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와 운영 매니저를 거쳐 개발자로

김재환, 워크데이 엔지니어 
 

경영학 전공 후 워싱턴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우연히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가 실리콘밸리의 문화에 반해 연봉 50%를 깎고 스타트업에서 운영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업무를 자동화하려고 개발을 독학하다 개발자로 커리어를 전향했다. 현재 워크데이Workday*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 클라우드 기반의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그램 개발업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다"고 말하는 김재환 엔지니어에게 실리콘밸리에서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황수민(이하 생략) 실리콘밸리로 오게 된 계기는?

김재환(이하 생략) 대학을 졸업하고 컨설턴트로 2년간 일했다. 클라이언트가 주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엑셀로 모델을 만들었다. 2년 차 때부터 일이 편해져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회사 임원은 어떤 일을 하나 봤는데, 그들이 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샌프란시스코 출장길에 스퀘어Square*에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실리콘밸리의 자율적인 업무 문화에 충격받았고, '이런 곳에서 일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실리콘밸리로의 이직을 알아보다 운 좋게 후배를 통해 인스타카트 채용 담당자와 연락이 닿아 면접을 보게 되었다.

* 지급 시스템 개발업체  

 

인스타카트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인스타카트는 시리즈 CSeries C*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유망한 스타트업이었고 면접 담당자하고도 '케미'가 좋았다. 연봉을 50% 가까이 낮춰야 했지만 회사 전망과 팀원을 보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 실리콘밸리에서 VC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통상 첫 번째 투자를 시리즈 A, 두 번째 투자를 시리즈 B, 세 번째 투자를 시리즈 C라 말한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투자액이 크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좋았던 점은 시리즈 C 투자유치를 시작으로 회사의 많은 마일스톤을 함께 찍을 수 있었다는 거다. 반면 기대에 못 미친 점도 있었다. 스타트업이다보니 사내 프로세스가 안정적이지 못해 생각보다 수작업이 많았다. 또 실력에 상관없이 초기 멤버라는 이유로 리더의 자리에 앉는 그런 정치적인 부분도 있었다.

 

인스타카트에서 운영업무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사업지표를 모니터하고 리스크를 관리했다. 또 엔지니어가 짠 디스패칭dispatching* 알고리즘을 확인QA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인스타카트 서비스를 확장하는 일을 했다. 이 일에 SQL이 필요해 공부했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배운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만드는 스킬도 도움이 되었다.

* 멀티태스크 시스템에서 여러 개의 태스크가 하나의 CPU를 공유할 수 없으므로 우선순위에 따라 CPU를 배정하는 것

 

인스타카트에서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100시간이 걸리는 업무를 1~2시간짜리로 만든 일이다. 인스타카트를 새로운 지역에 론칭하기 전 운영 매니저가 하던 일이 있다. 해당 지역의 슈퍼마켓을 찾아 슈퍼마켓까지의 거리를 일일이 구글지도로 체크해 엑셀에 기입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구글지도에 주소를 넣어 거리를 재는 수작업을 해야 했다. ⓒGoogle maps동료와 저녁을 먹으며 이 업무의 비효율에 대해 이야기하다, 개발자에게 물어보니 파이썬 스크립트로 쉽게 자동화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동료와 파이썬을 배워 2~3주 후 스크립트를 완성했다. 운영팀 부사장에게 이 툴을 승인받아 인스타카트 운영팀이 사용하게 했다. 최근 인스타카트에 다니는 동료와 만났는데,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이걸 사용한다고 하더라.

 

한번 더 커리어를 전향했다. 그것도 개발자로.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도 개발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늦기 전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었다.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에게 짧은 시간에 코딩을 배우려면 한 가지 언어를 공략하는 게 나을 거란 조언을 얻어 코딩 부트캠프(이하 부트캠프)*인 해크리액터HackReactor에 입학했다. 부트캠프에 들어가려면 테스트에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3~4개월 정도는 회사를 다니며 혼자 코딩을 공부했다.

