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시작하기: 일단 떠나는 거야!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내려놓고 다시 정해지지 않은 세계로 발을 들이기란 쉽지 않다. 퇴사 후 세계여행은 진부해진 소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콘텐츠로 만들어 새로운 커리어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이하 야반도주)'라는 이름으로 세계여행을 떠났던 두 친구는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기록으로 수많은 여행자와 소통했다. 그들이 만든 여행의 기록은 한 권의 책으로 또 다른 여행자를 설레게 했고, JTBC <트래블러>라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자의 감성을 담기도 했다.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의 김멋지(왼쪽)와 위선임(오른쪽)

월간 서른(이하 생략): '김멋지와 위선임', 두 분의 이름이 특이합니다. 본명인가요?

김멋지(이하 김): 본명은 아니에요. 블로그를 만들어서 여행 이야기를 적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필명을 하나씩 만들어 보자고 했죠. 본명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전 제 별명을 그대로 썼어요. 별명이 '멋지'거든요. 이름 그대로 저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지어준 별명이에요.

 

위선임(이하 위): 제 이름은 회사나 조직에 있는 직급 같은 느낌이죠. 저는 성이 위씨고, 여행 떠나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직급이 선임이었어요. 승진하던 날 성이랑 직급을 같이 붙여서 부르잖아요? 그런데 위선임이라고 불렀을 때 다들 빵 터졌어요. 위선적이다, 위선이. 그런데 그날 멋지가 저한테 그랬었어요. "야, 이 이름 네 성격이랑 잘 맞는 것 같아"라고요.

 

기분이 살짝 나쁘면서도 뭔가 부정할 수 없었어요. 제 성격 중에 그런 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전 그런 저의 성격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위선적으로 살지 말자고 각성하는 의미로 쓰게 됐어요.

 

두 분은 대학에서 만난 친구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친해지게 되셨나요?

저희가 처음 만난 건 2004년이었어요. 대학교 같은 과 동기였죠. 대학교 2학년 방학 때 인도에 가고 싶어 하는 동기 4명이 모였어요. 여행지를 고른 안목부터 심상치 않았죠. 4명이 같이 인도로 한 달 여행을 떠났었는데, 다른 둘은 못 견디겠다고 먼저 귀국했고 저희 둘은 일정을 연장해서 더 머물렀어요. 그때 '멋지는 나랑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데?' 하고 생각했죠.

 

대학 때부터 함께 여행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그럼 이제 퇴사하고 다녀온 세계여행 쪽으로 이야기를 옮겨볼게요. 퇴사하게 된 결심부터 들어볼까요?

직장생활 5년 차 정도 되었을 때 권태기도 오고 몸이 아주 아파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둔다고 하면 다들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물어보잖아요? 이것에 대한 답을 고민하다가 찾았던 명분이 결혼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별로 좋지 않은 명분임을 알게 됐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결혼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저는 결혼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쓴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남자친구에게 죄짓는 느낌도 들었고 스스로도 부끄러웠죠. 당시 직장생활을 하며 저처럼 시름시름 앓던 친구들을 관찰해보니 이직, 창업, 학업 등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어떤 선택지도 끌리지 않았어요.

 

그럼 퇴사 명분으로 선택한 것이 세계여행이었나요?

네. 저랑 멋지랑 대학교 3학년 때, 1년 휴학을 하고 반년 동안 각자 돈을 벌어서 두 달간 함께 여행한 적이 있어요. 터키, 요르단 쪽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서른 전에 세계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행 정보도 찾아보고 강연도 들어봤죠.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멋지한테 세계여행을 가자고 하니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해놓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을 정도로요.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고 여행을 떠나기까지 거의 1년 반 정도가 걸렸어요. 그동안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가 다음 날 가서 돌려달라고도 하고, 마음을 다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쓴 퇴직원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걱정보다는 일단 떠날 시점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신 것 같네요. '시작'을 두고 고민이 많을 때 선택을 잘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저희는 첫 여행지로 스페인을 선택했는데,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세계여행의 출발지로 누구에게나 최고의 선택지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의 선택은 지금까지의 경험과 로망이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저희에게는 중남미 국가를 여행하고 싶다는 로망이 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 봐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보통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많이 물어 오는데, 저도 딱히 묘책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그냥 뭐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진솔한 기록의 힘: 감정과 생각을 잡아두는 일

본격적으로 여행 이야기를 해볼게요. 스페인을 시작으로 얼마나 여행을 다녀오신 거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다녀와서 세어보니 718일 동안 24개국을 다녀왔더라고요. 여행 중간에 돈이 모자라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농장에서 딸기를 포장하는 일을 한 적도 있어요. 한국에서도 반복적인 업무를 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고작 몇 시간 정도였어서 매일매일 단순 반복형 노동을 해보기는 처음이었죠. 선임이는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즐겼는데,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딸기밭에서 일하고 있는 김멋지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눈물을 머금고 일해서 제겐 가혹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때 제가 단순 반복적인 일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잘 모르던 저의 모습을 알게 된 것이죠.

