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이론과 실무의 차이

요즘 들어 어려움을 토로하는 마케터 후배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회사 상황이 녹록지 않은 데다 디지털화로 인해 마케팅 업무가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니, 주니어 마케터들도 별다른 트레이닝 없이 실전에 투입돼 사수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 탄탄한 마케팅 체계를 갖춘 회사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자연히 고민이 늘어난다.

이제 마케팅이 뭔지는 대강 알겠는데, 과연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당장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하면 10년, 20년 롱런하는 마케터가 될 수 있을까? 롱런하는 마케터가 되는 길은 무엇일까?

이런 솔직하고 의미 있는 고민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시중의 마케팅 관련 서적을 봐도 '블로그 운영 잘하는 법', '인플루언서 마케팅 잘하는 법'처럼 트렌드에 맞춘 마케팅 실행 노하우를 정리한 가이드는 많지만 마케팅 체계를 튼튼하게 잡아주는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마케팅의 '핵심 체계'는 책보다 현장에서 사수로부터 배운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요즘은 사수 역할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도 자신의 업무에 치여 누구를 가르칠 여유가 없다고들 하니, 이런 현실과 후배의 의미 있는 질문 앞에서 고민하던 필자들은 최근에 겪은 일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몇 달 전 다국적 기업 Z사의 한국 지사장 A를 만났다. 그에게서 가슴 벅찬 소식을 전해 들었다. Z사 마케팅팀에 나의 옛 후배 B가 올해 초에 브랜드 매니저로 입사했는데 지사장 A는 나의 후배 B의 마케팅 플랜을 보고 '제대로 된 마케팅 플랜'이라며 전 조직원들 앞에서 극찬했다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Z사는 최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Z사에서조차 공식적으로 발표 안 된 비밀도 귀띔해 주었다. 현재 Z사의 마케팅 임원이 외국인인데 곧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어서 B를 그의 후임 임원으로 승진시킬 예정이라는 것. B가 얼마나 바랐던 일인지 알기에 나는 무척 뿌듯했다.

 

사실 B는 처음부터 일 잘한다고 칭찬받던 마케터가 아니었다. 10여 년 전 함께 일할 때, B는 고민 많던 후배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일 잘하는 마케터, 보스에게 인정받는 마케터로 훌륭하게 성장한 것이다.

일 잘하는 마케터의 특징

  • 지속 가능한 마케팅 플랜 짜는 마케터

A 지사장이 얘기한 '제대로 된 마케팅 플랜'이란 무엇일까? B가 인정받은 이유가 매출 성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재 시장은 포화 상태로 성장이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커머스(e-commerce) 채널에서 좋은 매출을 내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B는 또한 발 빠르게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주요 조직원들을 포괄하는 통합적인 플랜을 수립했으며, B가 짜 놓은 마케팅 플랜이 영업·기획 등 타 부서 관련자들에게 명확하게 공유돼 전사 협업이 용이해졌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케팅 플랜이란, 시장에서 먹힐 만한 전략을 짜서 실적을 내고 매출을 일으키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

일 잘하는 마케터의 핵심 역량은 한 마디로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즉 회사의 역량과 에너지를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쓰도록 사내 다양한 부서의 구성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회사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 프로들의 승부처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우리가 마케팅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경쟁사를 이기고 원하는 사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사 결정권자와 유관 부서를 설득해야 조직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깊이 있게 시장 상황을 통찰해서 마케팅 해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역량이다.

 

이렇게 마케팅 플랜을 잘 짜고 조직에 전파해 실행까지 끌어내는 마케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는다. 자신만의 논리와 체계를 잡아 실전에서 꾸준히 연마해야 자기 것이 된다.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될 길잡이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콘텐츠를 기획하게 됐다.

 

완벽하진 않지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말단부터 임원까지 마케팅 분야에서만 한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시행착오 속에도 흐르는 '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몇 번의 이직을 통해, 겉으로는 마케팅이 상황마다 제각각 달라 보여도 그 속에는 공통으로 활용할 만한 체계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이 콘텐츠에서 얘기하려는 체계는 거창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그래야 정신없는 현장에서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마케터가 가장 흔하게 접해야 하는 아홉 가지 업무 영역 속에서 찾은 보편타당한 업무 체계와 활용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콘텐츠, '마케팅 교과서 깨기'다.

 

이어지는 챕터들의 일관된 흐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마케팅의 핵심 이슈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알기

전략이 거창한 것은 아니고, 논리적으로 정돈된 접근법이라고 보면 된다. 단계별 접근 방법, 꼭 필요한 프레임워크 정리, 다방면에 활용 가능한 체크리스트, 해당 업무를 할 때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 등이 본문에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 마케팅의 실제 사례, 특히 실패 사례를 통해 배우기

마케팅은 성공 사례는 흔하지만 실패 사례를 깊게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건 오히려 실패 사례다. 그래서 각 챕터 본문에는 실패 사례, 오류 유형, 저지르기 쉬운 실수 등의 내용을 빠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 꼭 알아야 할 것을 한 장으로 정리하기

길고 복잡하면 실전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본문에서 소개한 대부분의 중요한 프레임워크나 체크리스트는 한 장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쓰면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겁도 났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실전형 요점 정리서 같은 레퍼런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끼리 치열하게 갑론을박했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인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핵심이 무엇인지 계속 의심하고 질문하며 내용을 다듬어 나갔다.

 

또 우리가 실무에서 직접 작성했던 마케팅 전략 보고 덱(deck), 신제품 론칭 플랜, 사업 계획서 등 실제로 활용된 양질의 자료들을 보면서 공통적인 특징을 바텀 업(bottom-up)으로 추출하고, 또 검증했다.

