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북페어를 이끌다

세계 100여 개국에서 온 참가자 7500명, 28만 5000명의 방문객과 4000개의 행사, 그리고 1만 명의 저널리스트까지.

 

- 숫자로 보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Facts and Figures about Frankfurter Buchmesse)

세계에서 가장 큰 책 박람회,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독일이 매년 세계 최대의 북페어를 이끌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정부 지원? 혹은 스폰서? 둘 다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독일 출판산업 스스로의 역량으로 매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페어의 규모와 이를 운영하는 힘은 곧 독일 출판산업과 그 산업계를 이끄는 '독일 출판서점협회'의 규모와 힘을 의미한다.

안정적 시장과 변화의 동력을 가진 독일 출판

우리는 도전적인 상황에 있을 뿐, 위기가 아닙니다.

 

- 토마스 코흐(Thomas Koch), 독일 출판서점협회 언론 대변인

독일 출판산업은 정말 위기가 아닐까? 독일 출판산업의 현황부터 살펴보자. 독일 출판서점협회는 매년 '숫자로 보는 책과 출판산업' 보고서를 통해 독일 출판업계의 현황을 자세히 분석한다. 본 리포트에서 소개할 자료는 2017년까지의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로, 2018년 8월에 발행되었다.

 

'2017년 자료라니 너무 오래된 통계 아닌가?'라는 생각은 말자. 2017년의 통계 자료가 분야별, 항목별로 자세히 발행되는 일은 독일에서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독일 출판서점협회가 일을 열심히, 그리고 발 빠르게 해내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출처: Buch und Buchhandel in Zahlen 2018

세계 최대 북페어를 이끌다

세계 100여 개국에서 온 참가자 7500명, 28만 5000명의 방문객과 4000개의 행사, 그리고 1만 명의 저널리스트까지.

 

- 숫자로 보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Facts and Figures about Frankfurter Buchmesse)

세계에서 가장 큰 책 박람회,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독일이 매년 세계 최대의 북페어를 이끌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정부 지원? 혹은 스폰서? 둘 다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독일 출판산업 스스로의 역량으로 매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페어의 규모와 이를 운영하는 힘은 곧 독일 출판산업과 그 산업계를 이끄는 '독일 출판서점협회'의 규모와 힘을 의미한다.

안정적 시장과 변화의 동력을 가진 독일 출판

우리는 도전적인 상황에 있을 뿐, 위기가 아닙니다.

 

- 토마스 코흐(Thomas Koch), 독일 출판서점협회 언론 대변인

독일 출판산업은 정말 위기가 아닐까? 독일 출판산업의 현황부터 살펴보자. 독일 출판서점협회는 매년 '숫자로 보는 책과 출판산업' 보고서를 통해 독일 출판업계의 현황을 자세히 분석한다. 본 리포트에서 소개할 자료는 2017년까지의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로, 2018년 8월에 발행되었다.

 

'2017년 자료라니 너무 오래된 통계 아닌가?'라는 생각은 말자. 2017년의 통계 자료가 분야별, 항목별로 자세히 발행되는 일은 독일에서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독일 출판서점협회가 일을 열심히, 그리고 발 빠르게 해내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출처: Buch und Buchhandel in Zahlen 2018

2017년 독일 출판산업은 총매출액 91억 3100만 유로(한화 약 11조 6500억 원)를 달성했다. 이중 출판사의 매출액은 51억 6000만 유로(한화 약 6조 5700억 원) 정도로 집계되며, 나머지는 서점 등 유통업계와 기타 출판 관련 서비스업의 매출액이다. 총매출 규모는 2016년과 비교하여 1.6% 감소했고, 과거 5년간을 기준으로 보면 4050억, 5년간 4.2%가 줄었다. 적은 폭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출처: 독일 출판서점협회 자료 재구성

위 그래프는 독일 출판산업의 매출액 추이를 보여주는 데, 매년 새롭게 등장하는 주요 온라인 플랫폼의 탄생 시기도 함께 표시했다. 독일 출판계도 미디어 생태계 변화를 비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15년간 총매출액은 1%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출판업계는 이 '적은 하락 폭'에 주목했다.

