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서운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야

2007년 8월, 태풍이라도 몰려오는지 밤새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졌다. 빗소리에 맘이 뒤숭숭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몸을 뒤척거리면서 기도를 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독실한 기도꾼이 되었다. 기도 내용도 참 다채로웠다.

 

'제발, 비가 더 쏟아지게 해주세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트라이애슬론(triathlon)* 대회 참가를 신청한 날이었다. 내 기도가 먹힌 것인지, 과연 아침이 되어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왕 대회에 나가기로 했으면 열심히 뛸 생각을 해야지, 더 비가 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신세라니!

* 수영, 사이클, 마라톤의 세 종목을 연이어 겨루는 경기로 '철인3종 경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매년 여름, 이천에서 열리는 '설봉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특히 초보자들이 많이 참가한다. 가장 어렵다는 오픈 워터(open water)*가 파도 일렁이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서 수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 바다와 강, 호수 등 야외에서 개최되는 장거리 수영 경기

 

의욕이 앞서서 덜컥 신청은 했지만 세 종목 중 뭐 하나 잘할 자신이 없었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페달에 끼우는 자전거 전용 클릿 신발을 신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빼는 연습을 하다가 몇 번 넘어진 터라 걱정이 태산 같았다.

 

선수들이 출발 시간에 맞춰 전신 슈트로 갈아입고 설봉 호수 근처로 모여 들었다. 비는 점점 더 사납게 쏟아졌다. 선수들 틈에 껴 있었지만, 대회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잠시 후 대회 본부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길이 미끄러워서 낙차할 위험이 있으니 자전거 종목은 빼고 경기를 진행한다는 거였다. 간신히 한시름 놨지만, 사실 내가 뭘 모른 거였다. 더 무서운 복병은 따로 있었다.

 

수영을 시작하기 위해 호숫가로 주춤주춤 걸어 나갔다. 그런데 잔잔한 호수이기는커녕, 폭우로 철렁대는 누르죽죽한 흙탕물이 아닌가. 갑자기 여자 선수 하나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덩달아 나까지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물에 빠져 죽은 쥐 한 마리가 코앞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갔다.

 

'아, 역시 철인3종은 무리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수영과 달리기, 사이클만 탈 줄 알면 철인3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자격은 따로 있었다. 이런 악천후를 견디는 담대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출발 신호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