 

이런 여행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많이 남기셨잖아요.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블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블로그 이름으로 택한 이유도 알려 주세요.

제가 타고난 기록 마니아예요. 기록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고 공유해서 피드백 받는 것에 희열을 느껴요. 고등학교 시절, 일기를 써서 공유하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제가 사용하면서 학교에 널리 알리기도 했어요. 세계여행은 제 인생에 큰 이벤트니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여행 전에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블로그를 개설했고요. 서른 살에 결혼 대신 세계여행을 선택한 것이니 블로그 타이틀의 시작을 '서른, 결혼 대신'으로 잡았죠.

 

그리고 대학생 시절 밤 비행기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느꼈던 '도망친다'라는 감각이 좋았어요. 그래서 야반도주라는 단어를 쓰게 됐는데 훌쩍 떠나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에 들어요.여행지에서의 희로애락이 담긴 공간,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블로그 메인화면 (사진 제공: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그 기록이 책으로 나왔더라고요. 어떻게 책을 쓰시게 된 건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저희 블로그를 보고 여러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재밌게 읽고 있는데 책으로 출간할 생각이 없냐고요. 선임이가 기록과 공유를 좋아했던지라 수락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굉장히 뿌듯하고 저희가 뭐라도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지만, 걱정도 많았어요. 세계여행을 다녀온 분들이 많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줄 만큼 체계적인 여행이 아니었기에 출간하는 게 맞을까 고민했었죠.

 

그렇게 많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인이 "선임아, 세상에 대단한 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마. 그냥 여행지에서 네가 느낀 감정과 경험, 그리고 어떤 선택에 대한 네 생각이 더 궁금할 거야.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써보는 건 어때?"라고 말해줬어요. 이 말이 확 와 닿아서 누군가에게는 궁금했던 이야기에 대한 답으로 간단하게 쓰자고 마음먹었어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블로그 글은 독자가 돈을 내지 않고도 마음에 들면 계속 읽을 수 있는데, 책이라는 것은 구매해서 읽어보는 것이잖아요? 독자 입장에서 돈이 아까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선임이도 그런 부담이 좀 있었고, 저희 이야기가 활자로 인쇄돼서 세상에 나온다는 부담이 커서 처음 계약해 놓고 몇 개월간 한 자도 쓰지 못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한 장도 못 쓰고 있으니까 출판사 편집자님이 원고를 일주일에 몇 번씩 온라인으로 먼저 발행해 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일정을 정한 뒤 한 편씩 일단 쓰고, 출판사에는 조금 더 써서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그렇게 한 편 한 편 쓰다 보니까 어느새 다 쓰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둘 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탈모가 왔을 정도였어요.

718일 동안의 여행 기록을 담은 책으로 작가가 된 김멋지와 위선임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책 집필이 약 2년간의 여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세계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여행을 통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물론 지금도 전부 알지는 못하겠지만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오해하고 있었어요. 저는 평소에 자유롭고, 예술적이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굉장히 현실적인 성격이었죠.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곳에 계속 서게 되면서 어느 순간 저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리고 저랑 너무나 성향이 다른 멋지가 있다 보니까 저 자신이 더 잘 보였던 것 같아요.

 

저는 재미있게 살아갈 방법을 스스로 찾은 것 같아요. 원래 게으른 성격이어서 주말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볼까 하다가도 막상 주말이면 귀찮아서 안 나가고, 친구랑 약속을 잡아도 날씨가 안 좋으면 약속을 취소할지 말지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았고, 선임이와 여러 활동을 같이한 덕분에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보게 되었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다 보니 가만히 있을 때보다 행동할 때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되었어요. 하루에도 많은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루가 만들어지는데, 여행 중에 스스로 주도하는 선택을 평소보다 많이 하다 보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꾸준히 삶을 기록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꾸준히 삶을 기록해 나가는 것은 제가 주로 해왔던 일인데, 이유는 타고난 '관종'이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웃음) 나만 볼 수 있는 성격의 글인 일기조차도 남들에게 보이고 피드백 받는 것을 좋아했던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기록 마니아로서의 성향이 컸죠.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 그로 인해 느낀 감정, 생각 등을 기록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지금의 일과 연결된 것 같아서 좋습니다.

하지만 기록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내려놓기'예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남기는 기록이다 보니 아무래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잘 포장하고 싶은 본능이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움츠러들어 기록하는 것을 자꾸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삶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이 생기잖아요. 기록을 한두 번 미루다 보면 또 다른 일에 묻히기도 하고,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이 휘발되어 기록하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잘 써야 한다는 부담, 잘 보이고 싶은 본능을 내려놓고 담백하게 그 즉시 간략하게라도 기록하려 노력합니다. 물론 저도 잘 안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요.

