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늘 아래 서있을 당신이 웃을 수 있길

비행기는 옅은 구름 사이를 지나고 있다. 착륙 10분 전. 나는 지금 제주도에 다음 촬영을 위한 답사를 가는 길이다. 곧 구름이 걷히면 하늘에서 보는 제주도의 땅이 색색의 조각보처럼 오밀조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구름을 뚫고 나와 지상과 가까워지기 직전의 몇 분 남짓한 시간. 난 비행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초록과 검정과 흰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제주의 땅. 마늘이나 양배추를 심은 밭은 초록과 조금 더 짙은 초록으로, 중간중간 경작되지 않은 겨울의 땅은 습기를 머금은 짙은 갈색으로, 그 위의 한라산 능선은 눈 덮인 흰색으로 빛난다. 형형색색 사이를 검정 돌담이 구불거리며 유유히 지나간다. 멀리서 보면 웬만한 건 다 아름답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비행기 착륙 직전 하늘에서 바라보는 제주를 특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 진귀한 구경은 비행기가 바퀴를 내리고 활주로에 가까워지며 금방 끝이 난다. 황홀한 자연의 색 틈바구니로 도시와 활주로의 회색빛이 금세 스며든다. 잠깐의 사치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현실의 걱정이 빈자리를 채운다. 배차 걱정 스케줄 걱정 촬영 걱정 시청률 걱정부터 점심 메뉴 걱정까지. 걱정거리야 뭐 셀 수 없이 많다.

 

이쯤 되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황홀한 비현실의 시간은 늘 짧고 비루한 현실의 시간은 늘 끝이 보이지 않는 법. 하아. 이럴 때 생각난다. 5년 전 그때처럼. 잠시만이라도 도망갈 수는 없을까.

 

5년 전 이맘때, 나는 이름마저도 비현실적인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라는 동네를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눈 덮인 아이슬란드는 아름다웠지만 당시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1박 2일>이라는 큰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서 나는 다음 한 발을 어떻게 내딛을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바람은 두 가지였다. 피디라는 직업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회사 조직에 속한 직장인으로서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프로그램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면 낼수록 주변의 기대는 높아졌고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다보면 나를 갉아먹고 동료와 후배의 등골을 빼먹었다. 악순환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내내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해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이제 5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5년 전 나의 고민에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이직 후, 내가 제일 처음 만든 프로그램은 <꽃보다 할배>였다. 할아버지 넷과 짐꾼 한 명의 여행기. 시즌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