 독특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호감을 얻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방법이 궁금하신가요? 두 저자의 깊은 내공이 담긴 이 책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달라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5년 5월에 발간된<나음보다 다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유전자 염색체인 DNA 게놈의 구조를 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0.1%밖에 안 된다. 그런데 0.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DNA의 차이가 여자와 남자를 매우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일상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못해서 곤란한 일은 거의 없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제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웬만한 TV나 휴대폰의 품질은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고 성능도 비슷비슷하다. 이 와중에 차별화를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이다.
단 0.1%의 DNA 차이 때문에 남녀가 확연히 달라 보이듯이, 브랜드 간 작은 차이를 어떻게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식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모두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다면, 그 작은 차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식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차별화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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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석학 홍성태 교수와 카카오 공동대표이자 브랜딩 전문가인 조수용 대표는 무수한 마케팅 서적을 읽으며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많다고 합니다. 책 속의 차별화 사례들이 "도무지 천재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 일색"이라는 거죠.
이 책을 쓴 이유도 누구나 '다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실무자 입장에서 어떻게 '다름'을 만들고,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예비 창업가, 기획자, 마케터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 독특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호감을 얻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방법이 궁금하신가요? 두 저자의 깊은 내공이 담긴 이 책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달라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5년 5월에 발간된<나음보다 다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유전자 염색체인 DNA 게놈의 구조를 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0.1%밖에 안 된다. 그런데 0.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DNA의 차이가 여자와 남자를 매우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일상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못해서 곤란한 일은 거의 없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제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웬만한 TV나 휴대폰의 품질은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고 성능도 비슷비슷하다. 이 와중에 차별화를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이다.
단 0.1%의 DNA 차이 때문에 남녀가 확연히 달라 보이듯이, 브랜드 간 작은 차이를 어떻게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식시키느냐가 관건이다. 모두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다면, 그 작은 차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식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광고대행사 리앤디디비(Lee&DDB)의 대표였던 이용찬 씨는 오리온 초코파이의 '정(情)' 캠페인을 만든 실력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모 이동통신회사의 광고를 만들 때 겪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통신회사의 마케팅 상무가 콧대가 세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어서 대행사로서는 아주 까다로운 상대였던 모양이다. 이용찬 대표가 제품의 여러 차별점 중 한 가지만 부각시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매우 상기된 표정으로 "아니, 우리 서비스의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나만 얘기한다는 겁니까?"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용찬 대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응했다.
"예, 상무님. 정말 장점이 많은 서비스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 이야기는 잠깐 접겠습니다. 제가 듣기에 상무님이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해서 좋은 공을 준비해왔는데, 하나 드려도 될까요?" 하면서, 상무에게 테니스공을 하나 던졌다.
상무는 오른손으로 쉽게 공을 잡았다. 그러자 이 대표는 "역시 상무님은 운동신경이 아주 좋으시네요. 하나 더 드려도 되지요?" 하며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상무는 왼손으로 가볍게 그 공을 잡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대표는 "잘 잡으셨습니다. 하나 더 드리고 싶습니다" 하며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상무는 공을 쥔 두 손으로 세 번째 공도 잡았다.
이 대표는 "대단하십니다.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네 번째 공을 던졌고, 상무는 그 공을 잡느라 손에 들고 있던 다른 공 하나를 떨어뜨렸다. 이 대표가 마지막으로 "기왕 드린 김에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다섯 번째 공을 던지자, 상무는 그걸 잡겠다고 손을 뻗다가 들고 있던 공을 전부 놓치고 말았다.
이 대표는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상무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상무님, 장점 한 가지만 강조할까요, 아니면 다섯 가지 다 주장할까요?
죽도록 노력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었을 테니, 기업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는가. 아마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까워도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 브랜드의 가장 큰 강점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소비자에게 쏙쏙 꽂힌다.
