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크리에이티브'란 제품 패키지, 광고물, 홍보물, 음악, 영상물과 같이 마케팅에 필요한 제작물을 통칭하는 업계 용어다. 원래 다양한 기획물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용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광고 제작물로 한정한다.

크리에이티브는 마케터의 고생과 노력을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가장 구체적인 '마케팅의 최종 완성품'이다

기획 단계에서 아무리 좋은 전략을 짰다 한들, 소비자가 직접 볼 수 있는 멋진 결과물로 나와야 비로소 그동안 쏟은 수고가 빛을 발한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티브는 마케터 본인이 직접 만들지 않고 대행사에 의뢰해 진행한다. 따라서 '마케터가 대행사와 어떻게 협업해야 최고의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을까?'는 중요한 고민이다.

한 회사에 마케터 A와 B가 있었다. 둘은 동일한 광고 대행사와 일하고 있었다. A는 더 크고 중요한 브랜드를 담당해 예산도 많은 반면, B는 작은 신생 브랜드를 담당하고 예산도 훨씬 적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B와 일할 때 대행사 담당자들이 더 활기찼고 크리에이티브도 술술 멋지게 잘 나왔다. 이왕 일하는 거 A보다는 B와 일하고 싶다는 말도 들렸다. 왜 잘나가는 브랜드 담당에 예산도 많은 A보다 B와 일하고 싶다고 했을까? 두 사람에게는 대행사와 일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행사와 협업 잘하는 방법을 아는 마케터와 그렇지 않은 마케터는 결과물 퀄리티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번 만든 광고는 다시 비슷한 형태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광고는 항상 매번 새로워야 한다) 광고의 성공이 마케터의 능력 덕분인지, 대행사 담당자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예산이 넉넉해서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대행사와 협업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심지어 '갑질'을 하거나 '대행사는 쪼면 일이 된다'는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뉴욕이나 런던을 거점으로 둔 세계적인 대행사에서는 직원들 대상으로 '일 잘하는 클라이언트'가 어떤 사람인지, 주요 제작물의 진행 단계마다 마케터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교육하기도 한다. 브리프 쓰는 법이나 대행사가 개발한 시안에 대해 코멘트하는 방법만 2박 3일을 꼬박 투자해 알려주기도 한다. 그 두 가지가 핵심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협업의 시작, 브리프 작성

브리프(brief)란 마케팅 부서에서 대행사에 광고물 개발을 의뢰할 때 쓰는 공식 문서다. 워드 파일 기준 1~2장으로 왜 이 광고물이 필요한지, 이 광고물은 어떤 전략과 소비자 인사이트를 고려해서 기획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필요한 광고물의 요건은 무엇이고 주어진 예산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 중요한 사항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한다.

 

사실 현업에서는 브리프를 안 쓰고 구두나 간단한 이메일로 진행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소규모 예산에 열악한 마케팅 조직이 아니라면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브리프를 마케팅 기본 프로세스로 정해두는 것이 좋다. 브리프를 쓰는 자체로도 다음과 같은 중요한 효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생각을 글로 쓸 정도로 명확하게 정리할 줄 알아야 결국 일도 잘된다

구두로 작업해도 브리프에 들어가는 항목을 결국 전달해야 일이 된다. 결국 브리프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서는 구두 전달보다 생각을 더 다듬어야 하고 기록이 남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브리프 양식은 수십 년간 마케팅 업계에서 활용하면서 효과가 검증된, 심플하면서도 광고 제작을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을 포함하는 훌륭한 도구다. 쓰면서 생각도 더 다듬어 나갈 수 있고, 부서 내에 노하우도 쌓인다.

  • 대행사에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

깊게 고민해 쓴 브리프를 전달하면 대행사에서도 다르게 생각해준다. 이에 동기부여돼 더 멋진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단순한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 대행사 내부에 공유되어 구성원들이 공통된 이해를 하게 한다

대행사 내부에도 기획, 크리에이티브, 매체 팀 등등 여러 부서가 있다. 대행사 조직 내에서 업무 추진을 위해 부서끼리 커뮤니케이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클라이언트가 쓴 브리프다. 즉, 마케터가 쓴 한 장의 브리프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널리 활용되는지 알면 결코 건성으로 쓸 수 없다.

  • 위험 부담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브리프로 정리하지 않고 일을 시작하면 아웃풋이 나왔을 때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일관성 있게 가이드하기 힘들다. 즉 최종 아웃풋이 원래 전략이나 의도와 다르게 나와도 서로 설득하기 어렵고, 일이 느려지는 경우가 생긴다.

