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유튜브는 기존 매체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이 됐다. 배우 신세경, 개그맨 이수근, 가수 홍진영, 걸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보미와 같이 기성 언론 매체에서 활동하던 유명인을 비롯해, 유시민, 홍준표 등 정치인까지 유튜브에 계정을 만들어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 중이다.

 

자신만의 세계와 내러티브를 구축 중인 유명인 유튜버들은 어떠한 전략과 스타일로 세력을 넓히고 있을까? 이들 중 새로운 매체 환경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해 왕좌를 점하게 될 자는 누구일까.

  • EDITOR 이경진

원조 아이돌 리더의 유튜브 생존기

'연예인 누가 유튜브를 한다더라'는 얘기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특히나 주인공이 아이돌 그룹 멤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옛날 팬들이 VHS로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뜨던 시절에도 이미 아이돌 그룹은 꾸준히 셀프 카메라를 찍어왔다.

 

팬들이 알아서 '짤'을 생성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 허브로 '셀프 카메라'만 한 게 없다. 이런 일상의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멤버의 캐릭터가 정해지고,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 콘텐츠가 유튜브로 옮겨갔다는 건 그래서 대단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친근하게 보여주는 브이로그 형태의 유튜브 콘텐츠는 아이돌 그룹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다.

 

이들이 유튜브로 넘어와 발생하는 가장 큰 변화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연예인 자신이라는 점,
더 나아가 촬영하고 편집을 하는 등 세부 작업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DIY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2018년의 마지막 날, 1990년대 아이돌 그룹 신화의 에릭이 '아구 티비(AGU TV)'를 유튜브에 개설했다. 에릭이 론칭한 아구 티비는 아이돌 출신 연예인이 운영하는 채널로서는 꽤나 진한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에릭이 직접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해 음악과 자막까지 입힌다. 에릭의 콘텐츠는 단순히 '연예인 DIY 콘텐츠'보다 조금 더 나아간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준다.

 

아마 '신화창조' 출신이라면 다들 알 텐데, 에릭은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집요한 남자다. '게임 하듯 재미있게 유튜브 채널을 해보겠다'라며 '그냥 설렁설렁 해보는 것'처럼 공표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음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20년 넘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촬영되어온' 바이브는 어디 안 간다.

 

* 최적화 황금빛 카레라면 레시피 ©agu TV eric

 

에릭은 화면상에서 효과적인 동선을 연출하고 편집하며 그에 맞게 색감을 보정하고, 힙한 음악까지 깐다. 영상 편집 일로 먹고산다는 한 팬이 조심스레 남긴 장비 추천 댓글에 에릭은 '핀마이크와 앱은 뭘 사용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짐벌 브랜드는 무엇인지'를 무심하게 대댓글로 달았다. 엄청난 준비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초반에는 <삼시세끼> 시리즈에 출연해 요리왕 에릭의 면모를 보여줬던 그답게 최적화된 라면과 짜장라면 레시피, 마트에서 장보기, 업무 회의하기, 아차산 등반 같은 일상적인 내용을 보여줬다. 하지만 '본인 팬미팅 티케팅 해보기'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획도 눈에 띈다. 앵글과 카메라 워킹도 점차 다양하고 대담해진다.

 

사실 그의 오랜 팬들에게는 10분 내내 얼굴만 보여줘도 '콘텐츠'가 될 테지만, 에릭은 단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웰메이드 콘텐츠'를 추구한다. 스마트폰만 하나 쥐어주면 뭐든지 다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 유튜버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팬들의 '좋아요'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완성해낼 줄 아는 뚝심과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참고로 '아구 티비'의 '아구'는 "아구찜. 아구아구 그래쪄? 아구창의 아구"라고 에릭이 대댓글로 밝혔다. 그런 이상함조차 너무 에릭 같아서 아구 티비의 앞날을 응원하게 된다.

  • WORDS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매력적인 서사와 세계관으로 승부하라

먼저 BTS 이야기부터 해보자. BTS가 전 세계적인 팝스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로는 몇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유튜브다.

 

유튜브 국내 이용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을 때부터, 더 정확히는 10대를 제외한 연령대가 유튜브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때부터 BTS는 유튜브에 자체 제작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방탄 밤' 같은 멤버들의 활동 비하인드 영상은 팬들의 유입을 돕고 이탈을 막는 '떡밥'이자 서사의 한 축이 되었고, 그렇게 쌓인 서사는 앨범으로 제작된 또 다른 서사와 만나 BTS 세계관이라는 아주 큰 틀을 만들었다.

 

* BANGTAN BOMB - BTS EXHIBITION ©BANGTANTV

 

모든 아이돌 그룹에게는 코어 팬덤이 존재한다지만 BTS 팬클럽 아미(ARMY)의 결속력과 충성도는 기이할 정도로 높다.* 아마 같은 세계, 같은 틀 안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 유난히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 관련 리포트: 맥락을 수용하는 집단을 해석하라 (PUBLY, 2018.9)

 

BTS의 전략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유명인은 뜬금없게도 강사 출신 김미경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름을 내건 강연 쇼까지 진행하다 석사 학위 논문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잠시 모습을 감추는가 싶더니, 자신이 어떻게 좌절을 극복했는지까지 서사의 일부로 포장해 유튜브로 돌아왔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름은 MKTV, 즉 미경TV다. 구독자만 약 52만 명에 이르는 이 채널은 2019년 1월을 기점으로 '유튜브 대학'이 되었다. 김미경은 이곳의 '학장님'이자 친근한 '미경 언니'로 불린다. 놀랍게도 이 대학은 공식 입학식까지 열었는데, 1천3백여 명의 수강생이 참석했다.

 

* 북드라마 - The Alchemist ©김미경 TV

 

송은이와 김숙이 만드는 VIVO TV가 유튜브판 예능 전문 채널이라면, MKTV는 유튜브판 방송대학 채널이다. 꿈과 돈에 대해 공부하는 '드림머니', 매주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북드라마' '인간관계 대화법' 등이 정규 과정으로 편성돼 있다. 혜민 스님 같은 유명인을 초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지식보다는 일상생활의 팁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어쨌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곳'이라는 채널의 정체성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MKTV에 공개된 콘텐츠는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반면, 등록금을 아주 약간 낸 수강생들만이 '김미경 캠퍼스'라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다.

콘텐츠를 쌓아
서사와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을 모으고
충성도를 높이는 일,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스타와 소비자를 잇는 플랫폼으로서 TV는 매력을 잃은 지 오래고, 이제 소비자는 더욱 친근한 스타를 원한다. 유명인이 개인으로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 놀랄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누가 더 '#소통'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매력적인 서사와 세계관을 만들어내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 EDITOR 황효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