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코카콜라, 한국의 커피믹스
정프로: 이제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죠. 대신 수익률이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가 성공한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최준철: 제 대표 종목인 '동서'를 케이스로 들겠습니다. 11년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오래 보유한 종목이고 그만큼 리서치를 많이 했습니다.
버핏이 이런 이야기를 했죠. 돈도 복리지만, 지식도 복리라고요. 어떤 업종은 리서치를 많이 해도 잘 맞지 않아 허무했는데, 동서는 고비고비 흔들리는 순간에 제 지식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렸던 케이스예요. 이 업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발굴은 2001년이었어요. 당시에도 다들 관심이 없었습니다. 탐방을 안 받아요. 그리고 거래량이 적었고 당시만 해도 시장이 별로 커지지 않을 업종으로 평가받았죠.
이프로: 커피믹스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최준철: 네. 다들 커피믹스는 '캠핑 가서나 먹는 거잖아' 이랬어요. 그런데 제 눈에는 '어? 형네 사무실 가니까 요즘에는 다 그거 먹던데'가 되었죠. 그리고 IMF 이후 커피를 타주던 직원이 사라졌어요. 또 당시 친구였던 김민국 대표가 웅진코웨이를 좋아했는데, 그가 쓴 보고서를 보니 정수기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커피믹스가 상승작용이 날 것 같더라고요.
이프로: 그러네요. 정수기 옆엔 항상 커피믹스가 있지.
최준철: 그리고 한 번 먹으면 다들 못 끊더라고요. 커피믹스는 이 맛으로 표준화되는 게 보였습니다. 다른 제품을 사 오면 욕먹잖아요. 경쟁 품목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이었어요.
놀라운 건 이 회사가 계속해서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이름도 맥심으로 바꾸고, 세로로 뜯던 걸 가로로 뜯게 하고요. 자잘한 혁신을 하면서 또 모델은 안 바꿔요. 이미지를 딱 박는 거예요. 안성기 씨, 그리고 지금은 이나영 씨죠. 그런 전략이 다 마음에 드는 겁니다.
워런 버핏의 코카콜라, 한국의 커피믹스
정프로: 이제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죠. 대신 수익률이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가 성공한 사례를 듣고 싶습니다.
최준철: 제 대표 종목인 '동서'를 케이스로 들겠습니다. 11년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오래 보유한 종목이고 그만큼 리서치를 많이 했습니다.
버핏이 이런 이야기를 했죠. 돈도 복리지만, 지식도 복리라고요. 어떤 업종은 리서치를 많이 해도 잘 맞지 않아 허무했는데, 동서는 고비고비 흔들리는 순간에 제 지식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렸던 케이스예요. 이 업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발굴은 2001년이었어요. 당시에도 다들 관심이 없었습니다. 탐방을 안 받아요. 그리고 거래량이 적었고 당시만 해도 시장이 별로 커지지 않을 업종으로 평가받았죠.
이프로: 커피믹스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최준철: 네. 다들 커피믹스는 '캠핑 가서나 먹는 거잖아' 이랬어요. 그런데 제 눈에는 '어? 형네 사무실 가니까 요즘에는 다 그거 먹던데'가 되었죠. 그리고 IMF 이후 커피를 타주던 직원이 사라졌어요. 또 당시 친구였던 김민국 대표가 웅진코웨이를 좋아했는데, 그가 쓴 보고서를 보니 정수기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커피믹스가 상승작용이 날 것 같더라고요.
이프로: 그러네요. 정수기 옆엔 항상 커피믹스가 있지.
최준철: 그리고 한 번 먹으면 다들 못 끊더라고요. 커피믹스는 이 맛으로 표준화되는 게 보였습니다. 다른 제품을 사 오면 욕먹잖아요. 경쟁 품목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이었어요.
놀라운 건 이 회사가 계속해서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이름도 맥심으로 바꾸고, 세로로 뜯던 걸 가로로 뜯게 하고요. 자잘한 혁신을 하면서 또 모델은 안 바꿔요. 이미지를 딱 박는 거예요. 안성기 씨, 그리고 지금은 이나영 씨죠. 그런 전략이 다 마음에 드는 겁니다.
물론 고비가 몇 번 옵니다. 장기 투자자의 최고 걸림돌은 고비가 찾아오는 순간, 그 순간에 판단해야 하거든요. 2004년 커피전문점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전문점 때문에 커피믹스의 성장도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어요. 주가가 좀 비리비리한 상태였거든요.