 

브리프는 양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편이라 이 양식을 채우려고 노력하면 큰 무리 없이 쓸 수 있다. 회사마다 양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유사하므로, 총 일곱 가지 섹션으로 나눠 하나씩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프로젝트 제목

뭘 해야 하는 프로젝트인지 제목만 보아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줄로 정의한다. 대행사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내 프로젝트를 각인시킬 수 있도록 짓는 게 좋다. 예를 들어 '브랜드 X의 여름 시즌 세일즈 부스트 업 프로젝트'라고 하면 이 프로젝트의 메인 테마(여름 시즌)와 목적(판매 증대)이 제목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단, 신제품 개발처럼 기밀 유지가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예외적으로 코드명을 쓰기도 한다.

 

2. 배경 설명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사업적 배경을 설명한다. 회사 사정을 모르는 대행사 담당자가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동기 부여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목적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사업 목표(예를 들어 판매 증대인지, 인지도 향상인지 등)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러 목적이 있을 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인지도를 올리면서 기존 고객 로열티도, 판매량도 올리고 싶은 것이 마케터 본심이라고 해도 이렇게 다양한 목적을 섞어 버리면 프로젝트가 꼬이기 시작한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하나를 명확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행사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회사의 경우, 이 '목적' 달성 여부에 따라 담당 마케터뿐 아니라 대행사도 함께 평가해 차년도 계약 갱신 여부에 반영하기도 한다.

 

4. 타깃 인사이트

소비자 조사 등의 자료에서 얻은 타깃에 대한 인사이트를 정리해 주는 부분이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장애물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을 소비자의 언어로 생생하게 써 주면 보통 대행사에서 영감을 받아 좋은 결과물을 가져올 확률이 올라간다.

 

5. 키 챌린지(key challenge) 및 전략

사업상의 키 챌린지 혹은 기회 요소가 어떻게, 왜 발견됐는지, 또 이것이 실현되는 것이 어떤 의미와 중요도를 가지는지 정리하는 부분이다. 특히 잘 쓴 브리프와 대충 쓴 브리프의 질적 차이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항목으로, 잘 쓴 브리프는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부분을 잘 쓰기 위해서는 브리프 작성 전에 충분히 의사 결정권자들과 논의하는 게 좋다.

 

6. 아웃풋(output)

기대하는 최종 결과물을 상세하게 리스트업하는 부분이다. 이때 아웃풋을 너무 구체적으로 좁게 정의하면 대행사의 창의력을 미리 제한할 수 있고, 너무 광범위하게 정의하면 엉뚱한 아웃풋이 나올 위험이 커진다. 그 적절한 수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유용한 팁이라면 콘텐츠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않되(이건 대행사의 고유 업무 영역에 가깝기 때문에, 자세히 쓸수록 광고가 '내 생각대로' 뻔하게 나올 위험이 크다),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 좋다.

 

7. 일정과 예산

프로젝트에 쓸 수 있는 총예산 규모, 제작 완료 기한 등 일정을 적는 부분이다. 일정과 예산은 세세하게 나누기보다는 중요한 마일스톤을 중심으로 굵직하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대행사 입장에서도 융통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기 용이하다.

XYZ 샴푸 브랜드의 브리프 예시

브리프는 작성만큼 전달도 중요하다

브리프를 전달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급하다고 이메일만 쓰는 경우도 많은데 과연 맞는 방법일까. 답은 '아니오'다.

 

브리프는 잘 쓰는 것만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면 회의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물리적으로 어려울 경우 최소한 미리 이메일을 보낸 뒤 전화 혹은 화상 회의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왜냐하면 브리프를 전달하는 순간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목적들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대행사에 확실하게 동기부여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브랜드에 어떤 도움이 될지 잘 설명해줘야 동기 부여가 확실하게 된다. 프로젝트와 브랜드를 사랑하는 당신의 진심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다.
  • 평소 부족한 제품 교육을 제대로 해줄 수 있다.
    대행사 직원들은 역량과 감각은 좋지만 제품에 대한 지식은 담당 마케터만큼 풍부할 수 없다. 제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
  • 타깃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대행사는 소비자 마인드로 일하는 사람이다. 타깃 소비자에게 깊이 공감하면 아이디어는 사실 자연스럽게 풀리게 마련이다. 보통 그 첫 단추가 잘 안 끼워져 문제가 되는데, 타깃에 대한 이야기는 '마케터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브리프를 써서 전달하면 대행사에서 산출물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이 산출물은 중간중간 마케터의 피드백을 거쳐 완성되는데 이런 중간 산출물을 어떤 방향으로 수정·보완·발전시켜야 하는지 가이드해 주는 것을 '에이전시 코멘팅'이라고 한다.