볼보(Volvo)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안전성' 하나만을 꾸준히 임팩트 있게 전달한 덕분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물론 안전성 외에 내구성이나 서비스, 낮은 고장률 등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들은 '최소량의 법칙'을 충족시킬 정도면 충분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 겸 쇼핑몰인 아마존닷컴의 2014년 매출은 무려 890억 달러로 이베이의 2배이며, 구글(660억 달러)보다도 많다.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의 개인 자산도 29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렇게 앞서간 비결을 묻자 "경쟁사보다 10배 성장하길 원한다면, 10%만 달리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잊지 말라, 결국은 브랜드 간의 작은 차이가 매출의 큰 차이를 낳는다는 사실을. 출발선에서 5도만 각도를 틀어도 도착 지점은 100km의 차이가 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조금만 달라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비교를 잘해야 차별점이 두드러진다
외국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가끔 등장인물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시작부터 여러 사람이 나올 때면 한참이 지난 다음에도 영화의 줄거리가 헷갈리곤 한다. 우리가 서양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흑인의 얼굴은 더더욱 그렇다. 반대로 백인이나 흑인은 동양인의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기들끼리는 잘 알아보는데, 다른 인종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템플레이트(template)'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주 봐온 사람들에 대해 템플레이트, 즉 '전형적인 형태(혹은 형판)'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 낯선 한국 사람을 만나도, 템플레이트와의 차이점만을 파악하고 인식하므로 어렵지 않게 기억이 된다.
하지만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백인이나 흑인을 볼 기회가 적기에 그들에 대한 템플레이트를 갖기 어렵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의 얼굴을 구별하려면 많은 정보를 추가로 인식해야 하므로 그 차이를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주변의 사물에 대해서도 각자의 템플레이트를 갖고 있다. 가령 '청량음료는 이런 맛'이라든지, '스마트폰은 이런 것'이라는 자기 나름대로의 다양한 형판이다. 치약, 햄버거, 카메라, 자동차에 대해서도 각 카테고리의 대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DSLR 카메라에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은 캐논 5D 카메라와 50mm 표준렌즈가 찍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브랜드나 새로운 카메라 또는 렌즈를 살 때 그 기준으로 판단한다.
가령 카메라의 화소 수나 렌즈의 화각 및 밝기 정도로 가격을 판단할 때, 캐논 5D와 50mm 렌즈가 기준(anchor)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소비자의 머릿속에 내 제품과 관련된 템플레이트가 있다면 차별화를 꾀하기가 훨씬 쉽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 제품의 차별점을 인식시키려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템플레이트를 잘 활용해야 한다.
지금이야 서울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외국 친구들이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로부터 서울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는데, 한국에 와본 적이 없는 친구에게, 그것도 1980년대에 서울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난감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설명할 수도 없고, 지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도쿄 같은 곳인데 더 활기찬 도시'라고 대답했는데, 의외로 잘 알아들어서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도쿄가 서울보다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도쿄에 대한 템플레이트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국적인 아시아의 도시'라는 이미지일 것이다. 즉 '이국적인 아시아 도시'라는 카테고리의 리더는 도쿄다. '도쿄 같은 곳'이라는 설명은 일단 그 이미지와의 유사점(POP, Point Of Parity)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다음에는 차별점(POD, Point Of Difference)을 얘기한다. '더 활기차다'가 바로 그것이다. "도쿄 사람들은 밤 11시가 되면 집에 들어가지만, 서울 사람들은 그 시간이면 집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불야성을 이룬다"라고 농담처럼 건네면 눈이 동그래지며 금세 알아듣는다.
'도쿄 같은 곳인데 더 활기찬 도시'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서울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도쿄에 대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서울을 부각하는 방법이다.
고객을 향해 "우리 제품은 다르다니까요!"라고 백날 외쳐 봐야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다. 이때 유사점과 차별점은 사람들의 인식을 활용하는 차별화의 기본 원리가 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것이 바로 '밀러(Miller)'다. 1970년대 미국의 맥주시장은 버드와이저(Budweiser)가 고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즉 '맛있는 맥주'라는 카테고리의 리더는 버드와이저였다. 경쟁사인 밀러는 '저칼로리 맥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발했으나, 이를 알릴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유사점-차별점 개념을 적용해 내놓은 슬로건이 밀러라이트(Miller Lite)의 그 유명한 "Great Taste, Less Filling(맛은 더하고, 포만감은 줄였어요)"이다.
칼로리가 적은 맥주는 맛이 없을 거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버드와이저처럼 맛을 강조하면서도(Great Taste: 유사점), 탄수화물이 적어 배가 덜 부르다는 점(Less Filling: 차별점)을 내세움으로써 소비자들의 뇌리에 쉽게 파고들었다.