하지만 제가 이 회사를 어느 정도 팠잖아요. 공생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커피전문점은 커피전문점대로 성장하고, 커피믹스는 가정이나 사무실의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고요.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탔어요. 커피를 한 잔 먹는 시장에서 두 잔 먹는 시장으로 바뀐 거죠. 동서 건은 메디톡스와 다르게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한 케이스입니다. 보톡스보다 커피가 쉽잖아요? (웃음)
그러다 2011년 남양유업이 프렌치카페를 들고나옵니다. 톱 모델을 내세워 경쟁사에 카제인나트륨이 있다고 흠집 내는 광고를 했죠.* 초기 기세가 만만찮았습니다. 주변에서 '우리도 프렌치카페로 바꿨는데 괜찮겠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 관련 기사: 커피믹스 라이벌 '카제인 공방' 법정 가나 (조선일보, 2012.3.16)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거든요. 마트 매대 앞에 서서 프렌치카페가 얼마나 팔리는지 하염없이 봤습니다. 프렌치카페를 집는 사람에게 왜 드시던 모카골드* 안 사냐고 화를 내고 싶더라고요.
* 동서의 커피믹스 브랜드 이름
하지만 이 위기를 넘길 힌트를 찾았어요.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국회도서관에서 찾은 동서의 30년사와 40년사였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사사(社史)를 읽는데 이런 위기가 처음이 아니더라고요. 옛날 네슬레 네스카페의 도전도, 테이스터스 초이스도 잘 넘겼어요. 언제나 평온한 상태에서 장사한 기업이 아니었던 거죠. 이 회사는 고비를 넘길 저력이 있는 회사다, 경영자를 믿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동서에서 신제품을 내놓더라고요. 이게 저에게 의미가 컸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모델인 화이트골드라는 제품이었어요. 카제인 나트륨을 뺀 커피믹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양이 공격한 약점을 인정한 꼴이 될 수 있는데, 그걸 인정하고 대응하더라고요. 회사 입장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요.
그리고 카누를 내놓았습니다. 회사가 원두로 전장을 바꾼 거죠. 아메리카노 시장도 인스턴트화하는 걸 보면서 믿음을 굳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
남양유업은 퇴치됐죠. 아니, 남양유업은 힘들어졌어요. 프렌치카페가 잘 될 거라 생각하고 공장까지 지었는데 훨씬 큰 부담이 됐거든요.
이프로: 남앙유업이 그런 전략으로 유명한 회사거든요. 이미 성숙한 시장에 뛰어들어 광고와 선전으로 시장을 잡아먹는…. 그러나 거기서 큰 실패를 하죠.
최준철: 동서가 성공사례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혼을 갈아 넣어 애정한 이 회사를 2014년에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커피믹스의 시대가 끝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오래 보다 보니까 좀 보이더라고요. 다행히 제 편견을 뛰어넘고 동서 커피믹스가 중국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강하게 올라가던 시기였거든요. 미련 없이 정리했습니다. 회사를 아니까 주가가 올라도 심리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중국 진출은 저희도 몇십 년간 리서치해봤는데, 어려워요. 커피믹스는 이제 안 된다는 의사결정을 내렸을 때 열반의 경지와 같은 걸 경험했습니다. 오래 보고, 잘 알고, 지식을 누적시키고, 냉정하게 보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요.
이프로: 누적 투자수익률은 얼마나 됩니까?
최준철: 배당 제외하고 16배가 올랐습니다. 단순히 지금 이 정도 수익률이어서 성공사례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을 근거로 비슷한 성공사례를 또 만들고 싶어요.
사잇길에서 대로를 걷다
이프로: 아까 서경배 회장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요. 서경배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도 꽤 성공적이었나 보죠?
최준철: 네. 경영을 잘하시니 주식 여부를 떠나 존경심이 들어요.
대학생 시절에 아모레퍼시픽은 배당주였습니다. 배당수익률이 한 4~5% 나오는데, 주가가 올라 한 2%대로 떨어졌을 때 팔았습니다. 배당 수익률도 떨어지고 또 그때 워낙 싼 종목이 많았거든요. 그 이후로 아모레퍼시픽을 산 적이 없어요. 워낙 인기 종목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체기가 오기 시작합니다. 시장에서도 아모레퍼시픽 판매사원 조직이 옛날에는 강점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가가호호 방문해 마사지해주고 화장품 파는 게 통하지 않잖아요. 화장품 브랜드도 많이 생겼고요. 그러면서 아모레퍼시픽이 독점하던 시장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아모레퍼시픽이 잘 된 이유는 많은 화장품 회사가 IMF 시절 망했기 때문이에요. 한국화장품이나 피어리스 이런 곳이요. 그러면서 반사이익을 봤어요. 그 '빨'이 끝났다고 본 시점이 대략 2009년~2010년쯤이었습니다. 이때 미샤나 더페이스샵 같은 회사가 잘 됐는데요. 아모레퍼시픽은 가격이 좀 높았어요.