* 코딩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모든 스킬을 단기간 내 배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이곳에서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한 프로그래밍 프레임워크부터 서버 사이드server-side*를 포함한 프런트 엔드front end**, UI까지 '무에서 유'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배웠다. 커리큘럼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였는데, 대부분이 수업 이후 새벽 1시까지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집에 갔다.

* 서비스 요청자인 클라이언트가 아닌 서비스 자원 제공자인 서버 쪽에서 행하는 처리

**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영역. 즉, 사용자가 보는 화면을 말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14시간 정도를 13주 연속으로 캠프에서 보냈다. 재미는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부트캠프의 분위기가 실제 업무하는 환경과 비슷해 학업을 마칠 때에는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꾸는 것에 확신이 갔다.

 

경영학도다. 부트캠프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과 수업을 좋아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과 과목에 약해 커리큘럼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보았다. 6주 차에 중간고사를 보는데, 동기 35명 중 9명이 통과하지 못해 캠프에서 나가야 했다. 부트캠프에 들어가기만 하면 취업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공부량이 많다. 부트캠프 입학은 시작일 뿐이다.

 

부트캠프 이후 이직 과정은 어땠나?

비전공 개발자로서 취업은 '바위에 달걀 치기'였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력서 검토 단계에서 떨어지곤 했다. 하루에 세 시간은 이력서를 낸 회사의 직원과 링크드인으로 네트워킹하고, 세 시간은 프로그래밍을 독학하고, 세 시간은 인터뷰를 준비하는 식으로 석 달을 보냈다. 틈틈이 해커톤에도 나갔다. 경력을 쌓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했다. 결과적으로 세 회사의 제안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워크데이였다.

 

비전공 엔지니어로서 업무에 겪는 어려움이 있나?

업무를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이론을 이야기할 때 전공자에 비해 이해가 느릴 때가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스택 오버플로Stack Overflow*를 검색하거나, 시니어 개발자에게 물어본다.

* 개발자 커뮤니티

 

워크데이의 문화는 '팀이 실패하면 모두 실패한다'이다. 그만큼 협업을 중시한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런 문화가 비전공자 개발자로서 회사에 적응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김재환 님이 워크데이에서 만든 제품 ⓒWorkday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회사에서 많이 배우는 중이라 이직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러나 몇 년 뒤에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좀 더 다양한 업무를 하거나 아예 창업하고 싶다. 이직할 때마다 주변 친구들이 자기 필드에서 하나에 집중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본다. 정작 나는 자신을 시작 선으로 끌어오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굉장히 행복하다. 공대가 아닌 경영학을 전공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대신 다양한 커리어에 도전할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경영학도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보통은 커리어 개발 방향이 확실한 금융계나 컨설팅 관련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곳은 커리어 패스라는 개념을 깨버린다. 원하는 대로 능력도 키울 수 있고, 커리어를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지도 본인이 짤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파악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창업의 꿈을 품은 그로스 해커

박가영, 심플 해빗 그로스 해커  


2015년 5월, 보스턴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도, 비자도 없이 창업의 꿈만 가지고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이후 3년 동안 창업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다 블라인드Blind*를 거쳐 심플 해빗Simple Habit**의 초창기 멤버로 합류해 그로스 해커growth hacker*** 업무를 한다.
*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2015년 1월 실리콘밸리로 진출했다.
** 전문가의 지도에 따른 명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 마케팅팀과 프로덕트팀의 역할을 한다. 소셜미디어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 등을 이용해 사용자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업무 외에도 1주에 세 번은 블록체인 스터디를 이끌고, 2주에 한 번은 북클럽을 운영한다. 또 실리콘밸리 한인단체 베이 에어리어 K그룹Bay Area K Group 임원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 박가영을 모르면 간첩이다'는 말이 있다.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산물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박가영 그로스해커를 만났다. 스타트업과 실리콘밸리라는 커뮤니티에서 성장과 배움을 쫓아 치열하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수민(이하 생략)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유가 있나?

