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리고 비움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6년 10월에 발간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콘텐츠 발행일: 2020.01.17]

 

사람의 행동은 좀처럼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뒤집어 말하면 생각의 틀이 행동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생각의 틀이 다르면 각자 다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하나의 조직이나 단체라면 구성원이 같은 생각의 틀, 즉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의 의의와 방향성을 조직원과 충분히 공유하고 내면화할 때 비로소 조직은 단합하고 하나 되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차곡차곡 누적된 위기 상황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터진 엄청난 재난과 위기 앞에서도 성심당 구성원들은 흩어져 도망가지 않고 슬기롭게 모든 상황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부터는 위기 앞에서 특히 강해지는 성심당의 내적 동력, 즉 그들이 함께 공유해 온 생각의 틀은 무엇인지, 그 단단한 구심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시 1999년, 20세기의 마지막 해가 밝았을 때 성심당은 안팎으로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도심은 쇠락하고, 동생의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영진의 마음고생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정신 바짝 차리고 더 열심히 일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미진의 몸에 병마가 찾아왔다. 이름도 흔치 않은 모야모야병이었다.

 

모야모야병은 방치했다가는 뇌출혈로 장애, 혹은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희귀병이라 그해 초 미진은 바로 뇌수술을 받고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나이 마흔에 겪은 큰 수술이었다. 결혼 직후 성심당 디자인과 마케팅을 도맡으며 17년간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멈추고, 먼저 몸을 돌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