 

마케팅 광고물이 '망했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브리프 단계부터 잘못 나갔거나,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케터가 엉뚱하게 코멘팅했거나, 대행사의 역량이 부족했거나.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많은 경우 망한 광고물이 나올 때는 에이전시 코멘팅이 잘못됐거나 대행사 역량이 부족한 경우다. 후자는 대행사의 문제이니, 마케터 입장에서는 에이전시 코멘팅을 잘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행사는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파악해 클라이언트가 기대하는 바에 맞춰 일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클라이언트가 아주 이상한 의견을 말할 경우 대행사에서 소신 있게 반대 의견을 표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한다. 따라서 마케터가 대행사에게 광고물에 대해 코멘팅할 때는 "내가 하는 말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신중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에이전시 코멘팅이 중요하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행사나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에서는 이 부분을 교육하는 데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산업군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마케터가 에이전시 코멘팅을 잘하기 위해 알아둬야 할 핵심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영역이다.

  • 광고물을 제대로 평가하는 판단 기준 세우기
  • 평가 의견을 대행사에게 잘 전달하는 방법 : 코멘팅 스킬

광고물을 제대로 평가하는 판단 기준 세우기

에이전시 코멘팅을 잘하려면 마케터 스스로 광고물을 평가하는 '판단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광고물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평가 기준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지만, 두 가지면 충분하다. 이 두 가지 이외에 마케터가 다른 생각을 해서 방향이 흐려지면 오히려 코멘팅이 잘 안 된다.

  • 브리프에 맞는 결과물이 나왔나?

여기서 브리프가 다시 등장한다. 브리프를 잘 써야 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광고가 완성될 때까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브리프를 잘못 쓰면 광고를 망칠 수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만약 브리프를 제대로 썼다고 가정한다면 에이전시 코멘팅 단계에서는 브리프를 기준으로 광고물의 적합성을 판단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잊기 쉬운 내용이다. 반드시 대행사와의 회의 전에 브리프를 다시 꼼꼼하게 읽고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 개발하는 광고물이 원래 의도한 목적에 맞게 진행 중인지 아니면 엉뚱하게 진행되지는 않는지, 그런 부분이 있다면 어디인지를 잡아내는 기준점은 바로 '브리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최고의 마케팅 크리에이티브가 가지는 세 가지 특성에 부합하는가?

두 번째 판단 기준은 최고의 마케팅 결과물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성에 비추어 어떤 점이 부족한지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좋은 크리에이티브 제작물의 특징에 대한 자료는 시중에도 많지만 그중 핵심 세 가지만 정리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실전에서 이 세 가지만 명확하게 짚을 줄 알아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타깃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확하게는 '멈춰서 일부러 볼 정도로 눈에 띈다'는 의미다. 이건 현란한 색이나 튀는 디자인으로 억지스럽게 눈길을 잡기보다는, 타깃의 마음속 호감을 자극해 '스스로 보고 싶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이즈나 광고물의 위치, 채널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중요한 원칙이다.

2) 3초 안에 내용이 모두 이해된다.
짧지만 내용물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3초'로 본다. 소비자에게 3초 이상의 시간을 달라는 것은 무리다. 짧은 순간에도 의도한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마케터는 시안을 반복해서 보기 때문에 이 기준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시안을 맨 처음 봤을 때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3) 타깃 소비자의 추가 행동을 자극한다.
중요한데 자주 잊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배너 광고인데 클릭하는 버튼을 잊고 비주얼만 예쁘게 걸어두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여기서 소비자의 추가 행동이란 정보를 더 탐색할 수 있게 유인하는 것일 수도, 곧장 구매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으로 연결할지는 마케터가 고객의 구매 여정을 생각해 판단해야 한다. 최근 광고는 검색으로 많이 연결하는데,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다.

평가 의견을 대행사에 잘 전달하는 방법: 코멘팅 스킬

광고물이 의도한 방향대로 진행 중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판단했다면 이제 본인의 의견을 잘 정리해서 대행사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이때도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가끔 동물적 감각으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바로 던지는 마케터가 있는데 참 민망하다. '업무를 제대로 못 배워서 그렇구나' 싶어서다. 보통 일 잘하는 마케터는 감이 좋으니 직감이 맞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러나 그 감을 표현하는 방법도 날것이어선 안 된다. 요령을 가지고 전달해야 듣는 대행사에서도 반영할 수 있다.