새로운 플랫폼들의 공세 속에서
이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

즉, 선방했다는 이야기다. 급격한 디지털화와 다양한 매체의 출현 속에서도 독일 출판 산업은 안정적 시장을 바탕으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독일 출판산업의 자신감은 유통채널별, 장르별, 출판사별 현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18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전경 ⓒ이유진

유통채널별 현황: 여전히 오프라인

독일 출판산업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은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에서 나오고 있다. 2017년 독일 전체 출판산업 매출액의 약 47.1%가 오프라인 서점에서 발생했다. 매년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지키고 있다. 아마존, 인터넷 서점 등 배송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채널은 20.2%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점은 출판사의 직접 거래 방식이다. 출판사의 직접 거래로 발생한 매출액은 전체 매출의 21.3%로, 인터넷 거래에서 나오는 매출액보다 높다. 이는 출판사가 기업이나 기관과 거래한 것으로, 대부분 학술 및 전문 서적 분야라고 협회는 분석한다.

 

장르별 현황: 실용서의 인기와 학술서의 꾸준한 강세

장르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문학, 아동·청소년, 실용서 순이다. 문학 장르가 31.9%로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아동·청소년 도서는 16.3%, 실용서는 14.3%를 점유한다. 실용서는 자기계발서뿐만 아니라 요리책 등 취미 분야 책도 포함한다.

 

실용서 분야는 지난 2년간 점유율이 조금 감소했다. 독일 사회에 불었던 채식과 건강식 트렌드가 조금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리 분야의 점유율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를 대체할만한 거대한 트렌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술·전문 서적과 교육서도 각각 10.9%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독일에서 학술 서적의 강세는 북페어를 포함해, 현지 서점과 대학 도서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사회과학 분야에 한정되어 살펴보긴 했지만 도서관에 갖춰진 전공 서적이 많지 않았고 품질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제본한 서적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일에서 다시 대학 도서관을 찾았을 때 양질의 전공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여러 독일 출판사가 출간한 전공 서적은 고르기 힘들 정도로 다양했고 학생들의 수요가 높은 서적의 경우, 같은 책이 책장 한 면을 모두 채울 만큼 많이 갖춰져 있었다. 동네서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문서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독일의 출판사 현황을 보면 전문 서적 출판사의 강세가 더욱 확실히 다가온다.


출판사별 현황: 학술 출판사의 안정적 매출

독일에는 3000여 개의 출판사가 있다. 이들 출판사가 2017년 출간한 도서는 총 7만 2499종. 그중 1만 496권은 외서를 독일어로 옮겨 출간한 번역서다.

출처: Buchreport magazin April 2018

2017년 기준 독일 출판사의 매출액은 51억 6000만 유로(한화 약 6조 5700억 원)였는데 이중 절반이 학술·전문 서적 출판사의 매출로 집계됐다. 매출액 기준으로 상위 10개의 출판사 역시 대부분 학술·전문 및 교육 서적 출판사다. 문학 출판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는 환경이 다르다.

 

현황별 지표는 독일 출판업계의 안정적인 시장 환경을 요소별로 보여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 출판계는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력을 꾸준히 발휘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2018년 독일 출판업계가 주목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사는 사람이 줄어든다

처음 독일에 발을 디뎠을 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6년 전 지하철에는 책에 몰두하는 사람이 6명, 휴대폰을 보는 사람은 3명이었다. 2019년을 바라보는 겨울의 지하철 풍경은 어떨까? 2명은 책을 들고, 2명은 이북(e-book)으로 책을 읽는다. 그 외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본다.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페이스북을 하는 이들도 많다. 두 장면을 비교해보면 독일의 변화가 느껴진다.

 

2018년 독일 출판업계가 주목한 가장 큰 이슈 역시 책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017년 중반 독일 출판서점협회는 이에 관한 심층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2018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주요한 토론 주제 중 하나로 다루었다.

북페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책 읽는 사람들 ⓒ이유진

독일 출판서점협회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독일 출판시장은 650만 명에 이르는 소비자를 잃었다. 5년 전 책을 구매한 소비자는 3600만 명이었으나, 2017년에는 2960만 명만이 한 권의 책을 구매했다. 14세 이상 독일 인구 10명 중 5.8명이 1년에 최소 한 권을 구매한 셈이다. 이 중 4.1명은 최소 3권 이상을 샀고, 그중 1.1명은 최소 10권 이상을 샀다.

