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

모범생 트랙에서 이탈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특별한 모험도, 굴곡진 고난도 없이 살아왔다. 명문대 국문과에 무난히 합격했고 태평하지 않은 시절, 데모에 참가하고 시험 거부에 동참했어도 경찰서에 잡혀갈 만한 일까지는 하지 않았다.

 

3년간 동아리 연극 무대에 서면서 숨겨둔 끼를 발산하기도 했지만, 가난한 배우가 되겠다는 모험심은 금세 접었다. 연애에 목숨을 걸지 않았고, 속도위반이나 이른 결혼을 시도할 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대학 생활은 평탄하게 흘러갔다.

 

친정 엄마는 다른 형제들보다 똑똑했지만 평생을 전업 주부로 살았다. 그게 아쉬웠던지, "여자는 직업과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딸을 세뇌시켰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은 아예 고려해 보지도 않았다. 4학년 2학기부터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대부분 잡지사나 광고회사, 기업 홍보실이었다.

 

몇 번 면접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많았고,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날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광고 하나가 눈에 번쩍 띄었다. 진보 언론이 창간을 준비하는 시사 월간지의 신입 기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 신문에서 발행하는 구태의연한 월간지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었다.

 

'아, 내가 여기 들어가려고, 소쩍새가 그리도 울었나 보구나.'

 

대학 시절의 반 이상을 독재 정권 밑에서 시달린 세대답게, 특히 시사성이 강한 글을 쓰는 데 재미를 느꼈다. 돌멩이를 던지며 앞장서진 못해도, 연극이나 글쓰기처럼 내가 잘하는 일로 민주화에 한몫을 담당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얼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기사 한 편을 작성해서 입사 서류를 제출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1차 서류 심사에 합격했고, 2차 필기시험도 척 하니 통과했다. 첫날 출근해 보니 합격한 신입 기자는 나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이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남자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4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이었다. '기자 OOO'라고 찍힌 명함을 두 통씩 받고 우리는 곧바로 창간 작업에 투입되었다.

 

운 좋게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을 해 버렸으니, 우선 학교에 나가 통보해야 했다. 친구들한테 명함을 돌리는데 나도 모르게 부쩍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도 교수님과 조교 선배를 찾아가 남은 수업을 들어가지 못하니 잘 봐달라고 애교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