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는 다시 온다

그리고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 <새번역 성경>, 구약 사사기 2장 10절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을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살다가 전쟁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신에게 용서를 구하면, 신이 그 용서를 받아들여 그들을 어려움에서 구해낸다. 이 과정을 겪은 세대가 죽고 그 아래 세대가 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오던 신을 다시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살다가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한다. 그러자 다시 용서를 구하고 구원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금융위기 역시 인간사에서 지속해서 반복됐다. 근대 이후만 봐도 그렇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 18세기 영국의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 주식 버블 붕괴, 19세기 말 장기 불황(The Long Depression), 20세기 초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등 셀 수 없이 많은 금융위기가 계속 발생했고, 그 연장 선상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The Great Recession)가 있다. 미래에도 금융위기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고대인들이 신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금융위기를 잊는다

위기가 발생한 당대에는 상식으로 통하던 금융위기 예방책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규제 완화를 이유로, 혹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경제 주체들의 요구로 효력을 잃곤 한다. 그래서 버냉키, 가이트너, 폴슨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적은 망각이다. 금융위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짐에 따라 보호 장치를 없애 버리려는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What we need to fight the next financial crisis (The New York Times, 2018.9.7)

 

하지만 저항은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비망록은 서가(書架) 한편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2018년 5월 24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을 지정하는 기준을 자산 500억 달러에서 25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도드-프랭크법의 개정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를 위해 만든 도드-프랭크법의 일부 규제가 완화된 것이다.*

* 관련 기사: 금융규제 크게 완화된다 (미주중앙일보, 2018.5.24)

©Marina Linchevska/Shutterstock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금융위기를 병에 비유하자면, 예방접종으로 피할 수 있는 결핵이나 홍역이 아니다. 금융위기는 독감이다. 끊임없이 변종이 생기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근본적인 예방이 불가능하다. 변종 금융위기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상상 밖의 경로를 통해서 경제를 침체로 이끈다.

결국, 미국의 위기는 대부분 상상력의 실패였다. 모든 위기가 그러하다. (중략) 우리는 전국적인 주택 가격의 하락이 금융의 패닉을 일으켜 경제 전반을 침체시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가이트너, p. 600

챕터8에서 일부 언급한 바와 같이, JP모건 등 금융기관은 다음 위기의 도화선(trigger)으로 ETF와 같은 패시브 펀드 비중의 지나친 확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CLO)과 같은 신종 파생상품, 학자금 대출의 부실화 등을 지목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은 정부와 연준 등 금융감독 당국이 원인 파악과 해결에 적극 나설 경우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은 "예상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진행된 수많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금융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지 어느 정도 답도 이미 도출되어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대응할지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다.

* 2017년 신년사에서 나온 말

 

따라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 미래에 미칠 영향을 추정하기 쉽지 않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가격의 버블 생성과 급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핀테크는 금융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만드는 새로운 서비스이지만,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위기는 바로
부지(不知)의 영역에서 발흥한다
물론 새롭지 않은 것도 새로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새롭지 않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것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채권으로 바꾸는 금융기법인 '유동화'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유동화를 만나 채권으로 바뀌고, 트렌치 기법(Tranching)을 만나 그토록 위험한 기초자산(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AAA 채권이 탄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기적이 세계 경제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금융 전문가의 예언도 이런 곳을 밝히지는 못했다.

금융위기에 대비하는 법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느냐'이다. 버냉키, 가이트너, 폴슨은 위기를 다룰 권한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나, 권한보다 앞서는 것은 그 권한을 사용할 사람이다.

금융위기 대비의 정석은
준비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응을 평생의 과제로 연구한 사람이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이었고(벤 버냉키), 전 세계의 금융위기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다루어 본 사람과(티모시 가이트너), 상대방을 설득하여 큰 거래를 성사시키는 딜 메이커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헨리 폴슨)이 재무부 장관이었다.

 

또한, 금융에 밝지 못한 서민의 입장에 서서 대형 은행에 끝까지 맞서 싸우던 사람이 의회감독패널(COP)에 있었고(엘리자베스 워런), 금융기관의 규모가 크든 작든 경영을 잘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념이 있던 사람(실라 베어)이 서민의 예금을 지키는 기관의 수장이었다. 만약 새로운 금융위기가 찾아온다면, 쉽게 벗어날 수 있느냐 아니냐도 결국 '그때 그 자리'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앞서 우리는 해결사들 간에 있었던 생각의 차이와 행동의 대립을 사안별로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비상사태 와중에 생각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은 고역이며, 이런저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좋게 해석하면 나와 대립하는 상대의 시선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될 수 있다. 대립 덕분에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 자금 7000억 달러의 집행 과정과 금융개혁법의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입장이 반영될 수 있었다.

2008년 9월, 미국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지만(On the brink*), 행동할 수 있는 용기(Courage to act)를 가지고, 정교한 위기 판단 기준을 만들어(Stress Test), 금융위기의 심장부를 향해 정면돌파(Bull by the horns)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갖춘 사람들이 정부에 포진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도 이러한 사람들이 그때, 그 자리에 있다면, 그들이 쓸 미래의 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기록될 것이다.

* 헨리 폴슨 전 재무부 장관의 글로벌 금융위기 회고록 제목. 회고록이 지닌 형식적 문제로 본 리포트에서는 주요한 참고 문헌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이번 위기는 나쁘기는 했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진행되지는 않았고, 이전의 역사적인 양상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 가이트너, p. 616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 또는 있지 말아야 할 인물이 그 자리에 있을 때 위기가 온다면, 우리 역사에는 새로운 '국가 부도의 날'이 쓰일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과연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을까. 이에 따라 다가올 위기의 결과는 '찻잔 속 폭풍'이 되거나, '퍼펙트 스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