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전문기자의 길

 

 

2011년 3월. 어려서부터 꿈꾸던 기자가 됐습니다. 매일경제 주간지 매경이코노미에 입사했습니다. 기자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10년 넘게 간직해온 꿈을 이루고 나니, 허무감이 밀려오더군요. 한국에 기자는 이미 차고 넘쳤고, 기자 못잖게 정보력과 전문성이 있는 블로거나 네티즌도 많았습니다. '이들과 차별화된 기사를 써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저를 초조하게 했습니다. 1년에 1~2번 나름 특종이나 단독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자족하기엔 너무 간헐적인 성과였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의 이 말은 당시의 제 모습과 잘 들어맞습니다.

어느 곳을 향해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여느 때처럼 취재원과 미팅을 하던 자리였습니다. 상대는 미니스톱 홍보팀장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솔직하게 드렸습니다. "미니스톱은 빅3(CU, GS25, 세븐일레븐)에 비해 점포수도 적고 브랜드 파워도 밀리는데, 점주들의 불만은 없나요?"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점주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미니스톱을 10개 이상 하시는 분들도 있는 걸요.

2017년 7월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 주관한 '프랜차이즈 산업 변해야 한다' 공청회에서 창업 전문기자 패널로서 기조 발표를 했습니다. (사진 제공: 노승욱)

돌아보면 제가 창업 전문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게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미니스톱을 10개 이상 하는 분이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등 자영업은 대부분 '1점주 1점포'가 일반적이라 생각했거든요. '미니스톱이 이 정도라면, 다른 브랜드는 다점포 점주가 얼마나 많을까'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즉시 한국 프랜차이즈에서 다점포 점주가 가장 많은 브랜드 순위에 관한 기사를 발제했습니다. 데스크*도 흥미를 느꼈던지 특집기사로 써보라고 했죠.

* 일반적으로 신문사나 방송국의 편집부를 일컫는 말. 

 

창업 전문기자의 길

 

 

2011년 3월. 어려서부터 꿈꾸던 기자가 됐습니다. 매일경제 주간지 매경이코노미에 입사했습니다. 기자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10년 넘게 간직해온 꿈을 이루고 나니, 허무감이 밀려오더군요. 한국에 기자는 이미 차고 넘쳤고, 기자 못잖게 정보력과 전문성이 있는 블로거나 네티즌도 많았습니다. '이들과 차별화된 기사를 써야 할 텐데…' 하는 부담감이 저를 초조하게 했습니다. 1년에 1~2번 나름 특종이나 단독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자족하기엔 너무 간헐적인 성과였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의 이 말은 당시의 제 모습과 잘 들어맞습니다.

어느 곳을 향해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여느 때처럼 취재원과 미팅을 하던 자리였습니다. 상대는 미니스톱 홍보팀장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솔직하게 드렸습니다. "미니스톱은 빅3(CU, GS25, 세븐일레븐)에 비해 점포수도 적고 브랜드 파워도 밀리는데, 점주들의 불만은 없나요?"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점주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미니스톱을 10개 이상 하시는 분들도 있는 걸요.

2017년 7월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 주관한 '프랜차이즈 산업 변해야 한다' 공청회에서 창업 전문기자 패널로서 기조 발표를 했습니다. (사진 제공: 노승욱)

돌아보면 제가 창업 전문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게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미니스톱을 10개 이상 하는 분이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등 자영업은 대부분 '1점주 1점포'가 일반적이라 생각했거든요. '미니스톱이 이 정도라면, 다른 브랜드는 다점포 점주가 얼마나 많을까'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즉시 한국 프랜차이즈에서 다점포 점주가 가장 많은 브랜드 순위에 관한 기사를 발제했습니다. 데스크*도 흥미를 느꼈던지 특집기사로 써보라고 했죠.

* 일반적으로 신문사나 방송국의 편집부를 일컫는 말. 

 

저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전화를 돌려 일주일 만에 50여 개 주요 브랜드의 다점포 현황을 조사해서 기사*를 썼습니다. 전체 가맹점 중 다점포 비중을 뜻하는 '다점포율'이란 개념과 계산법도 직접 고안해서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인기 있는 업종과 브랜드에서 다점포율이 높게 나왔습니다. 자본력이 있는 '투자형 점주'들이 인기 업종과 브랜드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점포 운영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표, 다점포율

이후 저는 매년 한 차례 다점포율을 새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투자형 점주들이 시장 트렌드에 맞춰 업종과 브랜드를 갈아타는 만큼, 다점포율 변화에 따라 뜨고 지는 창업 아이템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업계는 트렌드의 흐름을 전체 가맹점수 변화로만 가늠해왔습니다. 그러나 생계형 점주까지 포함한 전체 가맹점 수로는 최신 트렌드를 포착해내기 어렵습니다. 자금력이 부족한 생계형 점주는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가게를 금방 더 늘리거나 줄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저가 주스 시장은 이미 지는 분위기지만, 2016년 창업한 생계형 점주들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2016년 3분기 말 기준 쥬씨 가맹점수는 814개였지만 1년이 지난 2017년 3분기 말에도 여전히 795개 가맹점이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다점포 점주는 다릅니다. 같은 기간 다점포가 142개에서 56개로 급감해 다점포율이 반토막(17.5%→7.1%)도 더 났거든요.

