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Position)와 욕구(Interest)의 차이

무더운 여름 토요일 오후 2시, 대학 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A에게 손님이 다가와 묻는다.

냉장고에 포카리스웨트가 없네요. 혹시 다 떨어졌나요?

땀을 비 오듯 쏟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A는 '아차' 싶었다. 오늘 교내 길거리 농구 대회가 있는 날이라 오전에 포카리스웨트는 이미 다 팔렸다. 잠시 당황한 A는 재빨리 말을 이어간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오늘 오전에 다 나가버렸네요. 혹시 스포츠 음료를 찾으시면 이쪽에 시원한 게토레이와 파워에이드가 있습니다. 지금 게토레이는 2+1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은 그제야 다시 냉장고로 가서 게토레이 3병을 가지고 계산대로 온다.

 

협상학에서는 협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Position'과 'Interest'를 강조한다. 'Position'은 겉으로 표현된 요구를 의미하고 'Interest'는 충족되길 바라는 내면적 욕구를 의미한다.

 

위의 사례에서 A는 고객의 요구 사항이 포카리스웨트였지만 고객의 욕구는 '갈증 해소'라는 점을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거기에 더해 게토레이는 현재 2+1 행사를 하고 있음을 언급하여 추가적인 구매까지 이끌어냈다.

 

협상학에서는 요구와 욕구를 빙산에 비유하기도 한다. 즉, 수면 위로 드러나는 빙산의 일각인 요구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감춰진 거대한 몸체인 욕구를 파악하여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드러나 있는 빙산의 일각인 요구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감춰진 거대한 몸체인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자료: 류재언 / 그래픽: PUBLY)

숨은 욕구를 공략하라

은퇴를 앞둔 아버님의 요청으로 노후 생활을 위한 재무 설계를 해드리러 아버님을 찾아뵙게 된 재무 설계사 A. 아버님께서는 집안의 재무 상황을 A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라고 어머님에게 이야기하시는데 어머님께서는 남에게 재무 설계를 맡기지 않겠다고 고집하신다.

 

당황한 아버님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러니깐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지. 이런 건 전문가한테 맡겨야 해. 빨리 통장 들고 오고 보험증서도 전부 가지고 와"라고 말한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어머님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 그때 재무 설계사 A가 아버님께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린다.

아버님이 잘 몰라서 그러세요. 아버님처럼 평생 직장생활 하시면서 자녀 3명 전부 대학 졸업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다 보내면서도 이렇게 잘살고 계신 건 그동안 어머님께서 악착같이 절약하시고 저축하셔서 가능했던 거예요. 아버님은 어머님께 진심으로 고마워하셔야 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30여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런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셨던 어머님은 한동안 아무런 말 없이 눈물을 훔치셨다. 그렇게 10여 분이 지난 후, 어머님은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협상의 고수들은 상대가 가진 숨은 욕구(Hidden Interest)를 파악하고 이를 자극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거래 조건들과 직접 연관되는 요구나 욕구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서 당사자들을 움직이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는 숨은 욕구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위 사례에서 재무 설계사 A는 어머님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 어머님의 마음을 열고 소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어머님은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과 살면서 켜켜이 서러움이 쌓여왔었는데, 이를 알아차린 A가 '어머님 덕분에 이렇게 잘살아 오실 수 있었으니 고마워하셔야 한다'고 인정해드리자 어머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숨은 욕구가 충족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동료들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이를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어 하고, 끊임없이 이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협상 첫 5분, 반드시 충족시켜줘야 하는 상대방의 욕구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SNS 공간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나는데, 문유석 판사는 그의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SNS 공간을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치열한 인정 투쟁을 벌이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다른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식욕, 수면욕 등 인간의 다른 욕구와 다른 점은, 결코 스스로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인정은 상대방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인정에 목말라 한다.

 

둘째, 아무리 인정해줘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아무런 비용 없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고, 전반적인 협상의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한국인들은 유독 인정에 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정해준다고 손해 보는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셋째, 상호성의 원칙이 적용된다. 제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 사람의 단점부터 찾는다. 반대로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라도 먼저 인정해주면 상대방은 그 사람의 장점부터 바라본다. 인정에 있어 적용되는 원칙이 바로 상호성의 원칙이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먼저 본인이 상대방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협상의 고수들은 협상할 때 상대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잘 공략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조금만 고민해보면 상대를 인정해줄 수 있는 말은 의외로 너무나 많다.

  • 항상 전화기 너머로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직접 뵈니 더 신뢰가 갑니다.
  •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업계에서 일 잘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시더군요.
  • 지난주에 메일로 금일 미팅 안건을 사전에 공유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오프닝을 인정으로 시작하면, 상대방은 정서적인 만족감과 함께 본인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협상 초반의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결국 협상 결과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협상 첫 5분, 오프닝을 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권한다.

60초 협상 전략: 트럼프는 어떤 유형의 협상가인가

협상에 나서는 사람들의 유형을 분석해보면 크게 4가지의 유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데이비드 메릴(David W Merrill)과 로저 리드(Roger Reid)의 '성격 유형 분류Social Styles Matrix'

 

성과 주도형(Driver)

성과 주도형은 결과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저돌적이고 민첩하게 행동한다. 또 효율성을 중시하며 표현 방식이 직설적이고 사무적이라 목표의 효율적 달성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과는 마찰도 주저하지 않는다

 

영향력 표출형(Expressive)

영향력 표출형은 적극적이고 감정 표현이 자유로우며 자기 생각이나 포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유쾌하고 사교적인 성향으로 협력적이며 영향력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의사결정 시에는 다소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 분석형(Analytical)

정보 분석형은 신중하고 논리적이며 의사결정 시 정보와 데이터, 확률을 중시하고 일 처리가 깔끔하다. 감정 표현이 많지는 않아 친해지기가 다소 힘들지만, 진중하고 허투루 하는 말이 없어 장기적으로는 신뢰가 가는 스타일이다.

 

관계 배려형(Amiable)

관계 배려형은 대인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협력적이다. 성과보다는 관계를 중시하여 목표 달성을 할 때도 개인적인 유대관계부터 쌓은 후에 업무를 진행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선택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지인들의 조언을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협상에 나서는 사람들의 네 가지 유형 (자료: 류재언 / 그래픽: PUBLY)

 

도널드 트럼프는 어떤 유형의 협상가일까? 언론에 비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영향력 표출형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협상 방식과 행동 패턴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전형적인 성과 주도형 협상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부동산 사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비즈니스맨으로서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rump: The Art of the Deal)>에서 "나는 생각한 바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표현하고 있고, 또 다른 저서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간결하고 신속하고 곧장 요점을 찔러주도록 하라. 간결하게 한다는 것은 예절 바른 일이다"라고 언급하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극단적 효율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성과 주도형 협상 스타일은 대통령 당선 후에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외교를 함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이에 반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국가들과도 언제든지 거리를 두고 공격 태세를 갖춘다.

 

반대로 수십 년간 적대적 관계였더라도 정치적・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면 가장 먼저 다가와 웃으며 악수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한국 정부는 그를 상대하거나 그와 공조하여 협상할 때 그의 협상 유형을 인지하고 협상 습관, 협상 스킬, 협상 전략 등을 분석하여 철저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유형의 협상가인가? 본인의 유형을 우선 파악하고 상대방의 유형을 파악한 뒤 이에 맞는 협상 전략을 준비하여 협상 테이블에 들어선다면,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킬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