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프랜차이즈 사업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6년 10월에 발간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콘텐츠 발행일: 2020.01.17]

 

1990년대 성심당을 어려움에 빠트렸던 요인이 바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균열이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1981년 성심당 2대 경영을 시작한 영진은 위로 누나 네 명, 아래로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기석을 두고 있었다. 기석은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성심당에 들어와 형과 함께 일했다. 기석에게 형 영진은 아버지 이상으로 믿고 따르는 존재였다. 기석은 성심당 동료들에게도 형을 그 누구보다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기석은 결혼하고 2년이 지난 1995년의 어느 날, 독립하여 독자적인 사업을 꾸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막 인기를 끌던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이었다. 영진은 극구 말렸다. 빵집을 프랜차이즈로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기석도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영진의 생각이었다.

 

아니,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기다려 보라고 설득했지만 기석은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던 시대였고, 또 기석 주변으로 이미 여러 사람이 모이고 있었다. 기석 입장에서는 돌이키기 어려운 결심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영진이 동생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당시 분위기만 보면 기석의 프랜차이즈 사업 구상이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된 프랜차이즈 사업은 1990년대 들어 그 몸집을 엄청나게 불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잭팟을 터트렸다는 성공담이 떠돌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프랜차이즈 사업이 확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