 

반면 요즘 뜨는 베트남 쌀국수 브랜드 에머이는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됐는데 벌써 다점포율이 54.1%에 이릅니다. 이렇게 다점포율이 트렌드를 잘 반영하니, 요즘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다점포율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 점주 만족도가 높은 브랜드들은 제게 "그동안 우리 브랜드의 장점을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는데, 좋은 인덱스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제가 매년 다점포율을 조사하는 프랜차이즈는 20여 개 업종, 80여 개 브랜드에 이릅니다. 이들의 가맹점수만 다 더해도 7만~8만여 개에 달합니다. 한국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23만 개 안팎이니 전체 시장의 3분의 1을 직접 조사하는 셈입니다.

 

다점포율 조사 결과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야는 바로 편의점이었습니다. 2014년에 이어 2015년에 두 번째로 다점포율을 조사했을 때 편의점 5개사(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의 다점포율은 모두 전년 대비 1~6.1%포인트씩 증가했습니다. 기존 점주들이 모두 편의점 시장 전망을 밝게 보고 추가 출점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 당시 위드미. 2017년 7월 13일, 신세계그룹은 위드미의 브랜드명을 이마트24로 리브랜딩했다.

자료: 각 사, 단위: % (그래픽: 김영미)

그런데 2016년 조사에선 CU와 GS25의 다점포율이 각각 3.9%포인트, 3.4%포인트씩 줄었고, 2017년 3분기 말 기준 조사에선 세븐일레븐을 제외한 4개 브랜드 모두 다점포율이 0.1~6.1%포인트씩 감소했습니다.

 

세븐일레븐도 다점포율은 늘었지만, 가맹점(675개 순증)보다 다점포수(803개 순증)가 더 빨리 늘어난 게 꺼림칙합니다. 기존 생계형 점주들이 내놓은 단일 점포를 투자형 점주들이 거둬들여 다점포를 늘린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로 기울어가는 프랜차이즈에서 자주 확인됩니다.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와 디저트 전문점 설빙, 옥루몽도 이런 패턴을 보였습니다. 브랜드가 어려워지자 자금 여력이 부족한 생계형 점주가 먼저 장사를 포기하고 이어 다점포 점주도 포기하는 전조라 할 수 있습니다. 세븐일레븐도 다음 또는 다음 조사에선 다점포율이 급락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즉 불과 2년 만에 편의점 5사 다점포 점주들의 만족도가 급 반전한 겁니다. 이렇게 업종 내 모든 브랜드의 다점포율이 일관되게 증가했다가 다시 일관되게 감소한 건 편의점이 유일했습니다.*

 

도대체 2016~2017년 사이에 한국 편의점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포화된 한국의 편의점 시장

아니나 다를까. 한국 편의점 시장은 2016년 초반 편의점 3만 개가 넘어 포화 우려가 높아졌음에도 출점 속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빨라지는 기현상을 보였습니다. 시장이 성숙기에 다다랐음에도 편의점 공급곡선의 우상향 기울기는 갈수록 더 가팔라진 겁니다. 기본적인 경제 상식과도 배치되는 한국 편의점 시장을 보며 저는 최근 비트코인 투기 열풍과 같은 어떤 '광기(狂氣)'가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편의점 시장 전망이 밝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급증할 수 있을까. 한국 편의점은 과연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걸까.

 

이런 걱정과 불안은 한국 편의점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심관섭 미니스톱 대표와의 인터뷰를 가진 후 더욱 굳어졌습니다. 한국 편의점 시장의 객관적인 진단을 위해 저는 2017년 2월과 9월, 휴가와 명절 연휴를 틈타 사비를 들여 일본과 대만 편의점 시장을 취재했습니다. 현지 취재 결과, 양국의 편의점 시장은 한국보다 훨씬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본사들의 신중한 출점 전략과 투자 방식이 숨어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들의 운영 방식이 상식적인 것이고 한국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들을 틈틈이 매경이코노미 기사와 라디오 방송, 책을 통해 파편적으로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PUBLY를 통해 제가 쓴 기사들은 물론, 기사에 담지 못한 취재 기록까지 더해 정리하려 합니다.

숫자를 중시하는 경제 기사

본격적인 글에 앞서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제 기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숫자에 연연한다는 겁니다. 이 글을 쓴 계기가 된 다점포율 조사부터가 '숫자(전체 가맹점수) 안의 숫자(다점포수)'를 골라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수집한 업계 종사자의 코멘트와 제가 느낀 인상도 정성적 분석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제 주관에 치우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저는 시종 숫자를 중시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저도 한때 일간지 신춘문예에 자작시를 응모하는 '문청'이었던 만큼, 좀 더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생깁니다. 그러나 기자의 미덕은 미려한 문장보다는 날카로운 현상 분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최대한 문제 진단과 대안 제시에 집중하려 노력했습니다. 때문에 이 글에는 숫자가 많이 등장하고, 경제기사를 읽는 듯 딱딱한 문장이 조금 편하지 않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중언부언하지 않고 핵심만 간결히 쓰는 데 집중했으니, 읽는 맛은 다소 덜하더라도 소중하게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