이러한 원리는 새로운 컨셉의 브랜드를 런칭하는 핵심 전략이 된다. 2000년 여성 포털 사이트 뷰티넷을 통해 테스트 마케팅을 시작한 에이블씨앤씨(Able C&C)는, 2002년 3300원짜리 화장품을 파는 '미샤'를 선보이며 '초저가 화장품'이라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더페이스샵'이 여기에 뛰어든다. 더페이스샵은 미샤와 같은 초저가 화장품(유사점)을 표방하되, 여기에 자연주의라는 차별점을 더해 시장에 안착한다.
더페이스샵은 유사점-차별점 전략을 이중으로 활용했는데, 또 다른 상대는 바로 '더바디샵'이다. 상표도 더바디샵(The Body Shop)과 비슷하게 더페이스샵(The Face Shop)으로 짓고, 바디샵과 같은 자연주의 화장품 카테고리(유사점)를 표방하면서 가격은 절반 이하로 낮춰서 저가 화장품(차별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즉 더페이스샵은 미샤의 초저가라는 매력과 더바디샵의 자연주의라는 장점을 잘 접목한 케이스다.
사람들은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흔히 '차별화'라고 하면 먼저 남과 달라야 한다는 데만 신경을 쓴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와 차별화할 것인가? 이것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차별화 전략은 길을 잃고 우왕좌왕 헤매기 쉽다.
인식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비교가 되는 대표 카테고리, 즉 누구의 등을 밟고 올라설지를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마켓 리더와의 '유사점'을 내세워 제품이 속한 카테고리를 알린 후에 '차별점'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반드시 카테고리 리더를 이용해야 하나?', '꼭 유사점이 있는 POP 브랜드를 찾아야만 할까?', '이 제품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지를 꼭 알려야 할까?'
'OB사운드'라는 맥주를 예로 들어보자. 술은 꼭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사귀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원래 술이 약한 사람도 있고, 운전 때문에 음주를 삼가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저(低)알코올 맥주, OB사운드다. 거품과 향으로 술을 마시는 기분은 낼 수 있지만,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 알코올 함량 0.7%의 맥주다. 그런데 취하지 않으면서 즐기는 술이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야심차게 맥주시장에 뛰어든 OB사운드는, 아쉽게도 판매 부진으로 2007년에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기능을 보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맥주인데, 왜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바로 뚜렷한 카테고리를 설정하지 못한 탓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는 정보가 제대로 분류되지 않으면, 아무 분류함에나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두뇌에서 퇴출시켜 버린다. OB사운드는 카테고리를 제대로 정하지 못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OB사운드처럼 카테고리의 선도 브랜드가 아직 없는 신제품을 런칭할 때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존의 제품을 POP 브랜드로 삼았어야 한다. OB사운드는 POP 브랜드를 제대로 잡지 못해 맥주와 맥주맛 음료, 어느 쪽으로도 각인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제품을 POP 브랜드로 정할 것인가는, 달리 표현하면 소비자의 마음속에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POP 브랜드가 곧 내 제품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닻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제품은 과연 어떤 카테고리에 닻을 내릴 것인지 신중히 고민해볼 일이다.
사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프레젠테이션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신제품의 특징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간략하고 임팩트 있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밝히곤 했는데, 그의 설명을 잘 들어보면 유사점과 차별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프레젠테이션 몇 가지를 통해 스티브 잡스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살펴보자.
1990년대에는 데스크톱 PC가 필수품이 되면서 집이든 사무실이든 저마다 책상 위에 PC를 한 대씩 갖추게 되었다. 지금이야 대부분 슬림한 LED 모니터를 쓰고 있지만, 당시 회색이나 베이지 컬러의 육중한 모니터가 놓인 책상 위 풍경은 사무실 전체를 매우 답답해 보이게 했다.
오랜 방랑 끝에 친정인 애플로 돌아온 잡스가 천재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만나 만든 것이 바로 아이맥(iMac)이었다. 절치부심하여 만든 새로운 PC이기에 많은 특징을 어필하고 싶었겠지만,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잡스는 이렇게만 말했다.
이게 아이맥이라는 겁니다. 통째로 투명하지요. 여러분이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까요. 멋지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좀 더 자세히 해석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유사점(POP): 이 제품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PC입니다. 이 아이맥 PC가 기존의 다른 PC들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다는 건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신제품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차별점(POD): 당신 책상 위에 놓인 둔하게 생긴 컴퓨터가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지금 그대로 지내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혹시 거슬린다면, 새로 나온 아이맥을 한번 보시죠. 투명해서 전혀 답답하지 않다니까요! 어때요? 느낌이 오지 않나요?
