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킬로미터만 완주하면 소원이 없겠어요

'공터 한 바퀴'로 시작한 달리기는 열 바퀴까지 차근차근 늘어났다. 아니, 이렇게 늘려 나가다 보면 그 이상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라토너 이홍렬 씨가 말한 것처럼, 내 보폭에 맞춰 네 박자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행위는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었다. 결코 지루한 반복이 아니었다.

 

만약 달리는 공간이 헬스클럽의 트레드밀 위였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1년 회원권을 끊어 실내 운동을 한 적이 있다. 기계가 자동으로 움직여 주는 트레드밀 위에서는 더 짧은 거리를 뛰어도 훨씬 힘들었다. 이유가 뭘까.

 

미국의 마라톤 잡지 에서는 달리는 사람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달리는 이유가 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는 멋진 몸매를 유지하거나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 달리는 운동파.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앞서고 싶거나 목표로 세운 기록을 단축하고 싶어서 달리는 경쟁파. 세 번째는 나무가 많은 공원이나 호젓한 길을 따라, 달리는 느낌 자체를 즐기는 취미파. 네 번째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달리는 것이 재미있는 사교파.

'운동파'에서 '취미파'로 거듭나다

처음엔 뱃살이 빠지고 고혈압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차차 체력이 붙고 뛰는 거리가 늘어가면서, 온몸을 움직이며 땅을 박차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졌다. 억지로 살을 빼야 한다거나, 기록을 단축하려는 목적이 뚜렷했다면 지레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 몸을 힘차게 움직여 본 기억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달리기는 어른, 여성, 엄마의 틀 안에 가둬 놓았던 내 몸을 자유롭게 풀어 놓는 독립 선언이었다.

 

평소라면 소파에 누워 피곤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이런저런 걱정에 잠길 시간이었다. 그러는 대신 땀으로 푹 젖을 만큼 달리고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 유쾌한 에너지가 온갖 시름을 덮었다. 저녁 회식이라도 생기면 달리기를 빼먹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