박가영(이하 생략) 열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돈을 벌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매와 직구로 옷을 저렴하게 사서 온라인으로 판매했는데, 장사가 잘되어서 '내가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일로 사업으로 돈도 벌고 재미있게 살아보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한국에서 열린 창업대회에도 참가했는데, 너무 재미있어 사업이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뱁슨 대학Babson College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교생이 모두 경영학을 전공하는 경영전문대학인데, 1학년 때부터 학교의 현장 수업을 통해 펀딩을 받아 창업을 진행한다. 나를 위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뱁슨 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실리콘밸리로 온 계기는?

익산에서 나고 자랐다. 나에게 익산은 좁은 곳이고 더 큰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미국에 가서도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사업을 하고 싶었기에 전 세계에서 난다긴다하는 창업가가 있는 실리콘밸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큰물'을 찾았다
실리콘밸리야말로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헤엄칠 수 있는
가장 '큰물'이 아닌가

2015년 여름에 실리콘밸리에 왔다. 어떤 일을 했는가.

대학에서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테스트해 볼 기회가 있었다. 어느 정도 사업성도 있었고, 실제 성과도 봤다. 약 1년 정도 사업을 진행했는데 결국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규제부터, 운영, 비자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일단 한 발짝 물러나 더 많은 준비가 되었을 때 준비된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취업에 대한 계획 없이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여러 창업가와 이야기를 해보니 규모가 작더라도 아이디어를 시장에 테스트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당시에는 취업에 대한 압박이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자 문제는 어떻게든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시도하다 취업을 선택했다. 블라인드에서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페이스북에서 사내 익명 게시판을 말도 없이 없앤 일이 있었다. 직원들이 난리가 났다. 그 소식을 빨리 접하게 되었고 페이스북의 익명 게시판 이름을 빌린 'Facebook Anon 2.0'이라는 카피로 마케팅을 했다. 이 광고로 페이스북이란 큰 회사에 블라인드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페이스북을 겨냥한 블라인드의 광고 ⓒBlind서비스 초반에는 익명이라는 점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와 우버의 임원이 '블라인드를 통해 애로사항을 전하라'라고 할 정도로 블라인드가 유명해졌다. 우버의 경우 스캔들*이 있었을 때 우버 직원이 블라인드를 하루에 평균 4시간이나 사용했다.

* 2017년 사내 성추행, 불법 프로그램 사용 등 잇단 스캔들에 우버 창업자이자 CEO가 회사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업무의 전환점은 블라인드에 있었다. 기존 핵심인원이 한국에 돌아가면서 사업을 키우는 책임과 권한이 나에게 주어졌다. 전에는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면 리딩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런데 심플 해빗으로 이직했다.

블라인드에서의 업무는 재미있었고, 좋은 성과를 이뤘다. 권한도 많아 회사에 애정도 많았다. 회사의 성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어 좋았으나 실리콘밸리에 온 만큼 현지 인재와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블라인드는 한국과 미국에 팀이 나뉘어 있다.

 

마침 그 시기에 심플 해빗 창업자 김윤하 대표에게 링크드인으로 연락이 왔다. 김윤하 대표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Y Combinator를 거친 심플 해빗에 대한 기사도 읽었었다. 커피 한잔하러 간 자리에서 블라인드에서 내가 느꼈던 갈증을 심플 해빗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했던 업무를 다른 방식과 범위scope에서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블라인드에서도 미국에서 함께 일할 동료를 믿은 것처럼, 명상에 대해선 몰랐지만, 창업 경험이 많은 김윤하 대표와 함께 하면 배우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플 해빗에서 그로스 업무를 담당한다.

하고 싶은 일이기보단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성장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업무가 꼭 필요하다.

 

지금 여러 가지 메시징과 마케팅 방식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람들은 명상 자체에 대한 메시징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대한 메시징에는 반응한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숙면에 도움이 되니 한번 들어보라'고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사람들이 겪는 수면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떤 문제를 명상을 통해 풀 수 있다는 해결책을 줄 때 뿌듯하다. 