그런데 서경배 회장이 에뛰드와 이니스프리를 자회사로 갖고 오더라고요. 에뛰드는 이익 수준이 낮고 이니스프리는 적자였는데 회장님이 잘 키워주겠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모레G에 들어갔습니다.
정프로: 아모레G가 아모레퍼시픽의 지주회사인 거죠?
최준철: 네. 저희가 살 때는 태평양이었어요. 나중에 이름을 바꿨습니다.
아모레G나 아모레퍼시픽이나 고점 기준으로 주가가 10배 이상 올랐어요. 그럴 거면 아모레퍼시픽을 사는 게 낫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달랐습니다. 좀 넓게 보고, 편견 없이 지주회사를 사서도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원에서 이것도 결국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0년에 사서 한창 올라가기 직전인 2014년에 정리했습니다.
김프로: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엔 중국에서의 인기도 한몫했는데요. 중국 특수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최준철: 허니버터 아몬드 같은 걸 보면 뭔가 계속 나올 것 같아요. 이런 기업이 좀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프로: 허니버터 아몬드가 중국에서 대박 났어요?
최준철: 중국인이 한국에 방문하면 무조건 사가는 품목입니다. 루이싱 커피(Luckin Coffee)라고 중국에서 스타벅스를 위협하는 커피 전문점이 있는데요. 거기에서도 허니버터 아몬드를 판매해요. 길림이라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인데 정말 대단한 역사를 써냈습니다.
김프로: 길림은 비상장회사예요?
최준철: 네. 다양한 맛을 만들면서 허니버터 유행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차를 가한 회사예요.
정프로: 마지막으로 성공 케이스 하나만 더 듣고 싶어요.
최준철: 지금까지 국내 케이스를 소개했는데, 지금 중국에도 투자하고 있어요. 중국에서도 한국운용사가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고, 많은 분이 해외 투자를 고려하시잖아요. 이것 역시 잘 찾으면 기회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국에 이하이(頤海)식품유한공사(이하 '이하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회사가 스몰캡*(small capital)으로 홍콩 시장에 상장됐어요. 저희 애널리스트가 이 회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길래 이유를 물으니까 훠궈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에 소스를 납품하는 대주주가 가진 회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주주의 공장인데, 거기서 만든 소스가 훠궈의 베이스가 되는 수프죠.
* 상장 또는 등록된 시가총액이 작은 회사들인 중소기업주
그 수프를 파우치 형태로 만들어 매장에서도 쓰고 마트에서도 파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은 집에서도 훠궈를 많이 먹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하이디라오 마크가 찍히는 거죠. 하이디라오가 확장하면 당연히 수량이 늘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하이디라오는 상장이 안 되어 있어 살 수 없었는데, 이하이로 하이디라오의 성장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했죠.
대주주도 조사해보니까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진짜 경영을 할 줄 아시는 분이더라고요. 제가 딱 좋아하는 타입인 거죠. 또 소스 이런 걸 원래 좋아했어요. 꾸준히 팔리고 사람들도 습관적으로 집어 드는 품목이라서요. 하이디라오로 장사하는 서비스업보다 오히려 저는 이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시장 반응도 없고요. 그래서 리서치를 더 했습니다. 다행히 착각한 건 아니었어요. 투자로 좋은 매출과 이익이 났고 그러면서 시장에 이하이의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프로: 그런데 이하이가 아니라 하이디라오가 직접 이 소스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김프로: 하이디라오 대주주가 이 회사에 있잖아요. 당시 대주주가 하이디라오 지분 100%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왜 하이디라오는 100% 지분을 가지고 있고, 이하이는 주주들과 나눠 먹게 왜 먼저 상장했는지 의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 그러는데 말이죠. 그래서 '웬 떡이냐' 했던 거죠.
실수를 마주할 용기
정프로: 대표님은 2008년 금융위기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최준철: 보수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기 때문에 강세장에서는 저희가 조금 덜 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약세장에서는 저희가 아웃퍼폼*(outperform) 한다는 기대감이 항상 있습니다.
* 시장 상승률보다 더 큰 상승률을 보이는 수익률
김프로: 가치투자니까요.