'마케팅 교과서 깨기' 활용법

일단, 이 콘텐츠는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 물론 당장의 업무 때문에 특정 챕터를 먼저 골라 읽을 수는 있지만, 마케팅 업무 프로세스의 전체 흐름에 맞춰 순서대로 챕터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각 챕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됐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초반부(챕터 2~4)에는 마케팅의 전략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 주는 근본적인 분석에 대해 다뤘다. 트렌드를 통해 큰 흐름을 파악한 후(챕터 2) 시장에서 경쟁사를 알아보고(챕터 3), 내 브랜드의 현 상황을 SWOT을 통해 파악함으로써(챕터 4) 방향이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도록 도와준다.
  • 이후 단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원 투입에 대한 의사 결정이 진행된다. 리스크를 줄이거나 플랜을 개선하기 위해 마케터는 소비자 조사를 하게 된다.(챕터 5) 마케팅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소비자 조사에 효율적으로 비용을 투입하려면 마케터가 어느 정도 조사에 대해 알아야 하기에 이런 관점에서 내용을 정리해 본다.
  • 마케팅 전략의 기본은 'who, what, how' 3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후반부(챕터 6~9)를 이 키워드에 맞게 순서대로 엮었다. STP를 통해 'who', 즉 소비자 인사이트를 배운다.(챕터 6) 'what'은 브랜드의 에센스를 강화하는 과정으로, 컨셉 개발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디자인하고(챕터 7), 콘텐츠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챕터 8) 앞에서 개발한 모든 내용이 크리에이티브 결과물로써(챕터 9) 실행되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이때 대행사 등 협력 파트너들과 협업의 질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 부분, 즉 'how'를 특히 강조해서 살펴볼 것이다.
  • 마지막으로 실적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계속 발전하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브랜드 건강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챕터 10)

추가로 본문에는 체크리스트 형태의 정리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체크리스트는 실제 업무를 할 때 활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만약 궁금한 점이 있거나 막상 해보니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로 문의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답변하면서 나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도움이 됐다면 칭찬의 댓글도 큰 격려가 될 것이다.

자가 진단: 나는 어떤 유형의 마케터인가?

우리가 각자 마케팅 경력 20년, 둘이 합쳐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직을 옮겨가며 다양한 산업을 겪어보니 직장 상사·동료·후배 등 꽤 다양한 유형의 마케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케팅을 잘하는 마케터는
한 가지 유형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머릿속에 일 잘하는 마케터로 한 가지 전형적인 스타일만 떠오른다면, 당신이 만났던 특정 상사의 스타일에 꽂혀서 그런 것이다. 만약 그 전형적인 스타일이 자신과 비슷하다면 괜찮은데, 만약 당신이 그와 다른 성향이라면 상당한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이건 꽤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 잘하는 마케터들은 다양한 유형으로, 각각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당신 또한 그 다양한 유형 가운데 하나에 분명히 들어갈 수 있다. 해당 마케터 유형은 다양한 마케터와 오랜 시간 일했던 경험에 우리 나름의 인사이트를 더한 것임을 밝힌다.

  • 브랜드 덕후: "브랜드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가꿔주고 싶어요."

말 그대로 '브랜드'에 꽂힌 마케터다. 마케팅 업무도 브랜드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브랜드가 성공하면 사업도 성공한다고 가슴 깊이 믿는 마케터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전형적인 마케터 유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브랜드를 성장 시켜 멋진 모습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려는 의지가 커서, 아이디어나 감각이 그 방향으로 발달해 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재능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자칫 상업적 사고(commercial mind)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경우 커리어 발전에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니, 이 유형에 속한다면 상업적 사고를 꾸준히 키우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 선한 혁신가: "마케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사업이 이 세상에 주는 철학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마케팅이 사업의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주는 일'이라 믿고 실천하려는 의욕이 유난히 높은 마케터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잘 맞는 조직에 가면 폭발적인 열정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는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필자 중 권오정 파트너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 마케팅 구루: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내 마케터들을 먼저 성장 시켜야죠."

이 유형은 한마디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믿고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다. 대체로 점잖으면서 재미있고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은 인기인일 경우가 많다. 실적이 잘 안 나와도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팀원들이 일을 잘해주는 경우가 많고, 위기가 왔을 때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팀원의 역량에 '기댄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스스로 감각을 꾸준히 연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창의력 만렙: "새로운 발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어요."

창의력과 감각이 탁월하고 멋진 아이디어도 스스로 척척 낸다. 대체로 이 유형은 예술가 같은 분위기에 다양한 놀이, 여행, 소셜 라이프를 즐기며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과 열정이 넘친다.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아 인기 있고 화제를 몰고 다니지만 장점이 잘 발휘되는 업무 분야를 만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적의 편차가 크기도 하다.

  • 실적 부자: "이번 달 마감을 해야, 중장기적 브랜드도 있는 거죠."

이 유형은 말 그대로 숫자에 강하다. 마케팅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고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 같은 관련 지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챙기는 업무 습관이 있다. 세일즈 부서와 마케팅을 두루두루 보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마케팅 쪽에서 커리어를 꾸준히 쌓을 경우 CEO로 승진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마케터 유형이기도 하다. 건조하고 강한 이미지 때문에 섬세한 사람들이 많은 마케팅 부서 내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필자 중 조민수 파트너가 이 유형에 해당한다.)

 

위의 다섯 가지 마케터의 유형이 무 자르듯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마케터가 되는 데 있어 나의 강점과 신념에 부합하는 유형을 찾아보는 것은, 이후 나올 아홉 개 챕터의 마케팅 노하우를 본격적으로 연마하기 전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