 

명상 콘텐츠는 어떻게 만드나?

프로덕트팀, 마케팅팀, 콘텐츠팀이 손발을 맞춘다. 프로덕트팀은 이미 출시한 콘텐츠 중 반응이 좋은 걸 파악하고,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테스트한다. 마케팅팀에서는 어떤 콘텐츠를 사용한 광고가 가장 유입이 잘 되는지, 어떤 콘텐츠가 유료 고객을 유치했는지, 또 어떤 콘텐츠가 기존 고객에게 반응이 좋은지 분석한다. 콘텐츠팀 입장에서는 어떤 콘텐츠가 가장 높은 몰입도를 제공하고, 고객의 요청이 많은 콘텐츠를 분석한다. 그리고 명상 전문가에게 연락해 콘텐츠를 만든다.

 

이 세 팀이 싱크를 맞춰 명상 콘텐츠를 분석하고, 알리고, 만든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명상, 샤워 명상, 설거지 명상 등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명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 숙면을 위한 심플 해빗의 명상 콘텐츠 ⓒSimple Habit

 

꿈은 무엇인가?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내가 의미 있는 제안을 할 수 있게 특별한 역량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로스 업무일 수도 있고, 업무 외적으로 쌓는 다양한 경험일 수도 있다. 지금은 나만의 역량을 키우는 시기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좋은 사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고 믿는다.

 

문과생이어서 실리콘밸리에서 제약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무조건 프로그래밍을 해야한다는 큰 부담이 없어졌다. 개발자와 이야기하면서 배운 것은 프로그래밍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개발을 모르더라도 개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할 줄 알아야 한다. 유저가 원하는것, 담당자로서 내가 말하고 싶은 사항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영업, 마케팅, 운영이 개발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많다. 나 역시 그로스 업무를 시작한 이후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경영학도에게 조언한다면?  

인턴, 풀타임 등 수도 없이 지원하고 떨어졌지만, 결국은 살아남았다. 무책임하게 '일단 오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절실하면 어떤 일이든 찾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리콘밸리행을 결정한 것은 학기 중에 충동적으로 이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실리콘밸리의 CEO들에게 콜드메일coldmail*을 보냈다. 그중 몇몇을 만났는데, 이곳에서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번 실리콘밸리에 와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계속 거절당해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자존감과 끈기가 있으면 더더욱 좋다.

*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것. 보통 채용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는 등 자신을 어필하는 것을 말한다. 

회계사를 박차고 테크 스타트업 창업에 성공하다

문아련 님(왼쪽)과 황수민 저자(오른쪽) (이미지 제공: 황수민)

문아련, 굿타임 CEO 
 

삼성전자 미국 지사와 반도체 회사 프리스케일Freescale에서 4년 가까이 회계 업무를 했다.

워크데이의 김재환 엔지니어 와 마찬가지로 비효율적인 수작업을 자동화하다 프로그래밍에 빠졌다. 이후 사표를 내고 3년 동안 카페로 '출근'하며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기업의 스케줄링을 돕는 굿타임Goodtime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19명의 팀을 이끌고 있다. 2018년 여름에는 시리즈 A로 약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도 올렸다. 제약이 없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더 큰 팀을 꾸려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문아련 창업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황수민(이하 생략)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문아련(이하 생략) 1학년은 자율전공으로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2학년 때 전공을 고르는 대학을 다녔다. 친한 친구를 따라 회계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특별히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회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전공이 도움이 되지만 말이다.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프리스케일에서 매 분기 재고분석을 했다. 반도체 재고를 보고 영업팀과 재무팀이 계획한 수익 예측에 비교해 실제 팔린 양과 남은 양을 분석한다. 이 업무를 일일히 수작업했다.