지금이야 레코드나 CD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없지만, 처음 MP3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를 반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LP나 카세트테이프, CD가 아닌, 형체 없는 음악을 다운받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음질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고, 음반사들은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노심초사하는 상황이었다.
이 무렵, 잡스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아이팟이다. 그는 아이팟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고 놀라운 기계에 노래 1000곡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게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네요.
이 말을 다시 해석해보자.
유사점(POP): 이 제품은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편리하게 들을 수 있는 소형 음악 재생기입니다. 물론 20여 곡을 넣고 들을 수 있는 워크맨도 있지만요.
차이점(POD): 작동이 간편하면서도 멋진 이 기계에 훨씬 더 많은 곡을 담을 수 있어요. 그리고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요.
스마트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아이폰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도 한번 보자. 그는 아이폰을 소개하면서 버튼 없는 자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터넷 기능을 전화기에 심어서 무엇이 좋은지, 어떤 앱을 쓸 수 있는지 등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혼란을 주지 않았다. 그는 기존의 아이팟 고객들이 아이폰을 쉽고 친숙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만을 강조했다.
이건 일종의 아이팟이에요. 그런데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죠. 3개가 별도의 기계가 아니고, 하나의 기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 부를 겁니다.
유사점(POP): 아이팟 써보셨죠? 아이팟과 모양이나 사용법이 비슷하고 물론 음악도 들을 수 있지요.
차이점(POD): 그런데 휴대폰처럼 전화도 되죠. 그뿐인가요?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기능이 이 기계 하나로 다 됩니다.
그가 만든 제품들은 전반적으로는 매력이 넘치지만, 따지고 보면 결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애플 제품들의 차별적 장점을 소비자들에게 임팩트 있게 인식시키는 그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멸종의 위기는 진화의 새로운 기회다
생태계의 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듯이, 제품들도 살아남으려면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며 진화한다. 제품의 진화 과정이 자연계의 진화 원리와 유사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들 역시 진화와 소멸을 거듭하고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유선 라디오가 대세였다가 길을 다니면서도 들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까지 진화했으나, TV가 나오면서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TV 시장은 화면이 불룩한 브라운관식 흑백 TV에서 시작해, RCA, GE, 제니스, 실바니아 등 27개 기업이 적응방산*을 하며 다양한 진화를 이루었다.
* 하나의 조상 종으로부터 많은 수의 후손 종들이 빠르게 진화하는 현상
그런데 '컬러 TV'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니가 반도체 부품을 중심으로 만든 트리니트론(Trinitron)이라는 투사방식을 통해 화면이 평평하여 어느 각도에서나 잘 보이는 '평면사각 TV'를 내놓았다. 그러자 진공관 TV들은 대멸종하고, 소니를 비롯한 솔리드스테이트(solid state) 평면사각 TV가 적응방산을 하며 파나소닉, 산요, 도시바 등 일본 TV가 시장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이은 것은 한국의 기업들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삼성은 더욱 과감하게 LCD 방식을 도입했다. 선두주자인 소니의 평면사각 TV와 마찬가지로 '어느 각도에서나 잘 보이면서'(POP), '선명하고 강렬한 색과 얇아진 두께'(POD)로 소니를 제치고 TV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곧바로 LG가 가장 먼저 적응방산을 시작했고, 일본 전자업체들도 방산하며 진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구에 생존하는 생물의 역사와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을 비교해보면, 속도와 기간은 다소 다를지라도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장(場)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해 보인다.
대멸종 이후에 살아남는 제품이 카테고리 표준(POP)이 되고, 방산형 진화를 통해 다양한 특징을 가진 제품(POD)들이 출현했다가 또 다시 대멸종을 맞으며 진화를 반복하는 모습은 대단히 흥미롭다.
대멸종의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적응방산을 통해 각 방향으로 진화한 제품 중에서 시장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 핵심은 물론, 나만의 특성(POD)이다. 하지만 잊지 말자, 어떤 카테고리(POP) 안에 당신의 제품을 포지셔닝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 다음에야 어떻게 적응방산을 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