 

독일에서 책을 사서 보는 사람은 2017년 한 해 평균 12.4권을 구매했다. 책을 사는데 쓰는 비용은 일 년에 137.4유로(한화 약 17만 5000원)로 집계됐다. 5년 전에는 1인당 연평균 11권을 구매했다. 책을 사는 사람들은 늘, 그리고 더 많이 산다는 이야기다. 책 평균 가격도 11.08유로로, 그전 해의 10.56유로보다 조금 올랐다.

 

책을 사는 사람은 줄었지만, 독일 출판산업 전체 매출액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 명의 책 소비자가 여러 권의 책을 구매하기 때문에, 당장 업계의 총매출액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독일 출판업계가 이 현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 문화를 분석하여,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것

매출액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통채널 분석이나 단기적인 출판사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반을 둘러싼 독서 문화와 그 변화 추세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독일 출판업계의 시각 때문이다.

 

독일 출판서점협회는 책 소비자가 줄어드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첫째,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 확대와 넷플릭스 등 새로운 멀티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은 명백한 변화의 흐름이다. 독일 출판산업은 특히, 최근 공격적으로 성장하는 넷플릭스를 주요 행위자로 분석한다.

 

넷플릭스의 선전은 일상에서 더욱 와 닿는다. 그간 독일 드라마는 재미없기로 유명했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 드라마를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독일 친구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국민 수사물이라 불리는 <범죄 현장(Tatort)>을 추천하곤 했다. "범죄물이라 그렇게 유용한 표현은 없을 거야…"라는 자신 없는 마무리와 함께.

 

넷플릭스가 등장하고 나서는 반응이 전혀 달라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독일어 드라마, <다크(Dark)>가 나왔을 때는 묻기도 전에 먼저 이야기가 나왔다. 독일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독일어 자막이나 더빙이 더해진 프로그램이 많아, 넷플릭스 콘텐츠는 독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엔터테인먼트 화두로 자주 언급된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넷플릭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넷플릭스 아이디에 자리 하나 남으면 끼워달라고 말하며 친구가 된다. "지금 뭐 해?"라는 질문에 "넷플릭스 보고 있다"는 답을 들을 때가 많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독서를 대체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영상 추천 기능으로 회원들의 지속적 시청을 유도하고, 최대 4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운용하며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모여 넷플릭스를 보고 대화하도록 유도한다. 넷플릭스 시청이 '힙'한 효과부터 '빈지 워칭*'이라는 새로운 기능까지 포괄하는 가운데, 독서는 넷플릭스가 수행하는 편리함과 유연함, 사회적 활동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 방송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따위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일 (출처: 국립국어원)

 

* 빈지 워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넷플릭스의 영상 ⓒNetflix

 

둘째, 책은 공공의 담론장은 물론 사적 영역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더는 관계의 매개이자 대화의 주제가 아닌 셈이다. 책이 담당했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지금은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맡는다. 독서를 하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과 마찬가지다.

 

'비 독서자'도 테이블에서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활발한 대화를 위해 혹은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던 민망함에서 벗어나고자 책을 사러 가는 일도 줄었다.


셋째, 출판업계가 독자들에게 충분한 안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책의 주제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느끼거나, 넘쳐나는 책 사이에서 부담감을 느낀다. 과거보다 작가에 대한 친숙함이 줄어든 상황에서 독자에게 다음 읽을 책을 찾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독일 출판시장은 기회를 찾는다

소셜 미디어의 확장과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독서 행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셜 미디어의 자극성과 선동성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책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정서적 경험, 영감을 갈망한다.

 

독일 출판서점협회는 이 같은 '디지털 종속'이 역으로 '독서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고 분석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판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단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고, 독서 문화를 분석하여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이유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가 사회·정치적 테마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협회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더 자주, 더 많이 책을 인식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담론을 생성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신속히 찾을 수 있도록 믿을만한 안내를 제공하는 일, 즉 북 큐레이팅도 강조한다. 책의 분야와 카테고리를 세분화하여 독자들이 읽고자 하는 책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시스템도 구축하고자 한다.

 

작가에게는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팁을 안내하기도 한다. 북페어 곳곳에서 작가들을 대상으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2018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의 핵심은 '위기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독일 출판계의 전략'이다. 새로운 플랫폼이 공격적인 확장세를 펼치는 국면에도 차분히 현황을 살피고, 한 발짝 나아갈 기회를 찾는 독일의 출판산업. 독일 출판업계를 대표하는 독일 출판서점협회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독일만의 전략을 자세히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