 

세 명인 회계팀에서 두 명이 분기마다 한 달을 매달리는 프로젝트였는데, 꽤나 반복적인 일이어서 한 번 자동화해보자고 생각했다. 출근하기 전 두 시간, 퇴근하고 두 시간 동안 파이썬을 독학했다. 그렇게 이 일이 고작 4시간 안에 해결되는 일로 바뀌었다. 회계팀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지원 부서라고만 생각했는데, 프로그래밍으로 일의 효율을 높여 비용을 줄여준 것이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니저가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내가 만든 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CFO와 면담을 하게 되었고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회사를 떠날 거라고 말했다. 회계나 재무 일을 하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기회가 있으면 프로그래밍을 더 공부하고 싶은데, 반도체 회사에서 그런 업무를 배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퇴사해서 3년 동안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CFO는 너무 좋은 분이라 퇴사하던 날 문자로 인사를 해주었다.

 

어떻게 3년 동안 공부할 생각을 했나?

결혼 후 3년 동안 회사에 다니며 배우자가 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생활을 책임졌다. 남편이 프로덕트 매니저로 자리를 잡자, 나에게도 3년 동안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매일 같이 카페 4곳을 돌아다니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마치 붙박이 가구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에는 프로그래밍을 배워 어떻게 취직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냥 너무 재미있었다. 부트캠프는 생각을 안 했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배울 기회가 많았다.

 

독학이 쉽지만은 않다. 팁이 있다면?

우선 스탠퍼드 대학에서 제공하는 'Computer Science 101' 수업을 들었다. 전반적으로 컴퓨터 공학에 대해 이해한 뒤, iOS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고 앱을 만들었다. 스위프트Swift와 오브젝티브CObjectiveC*를 배웠다.

* 스위프트와 오브젝티브C는 iOS에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영어를 배울 때 문법만 공부하면 절대 실력이 늘지 않듯, 눈에 보이는 걸 만들어야 재미도 있고 배움의 속도도 빠르다. UI가 생기고, 색깔이 바뀌고, 기능function이 제 역할을 하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하루에 8시간을 해도 지겹지 않았다.

 

원래 이과적 성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수학을 잘했는데 한국인이라서 쉬웠다고 생각한다. 막상 프로그래밍을 해보니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풀고 또 혼자 일하는 게 성향에 잘 맞더라.

 

어떤 계기로 회사를 창업했나?

남편과 남편의 친한 개발자 친구와 해커톤에 나가봤다. 셋의 합이 좋았는지 해커톤에서 수상했다. 세일즈포스가 주최한 해커톤에서는 무려 상금을 1만 달러(약 1,130만 원)나 받았다. 셋이 힘을 합쳐 창업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과 친구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하기로 했다.

 

굿타임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해커톤에서 우승해 실제 창업하려고 했던 아이디어는 지문 인식 앱이었다. 애플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손가락으로 'U'라고 그리면 우버를 자동으로 불러주는 거다. 하지만 서비스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사업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리쿠르터recruiter*와 저녁 식사를 하는데, 업무의 반 이상을 면접 일정 관리에 할애한다고 하더라.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고 리쿠르터의 면접 일정을 스마트하게 관리하는 B2B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했다. 당시 셋 다 퇴사한 상황이었기에, 자금이 부족해 매 끼니를 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 채용담당자

 

첫 고객이 에어비앤비다. 어떻게 이렇게 큰 기업을 유치했나?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토타입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고객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영업했다.

 

에어비앤비는 남편이 영업을 했는데, 홍보문구를 붙인 간식 박스를 준비했다. 회사 앞에 찾아간 뒤, 담당자에게 연락해 '간식만 두고 오겠다'고 했다. 정말로 빵만 두고 나오기도 하고 담당자가 시간 여유가 있으면 프로토타입을 보여주면서 신뢰를 얻었다. 몇 달이 걸린 긴 영업 과정이었고, 그만큼 보람도 컸다.

굿타임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간식 ⓒ문아련 에어비앤비를 계기로 다른 테크 기업도 좀 더 쉽게 유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VC가 높이 평가해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회사 초창기에는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다. 어떤 제품을 만들지 어떻게 결정했나?