최준철: 네. 금융위기에서도 실제로 대부분 가치투자자들은 시장보다 더 빠지고 이런 케이스는 별로 없었어요. 의외로 방어를 많이 했습니다. 이게 가치투자 결과의 미덕인데요. 많이 벌 때는 좀 덜 먹더라도 깨질 때 덜 깨진다는 거예요.
2008년 이야기를 해보면 코스피 빠진 것만큼 저희도 빠졌습니다. 실수가 누적됐던 거죠. 할 말도 없고, '가치투자도 똑같이 빠지네' 이런 소리도 들리고. 제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니까 고객도 크게 실망하셨나 봐요.
결국 고객은 약세장에서 좀 자신감 있게 버티는 종목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때마다 대가들이 한 말이 비수처럼 꽂히는데, 버핏이 '썰물이 오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잖아요. 제가 딱 그런 기분이었어요. 잘난 척했지만 강세장에서는 실수가 가려진 것뿐이었죠.
약세장이 되니까 실수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했어요. 이런 상황이 와도 버틸 수 있도록 종목을 잘 꾸려놔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김프로: 어떻게 본인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할 수 있죠? 본인이 본인을 짓밟고 있어요. (웃음)
최준철: 저는 재수를 했는데요. 재수 시절도 좀 미화해요. 왜냐면 결국 대학에 붙었기 때문이거든요. 만약 대학을 가지 못했다면 재수 시절도 좋은 추억으로 남지 못했겠죠. 투자 실패나 재수나 저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어 재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의 시장은 2000년대 초처럼 그렇게 뒤바람 맞을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계속 2000 내외의 박스권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시기에도 100% 수익률을 냈다는 건 실패의 교훈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하고, 실수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김프로: 과거와 어떤 점이 달라졌어요?
최준철: 일단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그로스(growth) 종목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경기를 좀 덜 타는 디펜시브 그로스(defensive growth) 종목을 고릅니다. 경기는 자연스러운 거고 돈을 벌 기회도 주지만, 경기를 탈 때 제가 정확한 판단을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종목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리고 외부 환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전에는 정부 규제는 비웃었어요. 민간에서 하는 일을 정부에서 막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정부의 힘은 강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가 120달러를 봤던 세대였거든요. 20달러로 시작한 유가가 끝도 없이 올라가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시 20달러로 내려갈 수도 있어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원자재 시장에서는요.
미래를 단정하는 것을 조심하게 됐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대응하든 영향을 덜 받든 제가 할 일은 나 대신 잘 대응해줄 경영자를 선택하는 것이지, 이걸 투자에 반영하는 만용은 부리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정프로: 확실히 그런 아픔이 사람을 더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성공스토리가 30~40개 더 남아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네요. 어쨌든 실수는 최대한 줄여야 하고 성공은 최대한 늘려야 하잖아요. 투자자들에게 도움 될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최준철: 앞서 임상 횟수가 많다고 했지만 투자 역사가 훨씬 긴 나라의 투자 대가와 비교하면 경험에 격차가 있습니다. 결국 그분들이 했던 방식을 연구하는 거죠. 사내에서 독서토론 모임도 하면서 투자 대가의 책을 읽거나 주주서한을 보면서 토론하면서 성공은 흉내 내려고 하고 실수는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종목 선택의 기준을 업그레이드합니다.
그런 노력과 여러 고민과 경험이 쌓이면 지금보다 더 나은 투자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꾸준히 학습하고 있습니다.
정프로: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실수를 복기하고 다른 사례를 연구하는 것밖에 없군요.
최준철: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애널리스트와 편안한 카페에 가서 1년 동안의 실수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서로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어떤 걸 더 보완해야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교훈을 얻죠. 너무 자주 하면 의욕이 떨어지니 연말에 분위기 좋을 때 한 번 정도 합니다.
정프로: 개인 투자자분들도 연말에 투자를 복기하면서 실수를 바라보는 것도 좋겠네요. 보통 투자 실패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거든요.
최준철: 실수를 직면하는 건 자학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것이에요. 안 그러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든요.
또 한 가지, 저는 '주식은 안 돼'라는 소리를 듣는 걸 싫어해요. 주식이 좋은 자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올바르게 대비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잘 된 이야기보다 아프지만 솔직한 이야기로 조언해드리는 게 저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이프로: 공감합니다. 저도 20년 이상 투자를 했는데, 제 실수를 외면하고 살았거든요. 심지어 최 대표님은 많은 분의 돈을 운용하기 때문에 그 무게감도 훨씬 클 텐데, 그런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정프로: 오늘 정말 즐겁고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최준철 대표님, 긴 시간 동안 아주 솔직한 이야기 담백하게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