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 취업하는 일은 없었다
진로 탐색은 대학 입학 후 꾸준히 해왔다. 궁극적인 목표는 창업이었지만, 당장 취업을 해야 했다. 문제는 가고 싶은 회사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관심이 있으면 일단 해보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뭐 하나 끌리는 것이 없었다.
로스쿨 진학은 학점이 4.0에서 점점 멀어지자 포기했다.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어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관련 인턴십을 했는데, 관료적인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중국이 급부상하니, 중국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상하이 소재 자동차 국영기업에서 인턴을 했지만, 이번엔 기업 문화가 맞지 않았다. 벌써 취업한 친구들은 졸업을 코앞에 두고 갈 곳 없어 걱정하는 나에게 밥을 사주었다.
동기들이 월가(Wall Street) 금융계에 지원하자 초조함이 생겨 덩달아 금융계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굴지의 회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금융에 관심이 없어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주 오일 가격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난감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숫자에 약하다는 사실도 난국에 한몫했다. 56,382x472 같은 곱셈 문제를 내주고 얼마나 빨리 푸는지 타이머로 쟀는데, 답을 틀렸다. 느리게 푼 사람은 있어도 아예 답을 틀린 사람은 내가 최초이지 않을까. 나만큼 면접관도 당황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금융계 면접관은 싱가포르의 한 국부펀드 임원이었다. 날카로운 깃의 양복을 입은 그는 "본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의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를 읽었다는 나의 진부한 대답을 듣고 난 뒤였다.
월가에 취업하는 일은 없었다
진로 탐색은 대학 입학 후 꾸준히 해왔다. 궁극적인 목표는 창업이었지만, 당장 취업을 해야 했다. 문제는 가고 싶은 회사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관심이 있으면 일단 해보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뭐 하나 끌리는 것이 없었다.
로스쿨 진학은 학점이 4.0에서 점점 멀어지자 포기했다. 국제기구에 관심이 있어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관련 인턴십을 했는데, 관료적인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중국이 급부상하니, 중국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상하이 소재 자동차 국영기업에서 인턴을 했지만, 이번엔 기업 문화가 맞지 않았다. 벌써 취업한 친구들은 졸업을 코앞에 두고 갈 곳 없어 걱정하는 나에게 밥을 사주었다.
동기들이 월가(Wall Street) 금융계에 지원하자 초조함이 생겨 덩달아 금융계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굴지의 회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금융에 관심이 없어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주 오일 가격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난감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숫자에 약하다는 사실도 난국에 한몫했다. 56,382x472 같은 곱셈 문제를 내주고 얼마나 빨리 푸는지 타이머로 쟀는데, 답을 틀렸다. 느리게 푼 사람은 있어도 아예 답을 틀린 사람은 내가 최초이지 않을까. 나만큼 면접관도 당황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금융계 면접관은 싱가포르의 한 국부펀드 임원이었다. 날카로운 깃의 양복을 입은 그는 "본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의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를 읽었다는 나의 진부한 대답을 듣고 난 뒤였다.
* 미국 금융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손들의 스승이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투자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 금융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대표작 <현명한 투자자>는 1949년 발행 이후 지금까지도 최고의 투자 지침서로 불린다.
예비 신입사원의 포부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사회초년생으로서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내가 고르는 세상이 나를 바꾸는 경험을 할 거예요.
그러면서 인터뷰 중 내가 확신에 차 있었던 순간은 아프리카에서 소액 금융으로 마을을 개선한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뿐이었다며, 그런 일을 하고 싶으면 이 회사와는 맞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당연히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금융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라는 인사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월가 취업 도전기는 끝났지만,
실패는 아니었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실리콘밸리로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고르는 세상이 나를 바꾼다면, 난다긴다하는 창업가가 수두룩한 실리콘밸리에서 치이면서 내 사업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공대생이 아닌 데다 신입이자 외국인인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까마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리콘밸리의 백수가 될 조건을 다 갖춘 셈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우연히 미미박스 하형석 대표의 실리콘밸리 도전기를 담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Y Combinator*에 지원해 회사를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심장이 뛰었다.
* 세계 최초이자 최대 액셀러레이터. 해커로 명성 높은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2005년 설립했다. 투자 기업 수 및 투자 회수 금액, 후속 투자 유치 금액 등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기록하며, '스타트업계의 하버드'로 통한다.
* Y Combinator에서 배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Startup Alliance Korea
아직 내 일을 시작하는 건 이르니, 실리콘밸리에서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뭐든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4학년 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클라우드마이즈(Cloudamize)라는 클라우드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자율성에 바탕을 둔 업무와 빠른 상품 출시를 꽤 매력적으로 느꼈던 기억이 나면서 스타트업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였다. 일단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대학 동문을 링크드인에서 찾아 연락했다. 70여 명 정도였다. 고맙게도 40여 명이 이메일에 답변을 해주었고, 더러는 인사팀에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은 상시채용을 하므로 언제 채용 공고(opening)가 뜰지 모른다는 점과 면접이 빨리 잡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묵을 곳을 찾고 구직을 하는 게 좋다는 점이었다.
그 길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모든 짐을 싸서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나의 세계를 바꿀 실리콘밸리에 도착하다
2015년 5월, 그렇게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구인 중인 회사 목록을 정리했다. 테크기업 천지인 이곳에서 문과 출신인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포지션에 모두 지원했다. 그렇게 총 58개의 지원서가 완성되었다.
1조 원 이상의 기업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 일명 '유니콘'을 1지망으로, 그리고 Y Combinator가 펀딩한 스타트업 위주로 지원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면 그 회사와 관련한 기사를 정독하고 지금까지 한 인턴십과 프로젝트가 이 회사 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할 수 있도록 달달 외웠다. 면접 전에는 그 회사에 다니는 동문에게 연락해 회사 비전과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얼마나 동문을 괴롭혔던지 A사에서 이런 피드백을 받을 정도였다.
우리 회사에 다니는 유펜(UPenn)* 동문 여러 명에게 연락했다고 들었습니다. 회사에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줘서 고마워요. 그 열정은 감사하지만, 지금 우리 회사는 테크 분야 외 포지션의 신입사원(non-technical entry level roles)은 채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이력이 꽤 훌륭하기 때문에, 좀 더 큰 회사의 마케팅팀에서 당신을 채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행운을 빌어요!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나의 마음은 금융계 회사를 지원했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내가 지원한 스타트업 하나하나 모두 마음에 들었으며, 당장 출근하라고 하면 뛰어갈 심정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거절 이메일뿐이었다. 작은 스타트업 두 군데에서 먼저 연락이 왔지만, 물가가 비싼 실리콘밸리에서 최소한의 생계도 어려울 정도의 박봉이었다.
비자 때문에 90일 안에 취업해야 하는데 앞이 막막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방 세 칸에 여덟 명이 사는 아파트에 들어갔다. 거실에 쳐둔 까만 천막 안이 내 방이었다. 방 안에서는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쳐있을 때,
우버에서 연락이 왔다 우버(Uber)에서 최초로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버는 신입사원을 3~4개월 단위로 여러 팀에 돌려가며 배치해 단시간 내 매니저로 성장시키는 로테이션 프로그램(rotational program)을 시행 중이었다. 면접은 3차까지 있었다. 여섯 명의 담당자와 1대 1로 면접을 봤는데, 인터뷰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다. 만나는 면접관마다 '케미'가 좋았고,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과 내가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가 끝났을 때,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후, 합격 전화를 받았다. 총 네 명을 뽑는 자리에 내가 앉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실리콘밸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