제품 개발은 다트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프로덕트 마켓 핏Product Market Fit*을 찾는다는 것은 과녁 중앙을 맞추는 건데, 그냥 막 던져서는 안 된다. 고객이 가진 불편함을 이해해야 명중할 가능성이 커지고, 개발팀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최소요건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더라도 사용자를 모르면 이 '불스 아이'를 찾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 웰스프론트 공동 창업자인 앤디 라클레프(Andy Rachleff)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VC 마크 안드리센이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제품과 시장의 요구가 부합(Fit)하는 것을 말하며 줄여서 PMF라 하는데, 마크 안드리센은 '스타트업의 성공에 있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 강조한다.

** 복잡한 상품을 빨리 론칭하기 위해서 가장 최소한으로 단순화시킨 것. 시장의 반응을 보고 피드백을 반영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굿타임을 창업하고도 적어도 일주일에 4~8시간은 에어비앤비, 뮬소프트MuleSoft, 드롭박스Dropbox 같은 고객사에서 리쿠르터로 일한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채용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예를 들어 서너 명의 면접관이 들어와야 하는 인터뷰에 한 명만 들어가는 미팅 룸을 예약하거나, 인터뷰 스케줄 변경에 대해 최종 컨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아, 지원자가 인터뷰가 있는지 몰랐던 일도 있다. 지원자가 부사장급 레벨이어서 꽤 큰 문제였고, 회사에 매우 미안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이런 부분을 고려해 꼼꼼하지 않은 리쿠르터도 실수 없이 미팅 스케줄을 짤 수 있게 했다.

 

한 회사의 CEO가 다른 회사에서 리쿠르터로 일한다는 게 흥미롭다. CEO로서는 어떤 업무를 하나?

아직 영업 부사장이 없다. 그래서 나의 시간 50%는 세일즈를 하는 데 쓴다. 20%는 펀드 모집fund-raising을 준비하고 10%는 직접 리쿠르터로 일하는 데 할애한다. 남편과 함께 팀을 이끌면서 직원 면담도 한다. 규모가 작고 조직이 수평적이어서 중간 관리자가 없다. 면담을 통해 직원이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킬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향적인 사람이라 여러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잃는데, CEO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세일즈는 재미있다. 그리고 비즈니스 계약에 사인할 때, 희열을 느낀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주 고객층인데 좀 더 다양하게 고객층을 넓혀가고 싶다.

 

앞서 남편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스타트업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배우자와 함께 일한다는 거다. 회사 운영에는 크든 작든 부담과 어려움이 곳곳에 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남편이 채워주고 남편이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울 수 있다. 나는 비즈니스를 할 때, 불도저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는 스타일이다. 반면 남편은 내가 앞을 보고 있을 때 누굴 밟지 않았나, 상처 주지 않았나 돌봐준다. 팀워크를 강화하는 사람이다. 감사한 일이다.

 

회사 운영에 부담과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회사는 성장 중이고, 수익도 안정적이라 월급 같은 재정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큰데, 그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두려움이 있다. 게다가 직접 영업을 하다 보니 경쟁사와 부딪힐 일이 있는데, 내 고객을 뺏기면 안 된다는, 그들에 뒤처지면 안된다는 부담도 있다. 우리 팀은 이미 너무 잘하고 있는데,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굿타임의 목표는 무엇인가?

굿타임의 소프트웨어는 회사와 지원자의 면접 스케줄을 최적화하는 것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굿타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의 모든 스케줄, 오리엔테이션, 영업 미팅, 트레이닝 등을 스마트한 방식으로 최적화하는 것이다.

 

아무런 제약 없이 무슨 일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굿타임에서 지금 하는 일을 더 큰 팀을 만들어 진행하고 싶다. 어렸을 때는 막연히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목표는 굿타임을 통해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남기고 싶다.

 

창업을 꿈꾸고 실리콘밸리로 온 경영학도에게 주는 조언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으면 본인이 직접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빨리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 창업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