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렸던 코끼리 다리 소년, 42.195km를 뛰기까지

나는 유난히 허벅지가 두꺼운 소년이었다. 동네에서 반바지를 입고 담벼락에 축구공을 차고 있으면, 동네 어른들은 "그놈 허벅지가 축구 선수 허벅지네"라고 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단순하게도 '축구 선수는 달리기를 잘하니까, 나도 달리기는 빠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착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100m 달리기를 하면서 깨졌다. 내가 빨리 달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100m 달리기에서 1등을 하면 팔뚝에 1등 도장을 찍어줬다. 그 도장 때문에 단 한 번만이라도 1등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1등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취미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한강둔치와 올림픽공원에서 꽤 열심히 탔다. 인라인 스케이트 마라톤에도 출전했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내가 원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아 속상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실력 좋은 동호회 선배들은 "너는 힘은 좋은데, 폼이 좋지 않아서 속도가 안 나온다"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타는 폼을 고쳐보려고 연습은 하는데, 이번에는 유연성이 부족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래 달리기는 이거보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벗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래 달리기는 처음이었다
하프 코스에 출전해 완주했다
기록은 1시간 30분이었다

그리고 2004년 10월 3일 일요일, 나는 '2004 문화일보 파주통일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 30km 구간이 지나자 거리 표지판은 물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 내 머릿속을 표백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5km는 도저히 못 달릴 것 같았다. 버티며 걷고, 조금씩 달리며 겨우 완주에 성공했다. 기록은 3시간 50분 11초. 기록보다는 처음 완주해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무작정 달리면 좋을까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하고 나니 다음 목표가 생겼다. 완주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더 빨리 달리고 싶어졌다. 당시 나는 홍보대행사에 근무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고객사(client)가 참고할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게 업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