 

성급하게 말하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이 3단계에 걸쳐 코멘팅하는 것이 좋다. 3단계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이렇게 단계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1단계 : 머리로 생각한다.
- 브리프에 맞게 결과물이 나온 것인지. 예산과 일정, 전략에 부합하는지 확인한다.
2단계: 가슴으로 느낀다.
- 소비자에 빙의해 시안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본다. 앞서 살펴본 '최고의 마케팅 크리에이티브가 갖는 3가지 공통점'도 이 단계에서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다.
3단계: 건설적으로 코멘팅한다.
-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대행사에 전달하는 단계다. 순서는 간단한 총평, 이어 그렇게 총평한 근거를 설명하는 두괄식 구조를 추천한다.

크리에이티브가 워낙 중요하고 다들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결과물을 기다리는 클라이언트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대행사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스트레스 레벨이 높은 상황에서 완성도가 높지 않은 중간 과정을 리뷰하고 의견을 전하는 회의를 건설적으로 진행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때가 프로다운 언행을 익힌 마케터가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광고 리뷰 회의 자리에서 프로답게 일하기 위해서 반드시 피해야 할 실수 유형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현업에서 많이 일어나는 실수의 대표적인 유형을 꼽아 보았다.

  • 광고물이 걸릴 실제 상황을 잊고 시안 자체가 괜찮다는 이유로 컨펌해 버리는 경우

시안만 예쁘게 블랙 보드에 붙여 오면 눈에 잘 띄고 보기에도 좋은데, 이대로 결정하면 절대 안 된다. 가령 배너 광고라면 실제 구동될 웹사이트에 목업을 얹어 본다든지, POP광고의 경우 실제 배치할 장소와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시안만 괜찮다고 컨펌했다가 나중에 눈에 안 띄어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타깃 소비자의 입장이 아니라 마케터 본인 개인의 의견에 비추어 코멘팅하는 경우

마케터의 자아가 너무 강하면 생기는 이슈다. 코멘팅할 때 주어는 항상 브랜드와 고객이 돼야 한다. '제가 보기엔'이 아니라 '저희 고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으로 시작해야 한다. 특히 타깃 고객보다 마케터 본인의 취향이 너무 세련돼 크리에이티브가 고객으로부터 멀어지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자신의 취향이 아무리 세련되더라도 자제하는 것이 옳다.

  • 전략이 아니라 컬러·모양·디자인 등 시각적인 디테일에 대해서만 코멘팅하는 경우

디자인 디테일에 대한 지적을 늘어놓다 보면 대행사의 업무 영역을 침범해 감정적으로 민감해질 수 있다. 또 이후 수정 작업이 제한적으로 진행돼 좋은 결과물이 안 나올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파란색이 마음에 안 들어요. 빼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색상을 혹시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파란색은 여름 느낌을 살릴 수는 있지만 경쟁사 브랜드의 색상이라 저희 브랜드 광고 같아 보이지 않아서요. 계절감을 살리면서도 이 파란색이 아닌 다른 옵션을 고려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코멘팅하는 것은 이후 작업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전자의 경우 다음 수정안은 파란색만 빼고 가지고 올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파란색을 대체하는 다양한 옵션들이 보완될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뻔하다.

  • 팀원이 미리 한 코멘트를 잘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 내는 경우

대행사와의 회의 자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방인 대행사 입장에서 같은 말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보다 먼저 코멘팅한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새로운 이야기 혹은 앞에서 나온 말과 반대되는 의견 중심으로 언급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나중에 말할수록 할 말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니어라면 먼저 말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 대행사 담당자의 감정이 상하는 언행을 하는 경우

마케터 입장에서 고민과 욕심이 많은 경우, 대행사에서 마음에 안 드는 광고물을 가져오면 감정 조절이 안 돼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 말의 톤 앤 매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쓸데없이 감정의 앙금을 남겨서 좋을 것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모든 과정은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교감해 함께 좋은 결과물을 만들지'에 대한 이야기다. 다행히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갑질' 행태가 개선되는 건 고무적이다. 서구 사회에서 먼저 발전한 마케팅과 대행사 업무를 대하는 성숙한 문화를 우리도 제대로 실천할 단계가 된 것 같다.

- 대행사는 전문가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
- 세상에 겉으로 친절하지 않은 대행사 담당자는 없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다. 진심이 움직이지 않으면 업무는 억지로 하게 되고, 억지로 한 업무가 좋은 아웃풋을 만들기는 어렵다. 창의력은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 대행사가 어려워할 때는 어떤 제약 조건이 걸려 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제약 조건들이 창의력을 옭아맬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서로 대화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마케터가 풀어주려고 노력하면 결과물은 반드시 좋아진다.
창의력은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마케터 입장에서 이 정도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