경험의 스노우볼 만들기: 작은 기회를 잡아서 그다음 도전으로

책을 낸 뒤 다양한 활동을 하시더라고요. 특히 JTBC 방송 작가 제의를 받으신 게 눈에 띄었어요.

출판 과정과 마찬가지로 <트래블러> PD님이 먼저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주셨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부터 여행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고 하시더라고요. PD님 역시 세계여행을 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내셨던, 여행을 사랑하는 분이에요. 언젠간 여행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저희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주신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PD님 취미가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보는 것이었고, 저희 블로그를 보면서 대리 만족도 하셨다고 해요. 블로그를 통해 제안해주신 글이 감동적이었는데, 2년 동안의 여행 과정을 상세히 알고 계셨고 여행이 끝나고 다른 곳에 취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만나보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2018년 2월에 JTBC PD님과 국장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이 없는 상황이라, 저희가 기획단에도 참가하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시작했죠.

 JTBC <트래블러> 구성작가로 입사하게 된 야반도주팀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방송 작가는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인데 부담이 되진 않으셨나요?

저희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PD님께서 많이 안심시켜주셨어요. 저희는 방송 작가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저희가 겪은 여행 이야기를 쓴 것과 같은 일을 하면 된다고요.

 

처음엔 방송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러자 국장님은 "담는 그릇이 다를 뿐이지 사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다 똑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희가 했던 일은 <트래블러>의 여행자의 감정선을 좀 더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역할이었어요.

 

아무래도 여행자의 마음을 저희가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여행 프로그램들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면, <트래블러>는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면의 이야기나 그 속의 감정까지 표현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래서 시청자분들께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사람의 여행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블로그와 책을 통해 정리한 것이 도움이 되었겠네요.

네. 여행할 때 항상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지는 않잖아요. PD님은 여행의 모든 순간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여행하며 느꼈던 커다란 감동이나 자잘했던 감정들까지 블로그를 통해 글로 정리하다 보니, 출연자의 심상이나 감정을 더 자세하게 집어 올려 표현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시청자들도 '아 저럴 때 나도 그랬지', '여행을 하면 저런 감정을 느끼지' 하고 공감해 주셨고요.

 

저희는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묻혀 있던 감정들을 꺼냈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숙소에서 일어나 밥을 먹고 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어떤 사건을 겪은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는 일의 반복이에요. 반복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풀어낼 수 있을지 블로그와 책을 통해 기획하고 발행한 것이 일할 때 도움이 되었죠.

 

어쩌면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과 전혀 다른 일이라고도 느껴졌을 것 같아요. 여행하고 책을 쓰던 일을 하다가 방송을 만드는 일, 그러니까 생각하지 못했던 종류의 일을 하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재밌어요.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힘들고요. 책을 쓰거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방식이나 매체가 다를 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 길이 점점 확장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회를 잘 연결한 것 같아요.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대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세계여행을 마친 후 새로운 일들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할까 말까 할 때는 무조건 해보자'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았어요. 경험한 적 없는 분야였기 때문에 다가오는 기회가 우리와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섣불리 머리로만 판단하려 하지 말고, 해보고 싶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면 일단 시도해 보고 그 후에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로 했어요. 덕분에 정말 다양한 기회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할까 말까 할 때는 무조건 해보자'는 자세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인가'로 자세를 변경했어요. 귀국 후 3년 동안 그간 해왔던 일들을 토대로 나름의 경험치와 나와 맞는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어요. 아울러 쉬지 않고 많은 일을 하면서 피로도가 증가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마주하는 다양한 기회와 들어오는 제안에는 꼭 해야 하는 일인지, 꼭 하고픈 일인지를 먼저 생각해봅니다. 과감히 고사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요.

 

두 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지 궁금해요.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도 진행하시나요?

저희에게는 계획하지 않는 삶이 계획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을 되는 대로 살고 방관하겠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생애 주기별 발달 과업에 치여서 살았다면 지금은 5년 후에, 10년 후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삶을 살자고 계획을 세웠어요. 그리고 <트래블러> 이후 당분간 일을 쉬고 취미생활로 할 만한 것을 알아보고 있어요.

가능성에 선을 그어 두지 않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가 계획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겠다', '어떤 식으로 살고 싶다'이지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지금까지 하게 된 일들이 계획을 세웠던 것도, 예상했던 일도 아니에요. 그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거죠. 이전에 없던 제안이 오더라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부딪혔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더 새로운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경험에 계속 도전하는 야반도주팀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만약 저희가 특정한 무엇이 되고 싶어서 한계를 정했으면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저희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다 열어놓고 눈앞에 있는 것을 재밌게 하면서 살 것 같아요. 그것이 무언가를 새롭게 해 나가는 우리만의 방식이 된 것 같아요.

월간서른's Comment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라는 것이 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다음 경험을 시작하는 힘을 주고, 그 경험이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할 기회를 준다.

야반도주팀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고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새로운 영역의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경험은 산발적인 경험의 산술적인 합이 아니라, 지름을 키워가는 경험의 눈덩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