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를 덕질하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답게 새벽부터 저녁까지 활기를 가득 안고 있다. 1층에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저울 위에서 파닥이는 생선들,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에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 전경 ⓒ이지선

제철 생선을 만날 수 있는 점도 수산시장의 매력 중 하나다. 나도 일주일 정도는 매일 저녁 회를 먹어도 불평하지 않을 정도로 회를 좋아하지만, 진정한 '회 덕후' 자격을 얻으려면 적어도 제철 생선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은 전어, 겨울은 방어'로 대표되는 제철 생선을 알고 있다면 덕후의 자질이 충분하다.

 

여기서 덕질의 깊이를 더하려면 광어와 우럭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회를 떠서 접시에 담았을 때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얀 살은 광어요, 붉은 살은 참치, 주황색은 연어 정도로 구분한다면 덕후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광어와 우럭 모두 흰 살 생선이지만 광어가 좀 더 하얀빛(하얀색이 아니라 '하얀 빛깔'이라 표현하고 싶다.)을 띄고, 우럭은 껍질을 벗겨도 살코기에 흰색이 띄엄띄엄 남아 있다. 물론 덕력이 높으면 살코기만 보고도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그리고 얼마나 싱싱한지 구분할 수 있지만 말이다. 모든 덕질이 그렇지만 회 덕후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꾸준함이 필요하다.

 

서른 살 이후로 회를 좋아하게 됐는데, 마침 2007년에 여의도로 이사를 하면서 노량진 수산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회 덕질이 심화된 것은 노량진 수산시장 덕분이었다. 나의 먹성으로 일식집을 다녔다면 진작 살림이 거덜 났을 것이다. 일식집보다 저렴한 수산시장의 매력을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아졌고 철마다 바뀌는 해산물을 보는 일만으로도 즐거웠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노량진 수산시장을 드나들었지만, 단골 가게를 만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고객 입장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한 가게를 찾는 일이 흔치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는 고객을 만나는 상인들 입장에서야 특정 고객을 기억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와 일행들은 몇 달 동안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흥정하기도 귀찮아져 한 곳만 정해놓고 다니기로 했는데, 그 가게가 'YK수산'이었다. YK수산의 사장이 우리를 공식적인 단골로 선언하기까지, 다시 말해 "지난번에도 왔었는데 잘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힐끔 쳐다보며 우리를 알아보는 데 한 달 정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