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키워라

2000년에 출간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보면, 저자 소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스스로는 소설가보다 자전거 레이서로 불리기를 원한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그는 자전거 '풍륜'을 끌고 전국의 산천을 돌아다녔다.* 한국일보에서 27년간이나 책상에 앉아 기사를 써 온 문학 기자이자 작가 김훈의 나이 52세 때 일이다.

* 관련 기사: 김훈씨 산문집 '자전거 여행' 펴내 (국민일보, 2000.8.7)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그리고 1년 후인 2001년, 명실상부한 작가로 인정받은 작품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 이후 어느 책에선가 김훈은 화려한 이력은 다 지워 버리고 작가 소개란에 간단히 '라이더'라고만 적어 넣었다.

 

당시 그런 행보를 엿보면서 신선하다 싶었다. 나도 모르게 기자나 작가에 대해 갖고 있던 '창백함과 나약함'이라는 편견이 확 깨졌던 순간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가지런한 문장은 시처럼 스며들었다. 그 나이의 글쟁이가 자동차 아닌 자전거를 타고 굽이치는 산야를 헤매고 다녔다는 사실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등학교 1, 2학년 시절, 나는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편이었다. 미술 선생님 추천으로 오후 시간을 미술반 활동에 할애했다. 그런데 3학년이 되자, 이번엔 담임 선생님의 만류로 미술반을 그만두어야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것이 고등학교의 주된 사명이었다. 나더러 딴짓 하지 말고 공부 쪽에만 치중하라는 암묵의 강요였다.

 

그렇게 공부에만 충실했던 나는, 대학에 가서도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4년을 보냈다. 모두 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와 손과 입을 쓰는 일이었다. 졸업을 한 뒤에도 육체 활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정신노동자로 살았다.

 

술과 담배와 커피는 늘 가까이 있었다. 반면 땀과 근육, 힘에 관한 욕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번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신체 활동과 정신 활동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