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위 투자은행의 몰락

장면 하나, 2008년 9월 12일 금요일

금요일 저녁까지 현금 잔액은 20억 달러만이 남았다. 우리가 주말에 인수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월요일에는 시체를 맞이하게 될 참이었다.*

- 가이트너, p. 216

* 티모시 가이트너가 부도 위기에 처한 리먼의 현금 부족을 걱정하며 한 말

이날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주식의 종가는 3.65달러로, 전날 대비 13.5%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64.05달러를 기록한 2008년 1월 31일과 비교해보면, 자그마치 94% 하락한 가격이었다.

 

면화 중개업을 하던 헨리(Henry) 리먼, 이매뉴얼(Emanuel) 리먼, 메이어(Mayer) 리먼 3형제에 의해 1850년에 설립된 리먼브라더스는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메릴린치(Merrill Lynch)에 이은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주택시장 버블 시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주택 관련 자산을 과하게 보유하고 있던 리먼브라더스는 주택 버블 붕괴로 보유 자산의 가치가 급락하자 인공호흡기에 목숨을 부지한 중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먼브라더스 뉴욕 본사 ©David Shankbone

리먼은 그간 영국 HSBC, 중국 중신증권(中信證券), 중동 국부펀드 등에 자신의 지분을 팔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중에는 한국산업은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9월 10일 산업은행마저 리먼 지분 인수 의사를 공식 철회하면서, 남은 곳은 소매금융의 강자였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영국 금융기관 바클레이즈(Barclays)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정부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지원 없이는 만신창이가 된 중환자를 맡지 않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에 수십억 달러 이상을 거래하는 158년 역사의 거대 투자은행의 유동성(현금)은 이제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